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경희총민주동문회 회장)


1. 들어가며

설 연휴 기간 동안 발표된 북한측 외무성 성명은 당사자인 남북한은 물론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이른바 6자 회담 참가국을 포함하여 온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였다.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듯이 긴박한 분위기가 감도는 듯도 하다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듯한 발언들도 잇따랐다.

그런 가운데 나오는 여러 가지 견해들은 한반도 문제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언제나 그랬듯이 한반도 남측에 살고 있는 우리들을 매우 헛갈리게 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직도 한반도 남측에 여전히 냉전시대의 억압과 폐쇄성이 온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일단 그러한 냉전적 시각을 벗어나기 위한 기본 관점을 점검하면서 과연 이번 성명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역사적 관점

이른바 ‘북핵문제’에서 직접 당사자는, 우리가 북한(혹은 이북)이라고 부르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미국이다. 이번 외무성 성명도 그렇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의 이른바 핵문제를 살펴볼 때 우리가 반드시 견지해야 할 기본적인 관점이고, 그것이 바로 문제를 역사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두 당사자의 오랜 전쟁이라는 상황이 기본 전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두 당사자는 지금 전쟁 중인 것이다. 이것은 아직 한국전쟁이 종전 협정을 맺지 않은 상태이므로 휴전 중이고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 형식논리적인 측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두 당사자가 전쟁 중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형식논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좀더 근본적인 문제를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북한측 관점에서 살펴보자. 북한측은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제국주의인 외세가 절반을 군사적으로 강점한 상태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 상태는 일제의 강점에서 이어진 것으로, 항일투쟁을 통해 절반의 해방을 이루었다고 보는 북한측으로서는 당연히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극복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북한측은 반제투쟁을 통해서 외세를 몰아내어야만 진정한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당연히 이들에게 미국은 축출의 대상이다.

다음으로, 미국의 관점을 보자. 미국은 북한측을 ‘악의 축’ ‘불량국가’ ‘깡패국가’ ‘폭정의 전초기지’ 등으로 불러 왔다. 미국은 김정일 정권을 인민을 억압하는, ‘자유’를 말살하는 정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어떠한 방법을 쓰든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려고 한다. 부시 2기 정권에서 이것은 이른바 ‘자유의 확산’이라는 수사로 표현되었다.

현재 두 당사자의 기본 목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북한측은 위에서 말한 기본 노선을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으며, 미국은 잠시 누그러뜨렸던 자신의 기본 목표를 오히려 노골적으로 표방하면서 더욱 강화시켜 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두 당사자의 전쟁 국면은 전혀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기본 상황을 전제할 때 북한측의 어떠한 언행이 협상용이냐 아니냐를 분석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두 당사자가 전쟁을 벌일 때 그 국면은 대결 일변도로만 진행되지 않는다. 때로는 협상을 하고 때로는 대결을 벌인다. 직접적인 전투 상황도 있고, 지루한 협상을 벌이면서 국지전을 벌이는 상황도 있다.

지금 우리는 두 당사자의 전쟁 국면이 어떠한 상황에 이르렀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항상 겉모습만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3. 민족적 관점

두 당사자 사이에 기본적으로 가로 놓인 상황이 이렇다고 할 때 과연 우리(남한측)는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상황을 바라보아야 한다.

남한측은 전통적으로 한미동맹을 기본으로 한반도 문제를 풀어 왔다. 그렇지만 말이 동맹이지 그 주도권을 미국이 갖고 있음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원해서 그랬든 원하지 않았는데도 그랬든 미국의 세계 전략에 조금이라도 위배되는 행위를 남한측이 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아는 바이다. 그렇다면 남한측과 미국의 관계가 무엇인지는 굳이 말로 규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남한측과 북한측은 분단 이후 전쟁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적대적 관계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관계에서도 둘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지향점에는 진심이든 거짓이든 누구도 공공연하게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6.15공동선언을 경과하면서 현실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제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자 유난히 ‘한미동맹’을 울부짖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해도 가릴 수 없듯이 북한측은 우리의 절반이고 우리와 하나가 되어야 할 대상임이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진리인 것이다.

위의 상황을 전제로 삼을 때 우리는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결코 제3자가 될 수 없을뿐더러 더욱이 전통적인 남한측의 한미동맹식 자세로는 민족의 이익을 더욱 훼손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은 너무나 자명해진다.

북한측에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수구세력들의 논리는 이런 점에서 볼 때 반민족인 것임이 너무나 분명하다. 그들의 논리는 여기서 굳이 자세히 다룰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문제는 민족을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자꾸 샛길로 나가는 사람들이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이번 성명에 대해서 ‘북의 핵무기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하였다. 당사자가 갖고 있다고 하는 핵무기를 용인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것은 수구세력에 한 발을 걸치는 대단히 불투명하고 기회주의적인 태도이다.

현재 우리 민족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직접적인 목표는 전쟁을 막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민족의 자주와 통일이 달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측은 외무성 성명에서 평화(자위)를 위해서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남한측이 그에 대해서 그것이 효과적인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견해는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은 비핵화를 위해서는 평화도 던져버릴 수 있다는 것으로 본말이 전도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비논리적인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은 결국 민족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4. 자주적 관점

민족적 관점에 섰다가도 지극히 비자주적인 관점으로 빠져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북한측이 그렇게 해봐야 얻을 것이 없다고 설득하겠다는 논리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절반인 동포를 거지로 만드는 것이다. 무엇을 얻고자 하기 위한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굳셀 때 어떠한 강한 세력도 그들의 의도대로 모든 것을 만들 수는 없다는 자주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또한 어떠한 세력도 선의만으로 우리를 대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확고하게 견지해야 한다. 백보양보해서 미국이 선의를 가진 집단이라고 해도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그 다음에 우리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세기부터 이어져 온 미국의 과거를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 사태 등에서 볼 때 미국이 우리의 이익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떤 짓도 서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한 것 아닌가?

5. 글을 맺으며

위에서 살펴본 관점들로 이번 성명을 바라볼 때 북한측과 미국의 대결은 이제 현란한 수사나 제스처가 필요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본다.

이번 성명은 협상용일 수도 있고, 최후통첩일 수도 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이것이 협상용으로 끝나기 위해서는, 그리하여 평화롭게 한반도 문제가 풀어져 나가기 위해서는 북한측의 주장에 힘이 실려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할 때 우리 남한측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이 문제를 역사적, 민족적, 자주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태도라고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