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한국민권연구소 연구위원)


주한미군의 일부를 이라크로 빼간다는 사실이 공표되면서 안보 논란이 한창이다. 여당과 정부는 ‘안보 불안 없다’는 것을 연일 강조하고 있으며, 한나라당에서는 ‘안보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미국이 주한미군의 일부를 이라크로 빼 가는 진정한 이유와 그 배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논의 없이 ‘안보 불안’에 대한 언급만 있다는 것이다.

1. 1석 4조의 효과를 노린 주한미군 이라크 차출 계획

① 주한미군 재배치의 본격화

5월 18일 반기문 외통부 장관은 “미 정부는 해외주둔미군 재검토작업을 통해서 지난 18개월간 전 세계에서 미군배치를 조정하는 방안을 강구해왔다고 하면서, 기본적으로 최근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통합된 해외주둔군 배치변화를 구상해왔다고 했다. 이러한 구상을 통해서 미측은 아태지역에 신속하게 해군, 공군 전력을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작전상의 추가부담 없이도 주한미군 차출이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금번 차출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폴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 역시 5월 18일 미상원 청문회에서 “우리는 미군재배치와 주한미군 재조정에 대해 의회 및 아시아 우방국들과 이미 오랫동안 협의해왔다”고 말했다.

위의 발언들은 이번 주한미군의 차출은 미국의 재배치 구상에 따라 ‘우방국들과 이미 오랫동안 협의’한 결과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같은 사실은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의 ‘국정브리핑’에서도 확인된다. NSC 사무처는 “미국은 지난해 11월 ‘해외주둔군 재검토’(GPR) 계획을 공식 발표하고 한국뿐 아니라 독일, 일본 등 전 세계 주둔 미군의 전반적 재조정을 검토 중"임을 밝혔고, “이때 정부는 미국이 GPR 계획의 실현을 위해 관련 사항의 협의를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에 대비해왔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란 무엇을 목적으로 한 것인가. 미국은 지난 해 11월 미국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계획을 공식 발표했으며 지난 4월 <워싱턴 포스트>는 주일미군을 포함해 1만 5천명의 감축을 예상하는 보도를 내기도 하였다. 워싱턴의 정책연구소 등에서도 1만 2천명의 감축을 거론한 바 있다.

이 계획의 핵심은 미국의 이익에 대한 위협이 전세계적으로 분산돼 있으며, 위협의 성격 또한 과거 옛소련의 위협, 동북아?중동지역 분쟁에서 테러, 대량살상무기, 핵 등 비대칭적 위협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유연한 전략과 그에 걸맞는 전력 그리고 새로운 개념의 기지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21세기 세계 지배를 위한 군사 전략의 변화인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갖고 있는 주한미군을 비롯한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는 “병력 부대 기지의 숫자보다 능력에 중점을 둔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미국의 계획은 미 2사단의 1개 여단을 이라크로 차출하겠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이라크 차출 대상이 2사단이라는 것은 이번 차출이 주한미군 재배치의 일환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사단은 소위 ‘인계철선’의 의미를 갖는 상징적인 부대로서, 주한미군 중에서 가장 이북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부대였다. 미국이 재배치에서 가장 먼저 추진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2사단의 한강 이남 배치였다. 즉 미국은 2사단의 일부를 이라크로 차출하면서 2사단 병력을 한강 이남으로 이전하기 위한 단계를 밟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재배치 전략은 육군 전투병력은 줄이고 신속기동여단과 신형무기를 배치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그렇게 본다면 주한미군 재배치를 위한 단계는 이미 작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작년 6월 110억 달러를 투자해 주한미군의 전력을 증강하겠다고 발표하였으며, 한반도에 신형 패트리어트 미사일(PAC-3), 아파치 미사일 등을 배치하고 섀도우 200 전술형 무인항공기를 들여놓기도 하였다. 또한 장거리 타격능력을 향상하고자 괌에 전력보강을 서두르고 있으며, 미국 국방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하와이 또는 괌에 1개 항공모함 전투단을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개전 초기 48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과거에는 병력으로 이를 커버했지만 지금은 첨단 장비를 이용한 능력으로 이에 대응하고 있다”는 주한미군 관계자의 발언은 이같은 병력배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보여준다.

