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재(서울연합 상임의장)

 


▶『한국근현대청년운동사』
  지은이 : 전상봉            펴낸곳 : 두리미디어
  펴낸날 : 2004년 5월 10일   책의 형태 : 신국판
  면수 : 329쪽               값 : 15,000원
우리 민족에게 지난 20세기는 신식민지로 이어진 비극의 역사였다. 지난 세기 우리민족은 외세의 폭력에 맞선 저항과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한 역사이기도 했다.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는 수많은 애국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이 같은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역사의 한가운데 청년학생들이 있었다.

청년학생은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를 이끌어 온 기관차였음에 분명하지만 그 누구도 청년학생운동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서술해 내는 작업에 선뜻 뛰어들어 성과다운 성과물을 남긴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나는 『한국근현대청년운동사』를 펼쳐들고 읽기 시작하면서 여느 사상이론서보다 더한 부담을 느껴야 했다. 그 부담감 때문에 불과 열 쪽도 못 넘기고 담배를 물고 거실을 서성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저자는 그 누구도 지고 나설 수 없었던 무거운 짐을 지고 나서야만 했을까. 첫째는 저자 전상봉이야말로 자기 나름의 사관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역사를 파악할 수 있는 학구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요, 두 번째는 그가 불고가사(不顧家事) 하는 뚝심으로 정력을 쏟을 줄 알았기 때문이요, 세 번째로는 청년학생운동에서 갖추어진 그의 경험과 사상이론이 운동의 계승과 지향을 선도할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청년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정의롭고 집단주의적 의리가 강하며 시대변화에 민감하여 자신의 이론처럼 실천하고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에서 청년들은 갑신정변, 동학농민항쟁, 의병항쟁, 활빈당 활동을 시작으로 3.1항쟁과 반일민족해방 투쟁을 거쳐 해방 후 단선단정 반대, 일제잔재의 청산과 통일민주조국을 건설하고자 피를 흘린 역사가 세월 따라 합법으로, 비합법으로 혹은 대중의 가슴속에 묻혀진 양심으로 계승되어 왔다.

그 뒤에는 4.19로, 6.3으로, 5.18로, 6.10으로 이어져 왔고, 오늘날 촛불로 광화문을 메우는 이 시대의 대세에도 그 중심 동력은 청년학생들이다.

이 숙연한 전제에서 전 민족의 청년운동의 역사를 접한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감동이다. 자그마치 약 150년에 가까운 역사에서 부침을 거듭한 그 많은 단체들과 사건들, 인물들은 단체와 인물의 계급적 차이만큼이나 서로 다른 강령적 지향성의 차이를 가졌지만 이 모두를 초연한 양심인의 자세에서 저술한 그 차분한 지성과 용기는 단연 군계일학이다.

 그러나 옥에 티라고나 할까 몇 대목만 짚어보기로 하자.

 일제의 기만적 문화통치가 3.1항쟁요, 전 민족적 자각과 내외의 독립운동에 신기원을 마련한 역사적 거사였다면 3.1항쟁에서 경신학교 졸업생 정재용이 팔각정에 올라 독립선언문을 읽었고, 그 알량한 민족대표 33인은 요릿집에 앉아 이러쿵저러쿵했다면 다만 몇 줄이라도 그 계급적 제한성을 지적했어야 했다.

1920년대 중반부터 1953년까지 이런저런 족적을 남긴 박헌영은 어쨌든 역사의 사람이라 할 것이지만 그가 평북경찰부에서 숫제 미친놈 취급을 받고 풀려난 데서부터 시작해서 생을 다하기까지에는 이런저런 의혹이 참으로 많은 사람이었던 사실에 비해 4차에 걸친 조선공산당 탄압만 서술이 되었고 그에 대해서 언급이 없는 것은 독자의 욕구 충족에 미흡하다 할 것이다.

해방공간에서 민족청년단이 항일항쟁의 장군을 지도자로 내세웠을 뿐만 아니라 정연한 제복을 입었던 가장 규율 있는 청년단체처럼 보였지만 민족을 내세워 민족을 배반했고, 애국을 내세워 분단에 앞장섰다는 점에서 별 수 없는 극우 테러집단이지만 민족이란 외피 때문에 가장 긴 생명력과 이승만의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에서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게 무엇인지에 대하여 뭔가 한 줄은 남겼어야 했다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다.

