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24일 국회의장과 법무부장관에게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했다.

인권위, 국가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보법 폐지 입장표명
규범력 부족하고 존재근거 빈약한 반인권적 법

인권위는 24일 인권위의 최종의결기관인 전원위원회를 거쳐 지난 1948년 공포, 시행된 국가보안법(국보법)에 대해서 전면폐지를 국회의장와 법무부장관에게 권고하였다. 이같은 인권위의 발표는 국가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폐지 입장을 밝힌 것이라 주목받고 있다.

인권위는 국보법의 몇 개 조문 개정으로는 문제점들이 치유될 수 없다며,  "그 법률의 자의적 적용으로 인한 인권 침해 역사, 법 규정 자체의 인권 침해 소지로 인해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켜온 현행 국보법은 전면 폐지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인권위 내의 국가보안법TFT의 연구, 실태조사, 공청회를 바탕으로 역사적, 법적, 현실적 측면에서 검토'한 결과, 국보법은 "제정과정에서부터 태생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국가의 기본적인 형법이 제정된 이후에 이루어진 수 차례의 개정도 국민적 합의 없이 절차적 정당성을 결한 채 이루어졌다"고 지적하면서 "법률의 규범력이 부족하고 존재근거가 빈약한 반인권적 법"이라고 규정하였다.

또한 법률적 측면에서도 국보법은 "행위형법 원칙에 저촉되고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며,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인간의 존엄성을 해할 소지가 많은 점이 지적되고" 있다면서, 국보법이 폐지되더라도 "국가안보 관련 사안은 형법 등 다른 형벌 법규로 의율이 가능하여 처벌 공백도 거의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덧붙여 인권위는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사회의 여론과 결정을 수용할 필요가 있으며, 시대적 환경변화에 부응하는 자세로 북한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국보법의 태생적 문제점과 개정의 정당성 상실 지적
법 적용의 남용으로 인권침해 심각

1948년 일제시대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총 6개조로 만들어진 국보법은 지난 56년동안 총 7차례에 걸쳐 개정되었다.

인권위는 형법 제정이 논의되던 53년 당시에도 대법원장의 "형법으로 국가보안법상의 처벌 대상을 처벌하지 못할 조문은 없다"는 발언도 있었다며 형법 제정 전의 국보법의 내용이 형법으로 충분히 포괄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소개하였다.

또한 인권위는 국보법 개정의 절차적인 정당성도 문제 삼았다. 58년 3차개정시에는 무술경관을 동원해 야당의원들을 의사당 밖으로 끌어낸 후 여당의원만으로 3분만에 통과시켰고, 80년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국가보위입법회의'를 통한 6차 개정은 상정, 제안, 설명, 가결에 채 5분이 걸리지 않았으며, 91년 7차개정시에도 야당의원들에게 심의, 표결에 참여기회조차 주지 않고 불과 35초만에 날치기 통과시켰다고 소개하였다.

인권위는 "국보법의 확대해석의 위험성을 제거했다는 7차개정 이후인 지난 93년부터 2003년까지의 통계만 보더라도 국보법 전체 구속자 3,047명 중 2,762명이 제7조와 관련되어 구속되었다며, 이 법의 남용실태를 통한 심각한 인권 침해 현황을 짐작"케 된다고 밝혔다.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심정형법, 사상과 양심의 자유 제한 우려
국제기구의 지속적인 권고, 국보법 처벌대상 형법으로도 처벌 가능


인권위는 국보법의 제2조, 제3조, 제4조의 내용에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또 범죄행위 실행 전단계의 '예비, 음모'까지 광범위하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근대형법의 '행위형법의 원칙'에 반하는 심정형법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국가보안법은 보다 강한 명확성과 구체성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반국가단체의 규정 자체를 명확히 하지 않음으로써 죄형법정주의 위배에 따른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제7조의 찬양고무 조항은 "헌법상의 언론, 출판, 학문, 예술과 관련된 표현의 자유 및 양심의 자유를 위축시킬 염려와 형벌과잉을 초래할 염려"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덧붙여 "대한민국이 당사국인 국제인권조약, 특히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헌법에 따라 자동적으로 국내법적 효력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은 동 규약과 양립할 수 없어 폐지되어야 될 법률이라는 것이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 지속적인 권고"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국보법 폐지 시 처벌 공백문제에 대한 우려들에 대해서 인권위는 "국가보안법의 규제행위대상은 형법의 내란죄와 외환죄 그리고 공안을 해하는 죄의 장과 겹치고 있어 중복되고 있다"며, 처벌공백은 거의 없다고 밝히고 "제10조(불고지)의 경우 현행법상 처벌공백이 생긴다고 할 수 있으나 이 규정은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남과 북의 법체계상 형평성에도 문제 없어
분단과 냉전시대 당시와는 다른 시대적 환경 인정해야


인권위는 "북한의 대남전략 및 법체계의 변화없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주장도 있"으나, "북한에는 우리의 국가보안법과 같은 안보특별법이 없으며, 북한의 국가주권을 반대하는 범죄와 민족해방에 반대하는 범죄의 규정은 우리 형법의 내란, 외환, 간첩죄와 동일한 내용"이라고 밝혔다.

인권위는 "남과북은 지난 91년 동시에 유엔에 가입함에 따라 국제법상 주권국가로 인정되고 있으며, 유엔가입 이전에도 북한 당국이 북한지역에 대하여 사실상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지적하고, "북한은 한반도의 북측지역을 무단으로 점령하고 있는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사실상의 국가로 보는 것이 변화된 시대적 환경과 국제법 질서에 맞는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72년 7.4 공동성명이래 정치, 경제, 군사, 사회 분야에서 각종 총리급회담, 고위급회담이 총 468회 진행되었고 2000년 6월15일에는 남북정상회담까지 이루어진 현실에서 북한을 여전히 반국가단체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에 빠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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