한편 미국은 주한미군을 이라크에 차출하고 나서 생긴다는 ‘전력공백’이라는 명목으로 새로운 무기를 배치하겠다고 했다. 5월 19일 경향신문에 의하면 “주한미군 감축에 따른 전력공백 해소를 포함한 동북아 전력 증강을 위해 이라크에서 처음 실전 투입된 무인전폭기와, 실전에 처음 배치되는 무인전투기 수 개 대대가 동북아 지역에 연내 배치될 것”이라고 한다.

또한 요격용 미사일인 패트리어트 미사일 2개 중대와 미 35항공여단 소속 병사 350명을 내년까지 한국에 배치할 계획도 공개된 바 있다. 공격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무인 정찰용 항공기 ‘프레데터’를 올해 안에 주한미군에 실전배치된다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에 투입되었던 ‘프레데터’는 대전차 미사일 등으로 무장할 수 있으며, 원격 조정으로 정찰 및 감시, 공격임무까지 수행할 수 있다. 최대 900km 떨어진 곳까지 29시간을 비행할 수 있는 첨단장비이다.

사실 이같은 전력 증강은 ‘전력 공백’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앞에서 언급했던 ‘숫자보다 능력에 중점’을 두는 GPR의 원칙에 따르는 것일 뿐이다. ‘북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전력 증강’이 아니라 ‘미국의 군사구도를 완성하기 위한 전력 증강’일 뿐이며 이는 ‘한반도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는 주된 요인이 된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에 대한 것이다. 이미 한미동맹 정책구상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을 동북아시아로 확장한다는 것이 합의된 바 있으며, 최근 공개된 미국 의회예산국 보고서에도 이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주한 미군의 장비를 더욱 가벼운 첨단 장비로 대체하고 부대 위치를 서울 남쪽의 수송허브로 이동시킴으로써 주한 미군을 아시아 전역의 지역 분쟁 대응에 활용토록 하는 방안을 최근 제기했다.”

이같은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미2사단의 이라크 차출은 주한미군 재배치의 일환에서 진행되는 것이며, 주한미군 재배치는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반도에서 동북아시아로 확대한다는 미국의 구상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미2사단의 배치는 미국의 21세기 세계지배전략 속에서 이루어지는 군사 변화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② 새로운 한반도 전쟁계획의 현실화 과정

GPR은 다음과 같은 5가지를 핵심전략으로 세웠다.
- 동맹관계의 효율화와 필요시 새로운 협력 관계를 수립한다.
- 불확실성에 대응할 유연성 개발한다.
- 지역내 및 지역간 활동에 역점을 둔다.
- 유사시 신속하게 동맹국을 지원하는 전개능력을 확보한다.
- 병력 부대 또는 기지 숫자 보다 능력에 중점을 둔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GPR은 단순히 기지를 재배치하는 정도가 아니라 미국의 21세기 국방전략과 전쟁전략에 대한 검토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21세기 패권 유지를 위해 테러 등과 같은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신속’배치능력과 첨단장비라는 ‘유연성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이같은 전략을 실험하며 이같은 계획을 완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추진하는 GPR은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전쟁의 확대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주한미군의 재배치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계획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주한미군 재배치와 더불어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계획을 보다 구체적으로 변경하고 있다.

