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장기수, 국군포로, 납북자.

6.15 공동선언 이후 급진전되던 남북관계가 이들 3가지 현안으로 주춤거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비전향장기수를 송환하는 대신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반드시 되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 한 때 남북관계의 절대 원칙인 것처럼 떠받들려졌던 `상호주의`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미 정부는 `비대칭성, 비등가성 상호주의`라는 적극적인 입장으로 바뀌었지만 이른바 `보수 우익층`에서는 `주기만 하고 받은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비난하고 있다.

물론 이와는 다른 견해도 있다. 비전향장기수 문제에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한다면 북파 공작원 문제와 연계해야 할 것이고, 국군포로 문제는 정전협정 체결을 전후해 이미 일단락된 문제이며 납북자 문제 또한 남측의 일방적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들 세 가지 현안을 객관적 시각으로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비전향장기수 = 수십 년간 옥살이를 하면서도 남한 체제에로 동화를 거부하고 `북한 주민`으로 살아가겠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은 사람들이다.

우선 인도적 측면에서 볼 때 여기에서 살기 싫다는 사람들을 세계 최장기수라는 불명예스런 기록까지 만들어가면서 잡아두는 행위는 어느 모로 보나 비정상적이다.

현재 남북관계가 체제 대결 상황에서 화해 상생 국면으로 바뀌어 가는 현실적 측면에서 볼 때도 이들을 북한으로 보내는 것이 정상적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들이 남한 체제에 끼쳤다는 `위해`는 남측의 실정법에 따라 충분한 처벌을 받은 상태이다.

일부의 주장처럼 비전향장기수 송환과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을 연계시키는 것은 서로 짝이 맞지 않는다. 이 주장은 달리 말하면 상호주의를 적용하자는 것이지만 비전향장기수와 국군포로, 납북자는 서로 격이 맞지 않는다. 비전향장기수는 달리 표현하면 `남파 공작원`이기 때문에 `북파 공작원`과 연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북파 공작원에 대해서는 지난해 7월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전해졌다. 6.25전쟁 이후 지난 72년 7.4공동성명 발표 시점까지 북한에 침투했다가 억류되거나 실종 사망한 북파 공작원(일명 HID, AIU)의 숫자가 7천726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방부 관계자도 `북한의 대남 무력도발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북한 출신 민간인들을 극비리에 북한에 보내 정보원으로 활용했으나 전체 공작원 및 사망 실종자 규모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밝혀 북파 공작원의 실체를 인정했다.

그러나 북파 공작원 가운데 생존자가 몇 명이며 또 이 중에서 `비전향자`가 몇 명인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남파 공작원과 북파 공작원 맞바꾸기를 시도하려 해도 남측에는 `근거자료`가 없는 셈이다. 공작원 교환 제의에 앞서 북파 공작원의 실체와 활약상을 먼저 밝혀야 한다는 점도 남측에게는 커다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군포로 = 현재 법적으로는 `국군포로 출신 북한주민`은 있으나 `국군포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전협정 제2조 4목은 정전협정 발효일 이후에도 송환되지 않은 포로는 최대한 60일 이내에 송환토록 했고 이에 따라 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을 전후해 북측과 유엔사측은 세 차례에 걸쳐 전쟁포로를 송환했다. 이것으로 6.25 전쟁으로 발생한 전쟁포로 문제는 일단락됐다.

지금이라도 귀향을 원하는 `포로 출신 사민(일반인)`들은 원칙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는 돼 있다. 정전협정 제4조 전쟁포로의 처리에 관한 조항 제11목은 `중립국 송환위원회가 해산한 후 어느 때나 어느 곳을 막론하고 상기한 전쟁포로의 신분으로부터 해제된 사민으로서 그들의 조국에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자가 있으면 그들이 있는 곳의 당국은 그들의 조국에 돌아가는 것을 책임지고 협조한다`고 규정했다.

국군 포로 출신 북한주민, 또는 북한군 출신 남한주민 가운데 남과 북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경우 언제든지 돌려보내야 한다고 한 것이다.

6.25 전쟁 때 국군 실종자는 1만9천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가운데 몇 명이 `억류`돼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자발적인 북측 잔류선택도 있을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 가능한데도 일반적으로는 모든 국군포로가 북측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포로들을 되돌려 보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남측이 일방적으로 석방한 `반공포로` 2만7천여명의 송환을 북측이 요구할 때 수용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금방 실현 불가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전협정 4조 11목에 따라 자유의사에 다른 거주지 선택을 제의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납북자 = 납북자는 있지만 `납남자`(拉南者), 즉 남측이 데려 온 북한주민은 없다는 인식부터 바꿔야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대결 일변도의 남북관계에서 이른바 남측 `관계당국`이 북한 주민을 데려왔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북파 공작원의 경우처럼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왔을 뿐이지 그런 사실이 없다고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일부 `비공개 귀순자` 가운데는 자신이 납치됐다고 주장하는 사례도 있으며 한 탈북자에 따르면 북측 당국에서도 그같은 사정을 고려해 북측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대우`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납북자 송환을 위해 남측으로서도 `납남자` 문제를 먼저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남측이 말하는 `납북`과 북측이 주장하는 `의거 입북` 사이에는 너무도 큰 괴리가 있다. `납북자`만을 거론해 송환을 요구할 경우 해결이 어렵다는 견해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도 `자유의사에 따른 거주지 선택`의 원칙으로 풀어나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비전향장기수의 북송은 이 원칙을 실천으로 옮긴 첫 사례인 만큼 남북간 자유왕래, 자유거주가 도저히 불가능한 `꿈`만은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연합200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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