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리당 지도부가 국가보안법 폐지안과 사학법 개정안, 과거사기본법안, 언론개혁법안 4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만 하더라도 당내에는 이들 법안을 반드시 연내 처리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나라당과의 타협없이 독자적으로라도 4대 법안을 처리하자는 주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다. 오히려 4대 법안보다도 기금관리법이나 공정거래법 등 경제관련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강조하는 모습이다.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는 17일 확대간부회의에서 "한나라당의 대안이 마련되는 대로 내주초부터 민생개혁법안을 발의해 심사하겠다"며 "특히 여러 법안 중에서도 기금관리기본법,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을 시급히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당 지도부가 '4대 개혁입법'이라는 명칭을 폐기하고, 경제관련 법안이 중심인 '50대 민생.개혁법안'을 내세운 것과 일맥상통하는 발언이다.
이 같은 기류 변화를 반영하듯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알려진 문희상(文喜相) 의원도 전날 저녁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정치학교 강연에서 "의회는 상대가 있는 만큼 최선이 안되면 차선을 택해야 한다"며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주일 전 '최대한 야당과 타협을 모색해 합의 처리해야 한다'는 이른바 '속도조절론'이 처음 수면 위로 부상했을 때만하더라도 강하게 반발한 일부 지도부도 이 같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이종걸(李鍾杰)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타협을 전제로 하지 않는 토론은 진정한 토론이 아니다"라며 "(한나라당과) 끝까지 좁혀질 수 없는 것은 타협정신에 입각해서 표결할 수 있지만 대안을 내놓을 경우 토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영춘(金榮春) 원내수석부대표도 "연내 처리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그러나 이른바 4대 법안 때문에 다른 민생경제법안이 표류해서는 안되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내 강경파의 반발과 한나라당과의 타협시도 불발 등 변수가 발생한다면 당 지도부가 4대 법안의 연내처리를 밀어붙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