우선 언급해야 할 것은 미 2사단의 이전(이것은 한강 이남으로의 후방 배치 그리고 그의 변종으로 이해할 수 있는 2사단 일부의 이라크 차출을 포함한다)과 한반도 전쟁 계획과의 상관관계이다. 이미 그 상관관계가 밝혀졌기 때문에 간단하게만 언급하면, 미국에게 있어서 2사단의 전진배치는 한반도 전쟁 계획을 ‘실행’하는데 하나의 ‘장애물’이 되어 왔다. 즉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미 2사단은 이북의 장거리 사정포의 사정거리에 노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과거부터 일관되게 2사단의 후방 배치를 추진해 왔었고, 최근 주한미군 재배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 왔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이라크 차출을 시작으로 하여 2사단의 이전을 기정사실화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남은 2사단 병력마저 한강 이남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평택?오산 기지로 옮기려는 계획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며, 미 2사단 이전의 완성은 곧 미국의 한반도 전쟁 계획에서 중요한 한 축이 완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손상에 대한 우려 없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2사단의 이라크 차출과 이전은 이같은 직접적 연관 이외에도 미국의 한반도 전쟁 계획과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것은 곧 2사단의 이전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과 동시에 한반도에서의 새로운 전쟁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미국의 대북 전쟁계획은 작전계획 5027이었다. 물론 이 계획이 완전 폐기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작전계획 5027 이외에도 다양한 전쟁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작전계획 5026이다. 이 계획은 소위 이북의 전략 지역에 대한 ‘정밀타격’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미국은 이북 전쟁지도부와 군사시설에 대한 ‘족집게식 공격’을 통해 이북의 전쟁 수행 능력과 의지를 무력화하는 것을 목표로 지난해 초부터 수립에 착수하였으며, 지난 해 말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계획은 유사시 소수의 미 증원군으로 전쟁을 치른다는 것이 특징인데, 이러한 특징은 주한미군 재배치와 5027 작전계획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신속하고 기동성 있는 군사력을 중심으로 전쟁계획을 수립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은 작전계획 5030이라는 것도 마련하였다. 작전계획 5030은 럼즈펠드가 미군 지휘관들에게 새로운 전쟁계획을 고안하라고 주문하여 마련된 것으로서, 이북군대의 자원을 고갈시켜 전쟁능력을 제거하고 이북 정권의 붕괴를 노린다는 것이다. 즉 이 전쟁계획은 RC-135 정찰기들을 이북 영공에 더욱더 가까이 날려 이북이 항공기를 띄우게 만들고 이런 과정을 통해 이북의 제트 연료를 고갈시킨다는 것이다. 또 미군 지휘관들은 여러 주간의 ‘깜짝 군사훈련’을 실시하여 이북 사람들이 벙커에 들어가 귀중한 음식과 물을 비롯한 여러 물자들을 고갈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인민군과 인민들 사이에 반발이 생기게 되고 이북의 정권에 반대하는 집단행동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마련되어 있던 5027 작전계획은 전면전을 대비한 것이다. 따라서 광범위한 병력, 국방백서에 따르면 유사시 미 증원 병력이 69만 명에 달한다. 이에 반해 작전계획 5026은 소규모의 병력으로 이북에 대한 정밀타격을 가하는 계획이며, 이는 이북의 군사력을 사전에 제거하고 대규모의 전면전을 치를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5026과 5027이 고강도전략이라면 5030 계획은 저강도전략이다. 즉 군사적 충돌이 아닌 군사훈련으로 이북의 정치력과 군사력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이 과연 성공할 것인가의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같은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는 자체가 미국의 호전적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와 같은 다양한 전쟁 계획 수립이 주한미군 재배치라는 새로운 군사전략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한미군 재배치가 곧 새로운 전쟁을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주한미군 재배치의 본격화로 이해되는 이라크 차출 자체가 새로운 전쟁 계획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한반도에서의 새로운 전쟁계획의 수립은 미 국방부가 마련한 새로운 군사전략인 ‘1-4-2-1 전략’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어 그 호전성과 위험성을 더해준다.

미국의 군사전문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아킨(William M. Arkin)은 3월 21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T)에 '미 전쟁계획, 간소화는커녕 더 요란해져'(War Plans Meaner, Not Leaner)라는 글을 게재해 미 국방부가 마련한 새 군사전략의 개요를 공개했는데, ‘1-4-2-1 전략’은 클린턴 행정부가 8년간 유지했던 오던 '두 개 전쟁 동시승리전략'(일명 '윈-윈(Win-Win) 전략')을 대체하는 것으로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본격 검토해 온 신(新)군사전략의 결정판으로 볼 수 있다.

