영원히 강대국 위주의 냉전의 빙하에 파묻혀진 줄 알았던 한(조선)반도가 다시 힘차게 회전을 시작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도자적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한(조선)민족의 정치적 성숙을 세계에 과시했다.
평양에서 반세기만의 남북 만남의 현장은 겨레의 기대를 뛰어넘었고 회담의 성과는 세계의 회의적 예상을 뒤엎었다. “통일을 미래형으로 볼 것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북측 김영남) 시대가 열린 것이다. 21세기는 이제부터 조선(한)민족이 통일국가로서 세계사에 재등장하려는 시대이다.
남북 정상은 첫 만남에서 인간적·정치가적·국가지도자적 믿음, 즉 3중의 신뢰감을 서로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믿음의 확인이 없었다면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
(즉 서울회담) 약속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회담의 합의로써 가장 걱정했던 `1회성`이 아닌 정상회담의 `연속성`이 확보되었다. 큰 성과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남한 방문은,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남한 국민의 왜곡된 북한 인식을 송두리째 흔든 만큼의 충격을 북한 인민에게도 주게 될 것이다. 바로 남과 북의 대중(인민·국민) 사이의 반세기 동안의 왜곡된 인식을 일거에 허물어버리는 놀라운 변화의 약속이라 하겠다. 다음 서울회담에서 남한 정부와 국민은 북한의 당·정부·인민이 보여준 것 못지 않은 진정한 동포애와 예절을 보여야 할 것이다.
평양회담은 앞으로의 남북간의 문제, 한반도 문제의 해결방식에 중요한 원칙을 확립했다. 남북은 각기 “어려운 문제를 미루고 쉬운 일부터” “미래의 문제를 미루고 당면의 문제부터”라는 정신에 충실했다. 이 점에서 북쪽의 양보가 두드러진다. 북한이 남북문제, 한반도 문제 해결의 전제적 원칙으로 일관했던 외세(주로 미국)의 간섭 배제, 주한미군 및 기지 문제 등을 다만 합의문 제1항에서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자주적으로 해결...”이라는 우회적 표현으로 그친 것이다. 마찬가지로 통일방안(제2항)에서도
김 대통령의 점진적 단계적 방안과 절충했다.
이로써 `통일방안`을 놓고서 비현실적이고 소모적인 남북간 논쟁을 회피할 수 있게 된 것은 건설적인 성과이다. 이것은 작게는 우리 남한사회에서 오래 동안 이른바 통일방법론을 놓고, 특히 `진보진영` 내부에서 만연했던 소모적 논쟁과 대립, 분열의 만성 질환에 대한 진정제일 수도 있다.
인도적 문제로서 `올해 8·15`를 기한 이산가족 친척방문과 비전향 장기수 송환 합의(제3항)는 김정일식 즉단 즉결 권력행사의 본보기이다. “눈물을 흘리는 이산가족들의 모습을 테레비에서 잘 보았다”는 그의 말은 계산된 수사라 하더라도 수백만의 마음에 적지 않은 파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남북간 신문 방송 등의 교류를 비롯한 각종 사회 문화적 교류확대(제4항)는 이처럼 남북 민중간 마음의 빗장을 풀어 대북 경제협력 확대의 촉진제가 될 것이다.
8·15면 꼭 두 달을 남겼을 뿐이다. 반세기에 걸친 수백만의 인간적 설움과 고뇌가 풀리기 시작하는 그날, 그 당사자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인류가 한민족에게 뜨거운 축하를 보낼 것이다.
통틀어 말하면 평양회담의 결실은 북의 당과 정권이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또는 햇볕정책)이 과거 남한의 선임자들처럼 거짓이나 술책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린 결과로 해석된다. 우리는 이 상호 신뢰가 김대중 이후 정권에서도 흔들림 없이 유지되기를 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것은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소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 대통령이 첫 정상회담을 위해 떠나는 날 그 역사적 현장에 야당 지도자들의 얼굴을 발견할 수 없었던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원수`였던 남북이 화합하자는데 남한 내에서 부정적인 소승적 정치는 지양돼야 하지 않겠는가.
(한겨레신문 2000/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