기왕에 우익청년운동으로 표현되는 해방공간의 이런저런 청년운동이 거론된 바에야 50년대 그 악명 높았던 화랑동지회와 반공청년단이 빠져있는 것도 아쉬운 일이다.

또한 80년대 중반의 청년학생운동의 소중한 의미는 정파와 관계없이 토론이 뜨거웠다는 사실을 넓게 추적한 것은 좋은 일이나 대중화 논리에 밀려 일체의 비합법 서클을 기계적으로 해체한 학생운동의 과오는 지적되었어야 마땅하다.

87년 6월항쟁을 전후하여 민중의회를 구성하자고 들고 나온 관념적 좌편향이 단명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에서 무엇을 배울 것이며, 성급하게 비판적 지지를 주장하면서 공정선거를 담보하기 위한 중립내각을 주장한 김대중 씨의 주장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학생운동의 방침이 옳았는지에 대해서도 짚었어야 했다.

해방공간에서나 4.19혁명에서 항쟁의 주역이었던 고등학생들의 운동적 쇠락을 점수경쟁으로 내몰리는 공교육의 붕괴로 지적했으니 그 혜안에 무슨 토를 달 것인가.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범민련 해소론에서 노정된 학생운동의 우편향과 이에 대한 학생대중의 반동적 좌편향이 97년 제7차 범민족대회를 놓고 영웅적 항쟁이냐, 관념적 좌편향이냐 하는 점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없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게 느껴진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 가운데 체제와 제도를 달리하는 북녘 사회에서는 청년운동이 어떤 역할을 하며 그 역사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에 대하여 체계 있게 설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의 청년운동이 20년대로부터 시작되어 8.15 해방공간에서 공산주의 청년뿐만 아니라 기독교 청년까지를 망라하여 북조선민주청년동맹을 결성한 것을 시작으로 1964년 조선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으로 개편되었고, 이는 다시 1996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읽어가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접하게 된다. 여기서 저자는 이와 같은 명칭의 변경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흔히 '청년이 바로서야 역사가 바로 선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이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세우고 청년학생의 지향을 분명히 한 저자의 역작에 갖추어지지 못한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사족을 달기로서니 그것이 늙은 사람의 분수 없는 과욕일 수는 있어도 흠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믿기에 나는 미흡한 몇 대목을 이렇게 지적해 보았다.

지나간 청년운동의 역사를 통해 앞으로 청년운동이 나가야할 방향은 단순하다. 청년학생운동이 계급운동적 표현이든, 민족해방운동이든 중요한 것은 젊은 순결을 지배하는 가치관과 철학이 무엇이냐가 문제이다. 바로선 사상철학의 기초 위에서 젊은 역동성이 표현되어야 힘  있는 청년운동이 되며, 그것이 나의 이익이 아니라 대중의 이익으로 돌아갈 때, 민족과 민중에 복무하는 운동이 될 것이다.

1945년 8.15 해방의 감동은 남이나 북이나 똑같았다. 이후의 역사에서 청년학생운동이 한쪽에서는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의 혁명적 요구에 맞춰 발전을 했고, 한쪽에서는 투옥과 학살로 점철되었다.

이러한 분단상황에서 오늘의 청년운동의 좌표를 6.15시대의 요구대로, 6.15의 역군으로 나서야 한다는 필자의 운동적 관점은 구구한 설명 없이 정론임을 존중한다.

나는 조금의 아쉬움을 이 글에서 토로하였지만 그 방대하고 광범한 자료들을 들춰내어 430쪽에 이르는 책으로 엮어낸 것도 그렇거니와 150여 년에 이르는 운동 연표에서 엄청난 인명과 지명, 사건과 단체명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한 데서 드러난 필자의 책임정신과 집념에 자못 머리가 숙여진다.

다만 이 기념비 같은 저서가 더욱 완성된 역사(力事)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머지 않은 장래 단행본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과물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