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3∼24일 한-중 외교차관 협상에서 고구려사 왜곡사건과 관련해 합의서가 아닌 5개항의 구두양해를 한 것이 '저자세 외교' 아니냐는 국회 일각의 질타와는 달리, 합의서는 우리 측이 거부했다고 25일 외교통상부 당국자가 말했다.
이와는 달리 중국 측은 시종일관 재발방지를 위한 합의서 채택을 주장했다.
중국 측 논리는 이러했다.
한국내 학계와 정계가 중국 동북지방, 즉 만주를 회복해야 한다는 '고토(古土) 회복'을 내세우고, 또 한국 정부 관련기관의 일부 출판물에서 '만주 진입', '만주 조선' 등의 표현을 하고 있어 중국 정부와 국민의 우려가 많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치를 요구했다.
중국 측은 이런 배경 아래 자국 내에서 고구려사 재해석 운동이 일어났다는 논리를 펴면서, 따라서 합의문에 '양측'이라는 표현을 써서 서로 재발 방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상호주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주한 대사를 역임한 '한국통'인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신임 아시아담당 부부장(차관급)은 23일 9시간30분 간의 '릴레이 협상'에서 이런 논리를 강하게 역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카운터 파트인 최영진(崔英鎭) 외교부 차관은 고구려사와 관련된 한-중 정부간 갈등은 중국 당국이 '정치적이 아닌 학술적으로 풀자'는 합의를 어기고 지난 4월20일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www.fmprc.gov.cn)와 관영매체를 통한 왜곡을 자행하면서 비롯된 것임을 상기시키고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 합의문을 만들 문제는 아니라고 맞섰다.
그는 또 국내 학계와 정계의 행위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정부 차원에서 책임질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중국 당국의 왜곡행위와 '등가(等價)'로 평가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양 측의 이런 주장이 팽팽히 맞선 탓인 지 23일 만찬회동 전까지 만해도 우리 측은 아예 협상 자체를 '깰' 의지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우 부부장은 만찬 회동에서 고구려사 왜곡 사건과 관련한 한국 정부와 국민의 격앙된 반응을 절감했고, 그로 인해 기존 입장에서 일부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
우 부부장은 26일 권력서열 4위인 자칭린(賈慶林)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의 방한에 앞선 '정치적 준비'가 주목적이었던 만큼 양보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회담 후 다른 외교부 당국자가 "협상 마지막에는 중국 측이 당초 (본국의) 지침을 벗어나면서까지 우리 측의 입장을 수용한 것으로 안다"고 말한 데서도 읽혀진다.
최 차관은 이날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 "중국 측이 한국도 왜곡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상호주의를 주장했다"며 "그러나 우리는 이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