‘1-4-2-1 전략’은 2002년 8월 부시 미 대통령이 비상계획지침‘(Contingency Planning Guidance)에 서명하면서 그 청사진이 드러났고 지난 한 해 동안 정형화작업을 거친 것이며 2001년 9월 30일 발표된 4개년 국방검토보고(QDR)의 핵심 개념들인 △본토 방어와 △주요 지역에서의 긴급사태 대비 및 △한 개 전선에서의 '결정적 승리' 등을 기본 축으로 하고 있다.

‘1-4-2-1 전략’에서 첫 번째 ‘1’은 미국 본토에 대한 완전한 방어를, ‘4’는 유럽과 동북아시아, 동아시아, 중동-서남아시아 등 4개 핵심 지역지역에서의 ‘침략 및 위협 억제’를 의미한다. ‘2’는 이들 4개 지역 가운데 2개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침략을 동시에 물리칠 수 있는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이고 마지막 ‘1’은 두 개 전쟁 가운데 한 곳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다는 것이다.

아킨의 설명에 따르면 두 개 전쟁 가운데 "결정적 승리"를 거둘 대상과 그 시기는 미국이 결정하며 상대국에 대한 '정권 교체'나 '점령' 또는 이에 준하는 상황을 '결정적 승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직 그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킨에 의해 밝혀진 ‘1-4-2-1’ 전략의 한반도판으로 5027 작전계획 이외에 5026, 5030 등 다양한 전쟁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③ 한국에 대한 이라크 파병 압박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이 이남에서의 안보 논란을 부추겨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압력을 넣겠다는 의도를 갖는 것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미국은 이미 작년부터 한국군의 파병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의 일부를 빼내어 이라크로 보낼 수밖에 없다는 발언을 하면서 한국군 파병을 강요해왔었다. 이에 발맞추어 이남의 냉전수구세력들도 주한미군의 차출은 안보 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조속한 한국군 파병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물론 최근 극도로 악화된 이라크 상황 때문에 미국은 이라크 주둔 병력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폐기하고 기존의 병력을 유지 혹은 병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병력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것도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의 하나의 배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 상황이 하나의 배경이었다 하더라도 주한미군 차출은 한국군 파병에 대한 압력 차원의 의도까지 갖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④ 안보 논란을 일으켜 노무현 흔들기 효과

우리는 한 가지 사실에 더 주목해야 한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을 한국에게 요청한 것은 바로 5월 14일의 일이다. 물론 미국이 공식 요청한 것은 5월 18일이지만 비공식 요청은 14일의 일이며, 그 사이에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방침을 이해한다는 의견을 정리했고, 18일 미국의 공식요청을 받았고 그날 외교통상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것이다.

문제는 5월 14일이라는 날짜다. 이날은 바로 헌법재판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기각한 날이다. 즉 미국은 노무현 대통령이 복귀하는 날 이라크 차출을 요청(수직적 한미 관계상 사실상의 통보)한 것이다. 물론 이 시기가 이라크의 상황이 악화되어 가는 시기였지만, 14일 미국이 요청한 것은 무언가 흑심이 있다.

즉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은 다시 복귀한 노무현 대통령을 흔들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이후 미국이 ‘노무현 흔들기’와 ‘노무현 길들이기’ 차원의 수많은 공작을 한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복귀는 1년 전의 취임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갖는다. 총선의 결과 열린우리당이 제1당이 되면서 노무현의 개혁정치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이러한 개혁은 필연적으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미국이 노무현 대통령의 복귀를 그냥 앉아서 맞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실제로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이 결정된 이후 냉전수구세력들은 다시 안보 논리를 내세우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무현 흔들기가 시작된 것이다. 냉전수구세력들로 하여금 안보 논리를 내세워 한반도 위기를 조장하게 만들고,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추진케 함으로써 노무현 대통령의 향후 개혁 행보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의도가 이번 주한미군 이라크 차출 결정에 한 몫 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2. 이라크 차출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① 허울뿐인 ‘한미동맹’, 한국정부에겐 어떤 결정권도 없다

주한미군 재배치와 2사단 이라크 차출에 대해 한국정부는 어떤 권한을 갖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 어떤 결정권도 없어 보인다.

