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 문서의 공개가 북ㆍ일 국교정상화 협상에 '복병'으로 등장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양국 정상간 2002년 9월 '평 양선언'을 통해 수교 후 일본이 '경제협력'을 한다는 골자에 합의해둔 상태이기 때문이다.

수교협상의 핵심인 전쟁피해배상의 문제는 '청구권'이 아닌 '경제협력'의 형태로 접근하기로 양국간 합의가 이뤄져있는 셈이다. 이는 개인배상 없이 정부간 베이스로 과거사를 종결짓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경협자금'의 규모와 한일협정 문서 기본조약 제3조에 명시된 대한민국 정부의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조항이 논란이 될 가능성은 있다.

경협자금 규모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북한과 일본 어느쪽에서도 공식화한 적이 없다. 그만큼 '뜨거운 감자'이다.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전 일본 자민당 간사장이 1995년 한 강연에서 일본 국방비의 3분의1인 1조7천억엔 가량이 '대북(對北) 예산'인 만큼 이에 근거, 120억달러가 적절하다는 사견을 제시한 바 있다. 이른바 '100억달러 배상설' 의 진원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평양선언' 이후 양국간 국교정상화 협상이 큰 진전없이 '납치문제'에 발목이 잡혀있는 상황에서, 자금규모의 언급은 시기상조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서는 북한측도 이렇다할 공식 언급이 없었다.

오히려 북한측은 기본조약 제3조를 문제시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3조는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로 못박고 있다. 한일협정이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는 종래의 입장을 거듭 확인하고 일본과의 수교협상에서 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일협정 문서의 공개와 별도로 양국간 수교협상은 '납치문제'라는 암초에 걸려 사실상 중단돼 있는 상태이다. 특히 북한이 일본인 납치피해자 요코타 메구미의 것이라며 보내온 유골이 가짜로 드러난 뒤 일본에서는 대북여론이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됐다.

일본인들은 이 문제의 해결없이 일본 정부가 '경제협력'을 골자로 한 수교협상을 추진하는 것에 큰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대북 수교에 외교적 승부수를 던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핵ㆍ미사일ㆍ납치'의 포괄해결을 국교정상화의 전제로 못박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반도 전문가인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 시즈오카(靜岡) 현립대 교수는 "북한과 일본간 '평양선언'을 지킬 경우 양국간 수교협상의 핵심은 '청구권 문제'가 아닌 '경제협력 문제'로, 다만 액수가 논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평양선언'이 유효한 이상 한일협정 문서의 공개는 큰 변수가 되지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도쿄=연합뉴스) 이해영ㆍ신지홍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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