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남북 공동선언은 한마디로 7·4 남북 공동선언에서 밝힌 통일의 3대 원칙(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에 입각한 통일 선언이다. 여기서 말하는 통일은 사회제도의 통일이 아니다. 민족차원 통일을 의미한다. 공동선언 내용은 사회주의 또는 자본주의 등 계급주의를 초월한 민족 논리로 일관돼 있다.

특히 이번 공동선언의 5개항 중 제2항의 경우 통일의 방향으로 우리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에 접근했다는 것은 이념과 제도를 초월한 민족 논리의 집중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공동선언 제2항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 제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되어 있다.

이처럼 통일 방안이 접근했다는 것은 통일을 민족 차원과 제도 차원으로 구분하고, 민족 차원의 통일을 먼저 이룩하고 사회제도 통일은 훗날로, 길게는 다음 세대로 미루자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사회제도의 통일을 뒤로 미루고 민족 차원의 통일을 먼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한반도 분단의 성격과 남북간 사회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알다시피 한반도의 분단은 전적으로 외세에 의해 강제되었다. 중국처럼 내전에 의한 것이 아니며 베트남과 같이 반식민지 투쟁 과정에서 갈라진 것도 아니다. 전범국인 독일과도 다르다. 한반도의 분단은 분단될 아무런 이유도 없었으며 일제 식민지였다는 것이 원인이다. 38선을 경계선으로 미.소의 정치적 흥정 결과로 분단된 것이다.

결국 우리 민족은 남북으로 갈라져 냉전체제에 편입되고 반세기 이상 남북 대결이라는 불행한 역사를 걷게 되었다. 오늘날 남북이 상이한 이념과 사회제도를 이루고 있는 것은 분단이 원인이며 그 결과로 생긴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의 분단은‘강제된’민족의 분단이며 사회제도 차이로 인한 분단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분단 이후 남과 북은 반세기 이상 서로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에 이념과 사회제도 면에서 공통점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으며 서로 이질적 관계에 있다.

흔히 통일이라고 할 때 제도상의 통일을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제도를 하나의 사회제도로 단일화한다는 뜻이다. 서로 이질적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 제도의 동질화를 통한 통일을 추구한다면 어느 일방이 타방을 전복, 흡수하는 것으로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냉전의 연장이요, 현실성이 결여된 반통일론이다. 우리 민족은 핏줄, 언어, 문화, 영토의 공통성을 유구한 역사에서 공유해왔기 때문이다. 민족 동질성이 어느 민족보다도 강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번 정상회담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회담에 앞서 서울에 온 북한의 어린 소년예술단의 감동적인 공연, 인체예술의 극치라고 평가받았던 평양교예단의 공연은 연 15만 명에 이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확인케 했다. 또 모두가 함께 어울려 눈시울을 적시며 통일의 노래를 열창했다. 평양에서는 정상회담을 마치고 송별오찬에서 남북 정상이 함께 힘껏‘통일의 노래’를 불렀다. 이는 민족의 동질성이 조금도 훼손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처럼 남과 북이 비록 이념과 제도상의 차이는 있다고 하더라도 민족 동질성을 바탕으로 한 통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시 말해 제도의 통일은 뒤로 미루고 민족 차원의 통일을 먼저 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 제도가 공존공영하는 것을 전제로 한 통일의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연합제이든 연방제이든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상이한 양 제도가 공존하면서 점차 하나의 제도로 창조해나가면 된다. 남북 정상이 통일 방안에서 접근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민족 통일이 먼 장래가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확신을, 그를 하루속히 실현시켜야겠다는 용기를 안겨준 계기가 됐다고 강조하고 싶다. (대한매일 200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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