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커밍스 교수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간추린 것이다.
( 발표대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이는 획기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한반도가 분단된 이래 어떤 남북한 정상도 만난 적이 없으며 55년간 상대를 비난해왔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국전 발발 50주년에 즈음해 열린다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권좌에 오른 뒤 적대진영의 지도자는 커녕 외국인을 거의 만나지 않았던 김정일(金正日)의 공식적인 국제사회 데뷔 무대가 된다는 의미도 있다.
북한은 김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한국 대통령 중 누구도 좋아한 적이 없다. 남한도 늘 또하나의 코리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해왔다. 한편 미국의 언론들은 김일성(金日成)의 아들 김정일을 테러리스트, 괴짜, 플레이보이, 국민은 굶어죽는데 깡깡이를 켜는 `네로`와 같은 인물로 묘사해오곤 했다.
남북화해는 72년 7.4 남북공동성명, 91년 말 남북기본합의서, 94년 김일성의 남북정상회담 제의 등으로 희망이 부풀었으나 무산됨으로써 `획기적인` 원칙들도 잊혀졌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은 몇 년간의 외교활동, 남한과 미국의 극적인 정책변화, 고집 세고 심술궂은 이미지와는 대조되는 북한의 타협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를 지닌다.
3년간 끝었던 북한의 핵개발 문제는 94년 6월 전쟁위기까지 갔으나 줄기찬 외교노력으로 북한의 핵발전프로그램을 동결시켰고 이는 아직도 유효하다. 북한은 97년 4자 회담에 동의함으로써 휴전협정 당사자가 아닌 남한과 대화 거부라는 종전 입장을 버렸다. 98-99년 북한의 대규모 지하핵시설의혹 소동은 미국의 사찰 허용으로 마무리됐고 미 정부는 작년 9월 미사일 시험 중단 대가로 50년만에 대북경제제재를 완화키로 합의했다. 북한정부는 최근 이탈리아와 수교 이후 독일, 프랑스, 영국, 호주 등과 관계개선 회담을 진행하고 있으며 고위급 대표단이 다음달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한편 김대중대통령은 미국이 직면한 것보다 더 크고 즉각적인 위협에도 불구하고 어느 역대 남한 및 미국 대통령보다도 정책변화를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98년 2월 취임식에서 북한과 능동적 화해 및 협력을 추구하고 전임자들과는 달리 북한의 대미관계 개선시도를 지지할 것을 약속했다. 김대통령은 98년 6월 방미 때 대북경제제재 해제를 공개적으로 요청한 첫 남한대통령이었다. 그는 북한에 양보를 요구하지 않고 식량과 원조품을 전달했다. 그의 끈질기고 일관된 `햇볕정책`은 오랜 남북문제 연구와 지도자로서의 경륜 끝에 나온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총선 사흘 전에 정상회담개최합의를 발표한 것을 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말 선거용이라면 북한은 김대통령에게 아주 이례적인 호의를 베푼 게 된다. 지금까지 누구도 김대통령이 정치인(politician)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수 십년간 독재자들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시련을 통해 대화와 화해, 평화와 관용의 미덕을 배운 정치가(statesman)이기도 하다.
김대통령은 아직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에 있는 한국전을 마무리한 사람으로서 이임하길 바라고 있다. 이는 긍극적인 화해와 통일에 필수적인 전제요건이다. 미국 정치인들은 김대통령의 이런 야심을 시기하거나 간섭하지 말고 그를 지지하고 밀어줘야 한다.
(연합2000/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