미국은 GPR과 관련하여 해외주둔미군을 ‘전력투사 근거지’(PPH?1급), ‘주요 작전기지’(MOB?2급), 소규모상주부대인 ‘전진 작전거점’(FOS?3급), 소규모 연락요원 상주지인 ‘안보협력 대상지역’(CLS?4급) 등 4개 등급으로 재편되며, 주한미군을 1급과 2급 사이로 조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지난 2월 열린 제7차 미래동맹정책구상회의 당시 주한미군은 대규모 병력근거지인 PPH와 중추적 역할을 하는 상설기지인 MOB의 중간급이 될 것이라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통보”이다. 미국에게 있어서 한국 정부는 “통보 대상”인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주한미군 이라크 차출에서도 나타났다. 5월 19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조영길 국방장관은 “오늘 아침 리언 라포트 한미연합사령관이 ‘늦어도 8월 15일까지 주한미군을 보내달라는 이라크 주둔 미 사령관의 요청이 있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어 조 장관은 “차출되는 병력이 3,600명인지도 아직 확정 사안이 아니며 한미연합사령관이 20일 워싱턴으로 출장 가서 최종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출 시기, 차출 규모 이런 모든 것을 결정하는데서 한국 정부는 논의구조에 속해있지 않다. 한미연합사령관이 이라크주둔 미 사령관의 요청을 받아 차출 여부를 결정했으며, 차출 규모와 시기는 한미연합사령관이 워싱턴(의 미행정부)으로 출장 가서 최종 확정하는 것이다. 역시 한국 정부는 이같은 ‘워싱턴’의 결정을 “통보”받을 뿐이다.

②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 목적은 ‘대북 억지’가 아니라 미국의 국익 실현이다

주한미군은 한반도의 안보 즉 소위 ‘이북의 남침 위협’을 억지하기 위해 주둔한다고 알려져 왔다. 그리고 미 2사단은 의정부에 존재하는 부대로서 ‘인계철선’의 역할을 맡는 ‘이북의 남침 억지’에서 최전선에 있었던 부대이다. 미국의 표현대로 미2사단은 ‘고도의 준비태세와 훈련을 갖춘 최정예 부대’이다.

그렇다면 대북 억지에서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2사단을 이라크로 차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위 언론에서 이야기하듯이 주한미군이 진정 대북 억지 차원에서 주둔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전략 속에서 지배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며, ‘대북 억지’라는 것 역시 미국의 전략 수행을 위한 하나의 명분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미국은 이라크 차출을 발표하면서 ‘대북 억지력이 약화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즉 안보 불안을 내세우며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을 반대하는 냉전적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와 모순되게도 ‘전력 공백’을 내세우며 전력 증강을 서두르고 있다. 주한미군 일부 병력의 차출로 생긴 ‘전력 공백’을 메운다는 것인데, ‘억지력이 약화되지 않’았다면, 공백을 메울 필요도 없고, 따라서 전력 증강도 필요없는 일이다. 그러나 미국은 전력 공백을 내세우며 새로운 무기를 도입하고 있다.

오로지 자국의 이익에 따라 ‘북한 위협’, ‘대북 억지’를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이 근본적으로 어디에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3.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① 냉전적이고 예속적인 한미동맹의 틀에서 벗어나자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은 우리에게 한미 군사동맹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가 결코 한반도 안보 때문이 아니라는 것, 주한미군의 주둔, 감축, 철수 여부는 한국과는 전혀 무관하게,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미동맹을 운운하며 미국의 영향력 아래 남아있어야 한다고 강변하는 세력들이 있으며, 현정부의 대미 인식 역시 이같은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냉전수구세력들의 논리야 그렇다치고,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위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과거 냉전수구세력들의 종속국방에 비하면 긍정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나 ‘협력’이라는 말 속에 미국과의 불평등하고 수직적인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는 참여정부의 대미 예속성이 담겨 있다.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 세계 패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미국에게, 인권과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이라크 민중들의 인권과 민주주의적 권리를 무참히 짓밟는 미국에게, ‘북한 위협’이라는 논리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고무줄처럼 적용하고 있는 미국에게 한국의 이익을 내맡길 수 없다. 그들과의 협력이란 곧 한국의 이익이 아닌 미국의 이익을 위한 협력일 뿐이다. 최근 전개되는 일련의 사태가 그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1세기 자주와 민주개혁의 시대에 ‘한미군사동맹’이라는 20세기 침략과 야만의 잣대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과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한미동맹을 주장하는 과거의 냉전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21세기 자주와 민주개혁의 요구에 맞게끔 한미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민족공조를 통해 민족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진정한 ‘자주국방’을 확립해야 할 때이다.

