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러 나라가 자주와 안전과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 상호간에 동맹을 맺고 집단안보체제를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자주와 동맹의 이분법적 논란을 넘어서야 합니다."
최근 주한미군 지위변경과 감축 등 한미동맹 재조정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집단안보체제'를 거론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6일 오전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49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추념사를 통해 "상호동맹이나 집단안보체제는 이미 세계의 보편적 질서"라며 집단안보체제를 언급했다.
노 대통령은 "이제 우리는 자주와 독립을 지킬만한 넉넉한 힘을 키워가고 있"다며 "더 이상 동북아 정세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변방의 나라는 아"니라고 선언하고 "우리의 이런 위상과 역할에 비추어볼 때 우리의 힘으로 안보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자주국방에 대한 입장을 재천명한 셈이다.
물론 "그와 함께 한.미 동맹관계도 잘 가꾸어 나가겠"다며 "자주와 동맹은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의 개념으로 관리해 나가야 겠"다고도 말해 기존의 '협력적 자주국방'의 입장을 고수했다.
안보환경 개선, "남북간 신뢰증진이 무엇보다 중요"
그러나 이번 노 대통령의 추념사에서 정작 주목되는 대목은 "안보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남북간 신뢰증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 점이다.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 이같은 상황인식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자주와 동맹을 거론하며 '집단안보체제'를 염두에 둔 상태에서 이같은 구상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북핵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안보문제에 있어서 남북간 신뢰증진을 거론한 것은 "이번에 열린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하는 상황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핵문제가 해결되기 전이라도 남북이 군사적 신뢰조치를 취할 수 있고 이것이 '안보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담겨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한미동맹과 아랍권 관계 고려 이라크 파병
노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해 "외교적인 노력과 파병부대의 성실한 노력을 통해서 오랜 친구인 미국과의 우호관계도 돈독하게 발전시켜 나가면서 이라크를 비롯한 아랍권으로부터도 환영받을 수 있는 성과를 거두어 나가도록 지혜를 모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추가파병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나 추가파병 문제가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며 "최대한 반드시 다국적군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과 반면에 파병의 명분과 이라크를 비롯한 아랍권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파병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음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한미동맹과 국제사회 여론, 아랍권과의 관계가 모두 중요하다며 "무엇보다도 우리 군인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전제에서 추가파병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이래 작년 국군의 날을 비롯해 중요한 행사장에서 나름대로 '준비된' 외교안보통일전략 등을 밝힌 바 있어 이번 현충일 추념사가 담고 있는 내용이 일회적인 발언이 아니라 정부기관 내에서 검토된 의견인 것으로 보인다.
집단안보체제와 남북간 신뢰증진이라는 두 전략이 한미동맹이라는 기존 전략과 어떻게 결합해 조화.상충관계를 빚을지 관심있게 지켜볼 일이다.
| 현충일 추모사 |
오늘, 마흔 아홉 번째 현충일을 맞아 우리의 자주독립과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주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거룩한 희생을 기리며, 삼가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한없는 존경과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선열들의 애국충정이 있었기에 엄청난 시련 속에서도 우리의 역사는 자랑스럽게 이어져 왔습니다. 3.1운동에 이어 상해임시정부를 세우고 광복의 그 날까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서 줄기차게 투쟁해 왔습니다. 6.25 전쟁의 비극도 수백만 용사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겨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 평화와 번영, 이 모두가 선열들의 숭고한 헌신의 덕분입니다. 그러나 선열들을 추모하는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새길 때마다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식민지배의 역사적 진실은 다 가려지지 못했고, 혼백마저 조국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독립투사들도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제대로 예우 받지 못하는 후손들도 있습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또 미안합니다. 애국을 명예로 지켜드리는 것은 국가의 기본책무입니다. 정부는 선열들이 물려주신 민족자존의 역사와 가치를 바로 세우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와 6.25 전사자 유해 발굴 등에도 더욱 힘써 나가겠습니다. 무엇보다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이 자랑과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선열들이 목숨 바쳐 지키려했던 나라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주도해가는 당당한 자주독립 국가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주와 독립을 지킬만한 넉넉한 힘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경제력도, 국방력도 크게 성장했습니다. 더 이상 동북아 정세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변방의 나라는 아닙니다. 우리의 이런 위상과 역할에 비추어볼 때 우리의 힘으로 안보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나갈 것입니다. 그와 함께 한·미 동맹관계도 잘 가꾸어 나가겠습니다. 상호동맹이나 집단안보체제는 이미 세계의 보편적 질서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자주와 안전과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 상호간에 동맹을 맺고 집단안보체제를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자주와 동맹의 이분법적 논란을 넘어서야 합니다. 자주와 동맹은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의 개념으로 관리해 나가야 겠습니다. 안보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남북간 신뢰증진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열린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서해상의 우발적인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합의를 이룬 것은 그 의미가 매우 큽니다. 해마다 꽃게철만 되면 무력충돌이 우려되던 서해 바다에 이제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는 평화가 정착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해 다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우선, 한·미 우호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존중해서 최대한 반드시 다국적군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과 반면에 파병의 명분과 이라크를 비롯한 아랍권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파병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한·미 우호관계도 대단히 중요하고, 국제사회의 여론, 아랍권과의 관계도 다 함께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군인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외교적인 노력과 파병부대의 성실한 노력을 통해서 오랜 친구인 미국과의 우호관계도 돈독하게 발전시켜 나가면서 이라크를 비롯한 아랍권으로부터도 환영받을 수 있는 성과를 거두어 나가도록 지혜를 모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최근 우리 군의 해외 파병활동을 보면 충분히 이 두 가지의 목적을 모두 달성할만한 역량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논의를 계기로 해서 두 가지의 과제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국민적 합의를 모아나가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이 곳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선열들의 영전에 결코 부끄럽지 않는 나라를 만듭시다. 불행했던 변방의 역사는 우리 세대로 끝을 내야 합니다. 자자손손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자주독립국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동북아 중심국가를 만들어 나갑시다. 선열들이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거룩한 헌신을 추모하며,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