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어법이라는 것이 있다. 시인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에  나오는 "찬란한 슬픔" 처럼 양립할 수 없는 단어를 함께 배치하여 극적효과를 노리는 표현기법을 말한다.

 

극적효과를 노리는 만큼 모순어법은 예외적인 기법에 속한다. 일상적인 대화는 물론, 특히 논리성이 요구되는 곳에서나 정확한 의미전달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금기시되는 말하기 방법이기도 하다. 잘 구사할 수 없으면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다. 잘못 사용하면 저능아 취급받기 딱 좋은 까닭이다.

요 며칠 법사위에서 쏟아진 한나라당 의원들의 발언을 보면 모순어법이 넘쳐난다. 그 중에서도 비교적 점잖은 편에 속했던 장윤석 의원의 발언은 표현이 의도를 배신한 전형에 속한다.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막기위해 지난 사흘간 한나라당 의원들이 구사한 논리의  전제는 "한나라당이 소수당이기 때문에 불안하다는 것"이다. 여당이 다수당이므로 상정해주면 언제든 표결로 통과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고, 특단의 보장책이 없는 한 소수당인 한나라당은 상정단계에서 봉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장 자체야 그렇다치고, 문제는 이것을 설명하는 수법에 있다.

법사위 한나라당 간사인 장윤석 의원은 시간이 있을 때마다 "상정은 곧 대문을 열어주는 것과 같고 대문을 열어두면 안방까지 쑥 들어올 것"이라며, 한나라당에 있어 "상정은 곧 통과"라고 말했다. 

동시에, 안건 상정 자체를 반대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항의에는 "왜 그렇게 상정하지 못해서 안달하나? 제출이 상정이다. 다를 것 하나 없다. 법사위 밖에서도 토론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강변했다.

위 두 발언은 한 자리에서 시간 간격도 없이 반복적으로 나온 것이다. 이제 장윤석 의원의 말을 종합해보자. 상정은 곧 통과이며 제출도 상정이다. 그렇다면, 법안 제출은 곧 통과라는 말이다.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면 모든 법은 국회를 통과한 셈이 되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국가보안법 폐지안은 국회의원 161명의 발의를 통해 국회에 제출되었으므로 이미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막겠다며 한나라당 의원들이, 그것도 법률전문가들이 머리 싸매고 짜낸 논리가 결국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국회를 이미 통과했다는 결론을 제공한 것이다.

이쯤되면, 정치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신경 곤두세우며 받아쓰는 기자는 헷갈릴 수밖에 없다. 장윤석 의원이 '바보짓'을 한 것일까? 아니면 장윤석 의원은 열린우리당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한나라당에 파견한 '첩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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