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일환기자 =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 이후 국보법 존폐에 대한 당론 결정을 서두르던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템포를 조절하며 당내외 지지기반 확대에 나섰다.

이부영(李富榮) 의장은 8일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대통령 말씀이 있었다고 해서 당론을 완급조절하지 않고, 국민여론을 수렴하는데 충실하겠다"며 "시간이 늦어지면 어떠냐. 그렇게 가겠다"고 밝혀 당론을 서둘러 결정하지 않을 방침임을 시사했다.

이 의장은 "9일 의원총회에서 가능한 한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방침이며, 공안업무에 종사했던 정부 각급기관 종사자와 시민단체 및 보수단체 대표들과도 만나 폭넓게 국민의견을 수렴할 것"이라면서 "집권여당으로서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가면서 당론을 결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후 '폐지 당론'을 향해 가속페달을 밟는 방식을 일단 지양하고 숨을 고르면서 전후좌우를 살펴 신중히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이같은 당지도부의 전략수정은 국보법폐지 당론을 일방통행식으로 몰아붙일 경우 예상되는 당내 반발 등 후유증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의장이 당내 국보법 폐지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우원식(禹元植) 의원 등을 만나 개정론자들과의 충분한 의견교환을 당부한 것도 이 같은 상황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우 의원을 비롯해 임종석(任鍾晳) 이인영(李仁榮) 이은영(李銀榮) 의원 등 국보법 폐지론자들은 이날 오후 안영근(安泳根) 조성태(趙成台) 정의용(鄭義溶) 의원 등 개정론자들과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

또한 최근 우리당이 국보법 폐지쪽으로 당론결정을 강행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데 대해 야당이 "우리당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당론을 결정하는 거수기 정당"이라고 비판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우리당은 당초 국보법에 대한 당론 결정 시기를 오는 11월께로 상정하고 있었다.

국보법 존폐에 관한 여론의 엇갈린 반응도 당 지도부가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부분이다.

국보법 폐지를 지지한 노 대통령의 발언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보법 존치에 찬성하는 의견이 국보법 폐지론보다 높게 나타났다.

10.30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국보법 폐지를 당론으로 결정할 경우 당 지지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명분상 우위에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친일 등 과거사진상규명 드라이브에도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 지도부는 호흡조절에 들어가면서 다각적인 원내전략 수립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당이 정치권의 국보법 논의를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으로 확대하면서 명분을 쌓아나가는 한편, 국민적 공감대를 축적한 뒤 이를 토대로 자연스럽게 당론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우리당의 국보법 폐지론자들은 이날 오후 재향군인회를 방문해 국보법 폐지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퇴역군인들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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