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3일 오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주평통 운영.상임위원회 합동회의에 참석, 남북관계를 정략의 도구로 삼지 말아달라는 메시지를 정치권에 던졌다.

노 대통령은 "우리의 목표는 이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라며 "끝내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양보하지 않지만, 우리의 안정과 번영과 그 토대로서의 평화가 유지되는 한 관용과 인내심으로 설득해 나가는 노력을 하자"고 주문했다.

다음은 노 대통령의 격려사 요지.

◇관용의 문화
대한민국 장래가 밝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들도 몇가지 있다. 통일정책과도 긴밀히 연관되는 문제다. 관용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다 보니 세대가 단절이 생기고, 생길 수밖에 없다. 새로운 문명의 충격, 가치관 변화에 따른 단절 등 감당하기 힘든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우리가 빠른 속도의 변화와 단절을 수용해 낼 수 있다면, 성공한다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민족이 될 것이다. 이것은 결국 관용이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세상의 가치와 원리가 변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동시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이같은 여백이 관용이다.

우리는 각별히 정성을 모아 관용의 문화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정치의 역사라는 것이 끊임없이 편을 가르고 적을 만들고 불신과 증오심으로 국민을 결합시키고 때로는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역사를 반복해 오지 않았나. 반복되는 역사 가운데 침략과 지배, 억압 등의 질서가 수천년 계속돼 왔지만, 근대 민주주의 의회 사상이라는 것이 이를 하나하나 해체해 나가고 있다. 인간의 정치사는 '미결의 장'을 많이 두고 있다. 또다시 불신과 적대, 지배와 억압의 질서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신뢰를 키우고 관용과 화해, 협력의 질서, 평화와 공존의 질서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지금도 힘의 우위를 내세우려는 질서가 있고, 이를 거부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평화와 공존을 하자는 질서가 있다. 지금도 이 두개의 흐름은 세계 질서 속에서 충돌하고 있다. 이 질서 속에 남북관계가 서있다.

◇남북관계
참 답답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너무 고립돼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국제사회에서 남북이 외교경쟁을 했는데, 국민 덕분에 지금은 외교경쟁을 하는 시대가 아니라 한국 외교가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지나치게 고립되지 않도록 두둔해야 하는 상황에 오게 됐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이 되지 않았나 생각하니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다. 지금도 국제정세에 너무 어둡거나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이 아닌 독자적인 고집을 너무 강조하는 것 아닌가 이런 점이 안타깝다. 국력의 차이만큼 오해도 깊어질 수 있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거나 자존심이 상할 만한 일은 극도로 회피하면서 대화를 지속시켜나가려 하지만, 한국 정부가 피할 수 없는 작은 일에 관해서도 자주 틀어지고 대화를 단절시키고 해서 답답하기 짝이 없다.

얼른 우리가 '상호주의' 카드를 끄집어 낼 형편도 아닌 것 같다. 좀더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신뢰가 생길 때까지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때때로 국민들이 자존심 상해할 것 같다. 북한이 우리를 신뢰해야 한다. 신뢰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북한과 우리가 힘겨루기를 해서 그저 한번 이기고 지는 것이라면, 축구시합의 문제라면 우리도 나름대로 맞대응을 할만한 일들이 많은데, 우리의 목표는 이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다. 끝까지 양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국민의 안전이 무너질 때, 체제가 무너질 때, 평화가 깨질 때다. 그때는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 대비한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 있다. 제가 대통령이 된 뒤 혹시 불안해 하신 분들이 없지도 않는 것 같고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해서 한 일이지만, 우리는 국방비를 오히려 증액했다. 끝내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양보하지 않지만, 우리의 안정과 번영과 그 토대로서의 평화가 유지되는 한 관용과 인내심으로 좀더 노력하자. 선의를 갖고 북한을 설득해 나가는 노력을 하자.

감정적인 기분을 맞출 일도 아니고 자존심을 세울 일도 아니다.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고 민족이 하나로 공존.번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현실적인 문제로서 우리에게 더 책임이 있다. 더 큰 힘과 자원을, 많은 폭과 역량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전쟁 위협이 없고, 나라가 분단돼 외세의 부추김에 놀아나거나 농락당하는 일이 없고, 우리가 운명을 책임있게 가꿔갈 수 있는 자주적 국가, 넉넉한 국가가 되기 위해 겪어야 할 과정이다. 마음을 넉넉하게 갖자.

◇정치권에 대한 제언
국내적으로 갈등이 많은데 가만 보면 결국 북한에 대한 관계다. '너 북한이랑 친하지', '너 북한 편 아니냐', '내가 왜 북한 편이냐', '지금도 친북세력이 있잖아', '지금 친북세력이 어딨냐' 등의 얘기를 보면 북한이 기준이 돼있다. 이제 한국이 비교할 수 없는 경제력을 갖고, 국방력도 실제 전투력을 평가하는 실속에 있어 한국이 월등히 우세하다. 이제 평화와 번영에 대한 세계적 책임을 나눠져야 할 만큼 한국에 대한 세계의 기대는 높다. 그러나 옛날의 나쁜 기억을 갖고 있는 국민들이 많고 아직도 북한을 믿기 어려워 계속 증오심과 경계심이 범벅돼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의 불행 아니냐. 역사의 부채를 벗지 못했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해 가지 않으면, 변화하는 현실을 인식하는 공통의 기반이 없으면 남남 갈등은 극복할 수 없다.

대통령 선거에서 선출된 대통령마저도 북한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편다는 이유로 친북세력이라고 의심해 버리면 이 다리, 이 강은 건널 수 없다. 의심을 하지 않고 안심하도록 하는 게 제 책임이고, 변화한 상황을 수용하는 것도 일부 국민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백번 천번 설득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정략의 도구가 되면 잘 풀리지 않는다. 호남이냐, 영남이냐를 갖고 정치적 수지를 맞추는 일이 존재하는 한, 남북관계가 정략의 도구가 되는 한 통일로 한발 다가가기 이전에 국민적 분열을 겪어야 하는 문제이다.

비판하고 싸울 것은 싸우더라도 정략으로 삼아서는 안될 문제는 정략의 대상으로 삼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말씀드린다. 생사가 달려있고 근본적 미래가 달려있는 문제가 정략의 장에서 왜곡되고 부풀려지고 국민들이 분열되는 문제는 모두가 절제했으면 좋겠다.

◇경제문제
경제가 어렵다. 금방 못풀어 국민들 보기에 죄송하기 그지없다. 생각보다 오래가 무척 안타깝다. 그러나 대책은 있다. 98년부터 보면 상당한 세월이 지난 것도 사실이지만, 그리 오래 제자리 걷지 않을 것이다. 작년은 현상을 관리해갔고 올해는 많은 현상을 치밀히 분석했다. 장단기 대책을 세웠고 일부는 시행하고 있다. 금방 벌떡 일어나지는 못하지만 안정적으로 활력을 되찾는 방향으로 간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믿고 맡겨달라.

(서울=연합뉴스) 김범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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