② 한미동맹을 강요하는 법적, 제도적 틀을 과감히 혁파하자

냉전이 지배하는 과거의 시대 상황에서 한미 관계를 규정해왔던 법적, 제도적 틀이 한미관계의 재정립을 반대하고 새로운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전면 개정 혹은 폐기하는 것은 한미 군사 관계를 재정립하는 첫 번째 조치가 될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주한미군의 주둔을 법적으로 뒷받침한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주한미군은 미국의 이해관계 실현을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주둔을 합법화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줄 뿐이다.

다음으로 지적해야 할 것은 한미연합방위체제라는 명목아래 유지되는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이다. 1994년 평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게 넘겨졌다 하더라도, 평시와 전시의 규정을 주한미군이 하고 있는 조건에서 평시작전통제권의 환수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전시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군이 쥐고 있는 현실에서 참여정부의 자주국방정책은 결코 실효를 거둘 수 없으며, 반쪽짜리 자주국방으로 남을 것이다. 참여정부의 ‘협력적 자주국방’이 진정한 ‘자주국방’으로 가기 위해서라도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는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은 미국의 전쟁 계획의 완성을 위해 존재한다. 현재 미국은 주한미군을 경량화하고 신속배치능력을 키우고 새로운 최신무기를 도입하는 것으로 군사전략을 바꾸고 있으며 새로운 군사전략을 맞는 새로운 전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진행하는 일체의 합동군사훈련은 미국의 새로운 전쟁계획에 맞는 한미연합군사능력과 지휘체계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장성급 회담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장성급 회담 개최에 대해 합의를 보고 5월 말에 장성급 회담이 개최된다. 장성급 회담에서한미합동군사훈련 중지에 대해 논의할 것을 요구하는 북측의 주장에 대해 남측은 남북 사이에 논의할 성격이 아니라며 거부하고 있지만 진정 장성급 회담이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지는 반드시 장성급 회담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중지되어야 할 문제이다. 참여정부가 최근 사태 전개에서 교훈을 찾고 장성급 회담에서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기를 촉구한다.

③ 주한미군 철수 운동을 본격화하자

지금까지 주한미군 철수는 한국사회에서 금기의 영역이었다.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한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기본 체제와 질서를 부정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었으며, 따라서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는 인사들이나 단체들은 반체제인사나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가혹한 탄압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실체가 드러나고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이 드러난 이상 더 이상 주한미군 철수 운동이 금기의 영역 혹은 소수만의 운동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될 일이다. 이라크에서의 포로 학대사건은 미국의 가치관이 어떠한지를 확실히 보여주었고, 2사단의 이라크 차출은 주한미군의 주둔 이유와 목적을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주한미군 재배치와 그에 따른 군비증강 그리고 새롭게 수립되는 전쟁계획과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주한미군의 한반도에 주둔함으로써 생겨나는 문제이며, 미국은 주한미군을 통한 군사적 강점을 시작으로 한국에 대한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여 주한미군은 미국의 대한반도 지배정책의 첨병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주와 통일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 민족 앞에 주한미군은 더 이상 주둔 명분을 갖지 못한다. 일본식민통치에서의 해방 60년을 맞이하는 2005년은 미국의 군사 강점 6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미국의 군사 강점과 지배를 60년 동안 허용해 온 것만도 치욕스러운 일이거니와 그 이상을 넘긴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민족의 자주를 위해,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조국 통일을 위해 주한미군 철수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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