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복래기자 =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5일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핫 이슈'로 부각된 국가보안법 개폐문제에 대해 `폐기'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나서 그 배경과 파장이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저녁 MBC `시사매거진 2580'이 500회 특집을 기념해 가진 `대통령에게 듣는다' 특별대담프로에서 사문화된 현행 국가보안법 폐기를 촉구하면서 현행 형법 보완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는 쟁점 현안에 대한 단순한 판단이나 정책결정 차원이 아니라 노 대통령의 역사관과 시국관, 철학을 총체적으로 반영한 것이라는데 이론이 없다.

최근 친일과 과거사 규명 등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역사바로세우기 작업과 맥이 닿아있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너무 법리적으로 볼게 아니라 역사의 결단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은 노 대통령의 역사 인식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는 시각도 엄존한다.

이런 인식은 우리 위정자들이 비록 국가안정을 명분으로 국가보안법 유지를 주장해 왔지만 실제 우리 역사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고, 어떤 기능을 했는지를 살펴보면 보안법은 당연히 폐기해야 옳다는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노 대통령은 이날 대담에서 "보안법은 대체로 국가를 위태롭게 한 사람들을 처벌한게 아니라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을 탄압하는데 압도적으로 많이 쓰여왔다"며 "이것은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강조, 이같은 인식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물론 이미 사문화된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노 대통령이 폐기쪽으로 최종 가닥을 잡은 것은 개혁과 도덕성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참여정부의 명분과 철학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다시말해 국가보안법을 개정, 독소조항을 폐기하고 아직도 시대적으로 유의미한 일부 조항을 살리는 쪽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굳이 폐기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은 노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 방향과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있다.

국가보안법을 개정해 내용을 보완하는 것이나, 보안법을 전면 폐기하고 일부 조항을 형법에 보완하는 것이나 효과는 별반 차이가 없겠지만 노 대통령은 폐기에 따르는 정치적 상징성을 우선적으로 감안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선 국가보안법 개폐를 둘러싼 여당 내부의 혼선을 정리, 참여정부가 추진중인 과거사 규명과 개혁, 정부혁신 작업에 추동력을 확보하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여론몰이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청와대측의 설명이다. 전적으로 국회와 여야 정당의 논의와 협의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물론 청와대는 정치권이 보안법 존치 쪽으로 결론을 낼 경우 이를 수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지난번 아파트 분양가 공개 문제가 쟁점화됐을 때 노 대통령의 소신은 비공개였지만 열린우리당이 이견을 보이자 `부분 공개'쪽으로 가닥을 잡았던 사례가 원용될 수 있다는게 청와대측 설명이다.

노 대통령은 결국 국가보안법 폐지가 시대의 소명으로 판단하고 있고, 정치권이 폐기쪽으로 방향을 잡아주길 희망하고 있지만, 여야 정치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가 반대할 경우 신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제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는 전적으로 국회와 정치권의 몫으로 넘어간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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