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국회 법사위에서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가보안법폐지안을
단독으로 상정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국가보안법 폐지안 등 일괄상정합니다! 땅!땅!땅!"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폐지안 등 의사일정변경동의안을 일방적으로 상정시켰다.

6일 오후 4시 국회법사위원회 회의실에 모인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최재천 열린우리당 법사위 간사는 4시 10분이 다 돼 가도록 최연희 법사위원장이 나타나지 않자, 위원장 석에 달려들어 곧바로 개회를 선포하고 안건을 처리해버렸다.

▶한나라당 의원이 법사위원장 탁자를 붙잡고 의사진행을 방해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최재천 열린우리당 간사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위원장 석에 엎드려 앉지 못하도록 방해하자 팔을 잡고 떼어내려 몸싸움을 벌였으며 이를 본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달려들자 또 다시 한나라당 의원들도 달려들어 순식간에 법사위 회의실은 전쟁터가 됐다.

의원들은 서로 옷을 잡고 팔로 목을 감싸 뒤로 끌어내며 위원장석에 누구도 다가가지 못하게 하려고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으며 소식을 듣고 달려온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도 가세해 한나라당 의원들을 끄집어냈다. 노회찬 의원은 이 날을 위해 준비한 듯 검은색 운동화까지 신고 있었다. 의원들이 서로 싸우는 동안 기자들이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책상위로 올라가는 바람에 법사위 책상이 내려앉기도 했다.

경위들은 문 밖에서 몰려드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막기 위해 문에 3명씩 달라붙어 위원장실을 봉쇄했으며 의원들은 문을 사이에 두고 경위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열린우리당 최재천 간사가 국가보안법폐지안을 상정시키고 급히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북새통 속에서도 최재천 열린우리당 간사는 위원장 석에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위원장 직무대리 최재천 개회선언합니다"라고 개회를 선포하고 "국가보안법폐지안 등 일괄상정합니다, 이의제기있습니까?"라고 이의제기까지 확인했으며 우원식 의원이 이에 "이의 없습니다"라고 답하자 산회를 선언했다.

최재천 간사가 산회의 뜻으로 책상을 손바닥으로 세 번 두드리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국가보안법폐지 만세!"라고 일제히 소리지르며 모두 나가버렸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그 뒤를 쫒아가며 "이건 날치기야!", "무효야!"라고 소리쳤다.

▶열린우리당 법사위원들이 박수를 받으며 회의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법사위원장실 앞에 모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속이 다 시원한 듯 만세를 삼창했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폐지무산! 폐지무산!"을 외치며 "빨갱이들!"이라 손가락질을 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사라져버린 뒤 법사위 회의실에 들어온 최연희 법사위원장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경위들을 불러 법사위 의원 보좌관 외 모든 직원들에게 퇴장을 명령했으며 기자들 역시 출입기자 외 모두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최연희 법사위원장이 나중에서야 회의장에 나타났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빠져 나간 회의장엔 한나라당 의원들이 자리잡았다.
장윤석 한나라당 간사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장외가 정리된 뒤 법사위원장이 자리에 앉았으나 의석에는 한나라당 의원들만 있을 뿐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의원은 자리를 비웠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법사위원회 회의실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날치기 미수다"..."합법적 통과다"

소란이 있은 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각각 기자회견장으로 내려와 법사위 사태에 대한 각 당의 입장을 발표했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오후 4시 45분 경 기자회견을 열고 "열린우리당의 비이성적 반민주적 처사를 규탄한다"며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제자리로 돌아 오라. 날치기는 연습하는 것이 아니다. 날치기도 기본이 있어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뭐든지 하려면 제대로 하기 바란다"고 논평을 발표했다.

▶열린우리당 김현미 대변인이 속기록을 제시하며 국가보안법폐지안 상정이 유효하다
고 말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이어 열린우리당 김현미 대변인은 "최재천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대신해서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상정시켰다"고 선언하고 "우리들은 앞으로 국회내외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와 관련한 광범위한 토론을 해서 국민적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최재천 의원이 개회선언을 하지 않았고 또 정족수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반론에 대해 법사위 속기록을 공개하며 분명히 최재천 의원이 "위원장 직무대리 최재천 개회선언을 합니다"라고 말했고 이어 "국회법에 따라 열린우리당 간사가 회의를 진행합니다. 국가보안법 폐지안 등 일괄상정합니다"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시 법사위 회의실 안에는 "정족수 재적인원 4분의 1이 채워져 있었다"며 한나라당 측 주장을 일축했다.

김현미 대변인은 또, "지금 한나라당 의원들이 법사위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데 이는 적법한 회의가 아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법사위에서 간담회를 벌이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도 "개회선언도 했다. 정족수는 다 채워졌는데 확인만 안 했을 뿐이다. 의사봉을 두드리고 안 두드리고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중요한 건 최재천 의원이 의장을 맡았냐 맡지 않았는가이다. 국가보안법폐지안은 상정됐다. 이제부터 시작이다"고 밝혔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법사위의 한 수석전문위원은 "개회선언과 관계없이 정족수가 앉아서 시작할 수 있으면 정족수가 된다. 의사봉은 법적으로 의미가 없다. 관행상 쓰는 거다. 손으로 두드려도 효력이 있다. 문제는 상임위 위원장석에 효력이 없는 사람이 앉았다면 문제다. 최재천 의원이 위원장석에 앉지 못하고 선 채 했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김원기 국회의장 기자회견, 해법 제시 못해

한편, 김원기 국회의장이 오후 5시 30분경 법사위의 국가보안법폐지안 상정과 관련해 특별기자회견을 가졌으나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김원기 국회의장이 기자회견을 가졌으나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김원기 의장은 "국가보안법과 관련한 법사위에서의 공방을 즉각 중단해주실 것을 요청한다"며 "국가보안법은 그 사안의 중요성이나 여야간 갈등과 대결의 초점이 되어 있는 점이나 국민여론이 증폭되고 있는 점등을 고려할 때 이미 한 상임위에서 홀로 결론을 내리고 처리해야 할 한계를 넘은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법사위를 비롯함 모든 상임위는 즉각 가동할 것을 정당의 지도부에 공식 제안한다"고 말하고 시민단체들도 집단적인 의사표명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어진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국가보안법의 법사위 상정이 적법한지의 여부와 법사위에서 다시 상정하도록 할 것인지 등 구체적 물음에 대해서는 답변을 회피해 첨예한 여야간 갈등을 해결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김원기 의장은 "의장으로서 중재에 나서는 것보다 여야간 협의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겠다"고 말하고 "의장으로서는 연내에 임시국회를 소집해서 경제와 민생현안 법안부터 우선 처리하겠다"고 말해 선 국회정상화와 민생법안 처리를 주장했다.

6시 30분 현재, 법사위 회의실에 남아있던 한나라당 의원들과 최연희 법사위원장은 산회를 선포했으며 한나라당 장윤석 법사위 간사를 비롯한 법사위 의원들은 기자회견장으로 내려와 기자회견을 갖고 "위원장이 와서 개회 선언을 해야 개회가 된다. 위원장이 표결에 대해 회피하거나 의사진행을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위원장이 위원장실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개회가 안됐다는 것이다"고 주장하고 "이는 의사가 성립되지 않은 불성립의 사안이기 때문에 이 사태에 대해 입장을 밝힐 필요도 없다"는 말로 정리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내일 다시 법사위를 개회하고 법사위원회에 소집된 50여건의 법률안 심의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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