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준영기자= 평양 시장에서는 바나나와 파인애플이 팔리고 장사꾼이 늘어났으며, 주택 임대료를 받는가 하면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들고 도시빈민층이 생겨날 조짐도 보이고 있다.

2002년 7ㆍ1경제관리개선조치는 이렇듯 북한 사회에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임금과 물가를 대폭 현실화하고 일한 만큼, 번 만큼 분배한다는 원칙은 북한 정권 수립 이후 흔들리지 않았던 평균주의 분배원칙을 밀어냈고 성과급제 및 독립채산제의 확대는 경제단위로 하여금 실적과 실리를 중시하는 큰 흐름을 형성했다.

최근에는 사회 근간을 이뤘던 식량배급제가 사실상 폐지됐다는 관측도 제기됐다.이 때문에 국가가 모든 생활을 보장하던 시스템은 이젠 과거지사로 인식되고 있다.또 경제 단위는 날품팔이식 경영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했다.

시행 초기 월급만 봐도 협동농장은 2천300원 정도인 반면 탄광 노동자의 경우 6천 원으로 설정된 점은 북한 사회에도 현격한 임금격차가 생길 것임을 예고했다.

재일 조선인총연합회(총련)가 발행하는 조선신보가 작년 이맘때 소개한 평양의 한 가정을 통해 변화를 읽어보자.

『평양호텔 내 술을 파는 매대에서 일하는 최윤주(26.여)씨는 자정을 넘겨 일이 끝나는 날이 많지만 실적 향상으로 월 기본급 1천500원을 포함해 매달 3천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 평양시 인민위원회 도시경영국 부국장인 최씨 아버지(57)의 월급인 3천500원에 육박하는 셈이다. 최씨 어머니는 최근에 평양시 승강기사업소 노동자로 새로 일을 시작, 월 2천 원을 받는다.』
이를 보면 실적주의가 근로의욕을 고취시키고 주부들까지 다시 돈벌이에 나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몫, 세몫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협동농장도 마찬가지다. 분배단위가 기존의 작업반이 아니라 그 밑의 분조로 좁혀지면서 실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모내기가 한창인 요즘에는 오전 3시부터 나와 일하는 농민들도 적지 않다는 게 현지 소식통의 전언이다.

시장기능 활성화는 변화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해 3월 개장한 평양 통일거리시장은 기존의 농민시장을 공산품까지 파는 종합시장으로 기능을 확대하는 시범장이 됐다. 주말에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TV는 물론 DVD플레이어도 판다. 개인에게 토지임대를 시작했다는 징후도 포착됐다. 김진경 연변과기대 총장이 지난 3월부터 북한 당국이 개인에게 토지를 임대한다고 전한 데 이어 중국 신화통신도 지난 5월 북한에 다녀온 뒤 "적당한 선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소규모 개인영업을 허용했고 상점임대와 개인토지사용 허가제를 도입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신보는 지난해 12월 "실리사회주의의 대담한 시도는 되돌릴 수 없는 흐름으로 정착됐다. 우여곡절은 겪었지만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인플레와 빈민층 등장 등 부작용은 북한 당국이 풀어야 할 숙제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3월 평양발 기사에서 "통일거리 시장입구의 안내판에는 쌀의 kg당 상한가가 240원으로 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250원에 팔렸다"면서 "1월에 185원에 팔렸다는 국제기구 관계자의 말을 감안하면 적어도 쌀값에서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나타난 것"이라고 전했다.

빈민층 등장은 물가가 오른 반면 임금격차는 심화되면서 도시 근로자를 중심으로 구매력이 약화된 데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세계식량계획(WFP)은 올해 처음으로 저소득층 36만6천 명을 대북 식량지원 대상에 포함시켰다.

경제개혁이 정상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만성적인 에너지난 및 원자재난이 해소되는 동시에 외국 자본과 신기술을 유인할 수 있는 혁신적인 개방정책이 뒤따라야할 것이라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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