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효자동 이발사' 포스터.

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80년 격정의 시대를 시대 심장부인 청와대와 가장 근접거리에서 산 효자동 주민 성한모(송광호 役) 개인의 삶을 통해 우회적으로 풀어낸다.

 

80년 시대풍자극이라면 흔히들 투사의 뜨거운 투쟁과 독재정권의 폭거, 처참한 고문 등을 연상하지만 이 영화에 투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시대의 소용돌이를 피해 '낙안'(樂安)하게 살고픈 한 아버지와 아들이 존재할 뿐이다.

효자동 어느 허름한 이발소에서 '깍새'를 하는 '두부 한모 두모' 성한모는 이승만의 사사오입 부정선거에서 힌트를 얻어 "뱃속의 애가 다섯 달이 넘으면 낳아야 된다는 얘기야"라며 애를 밴 처녀 민자(문소리 役)에게 덜컥 아들을 낳게 한다. 사사오입으로 얻은 아들의 이름은 성낙안.

한모는 점쟁이가 골라준, 크게 성공하지만 명은 장담 못한다는 이름과 성공은 못하지만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이름 두 개 중 후자를 택한다. 결코 녹록치 않은 시대에 아들이 그저 편안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 이는 성한모 자신에 대한 바램이기도 하다. 

한모는 소심하고 어리숙하다. 청와대 권력 2인자 자리를 두고 다투는 중앙정보부장 박종만과 경호실장 장혁수 사이의 알력 속에 얼떨결에 간첩잡기에 열렬히 나선 시민이 되어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고 청와대 전속 이발사가 되지만 "'용안'에 흠집이라도 내면!"이란 장실장의 협박에 박 대통령 얼굴에 면도하다 작은 상처를 내고 어쩔 줄 몰라하는 한없이 여린 소시민이다.

성한모의 눈에 비친 권력은 '용'과 같은 존재이며 간첩단 사건에 어처구니없게 연루된 어린 아들 낙안이 전기고문으로 앉은뱅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도 가위를 들고 뛰쳐나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며 청와대를 향해 연신 "개새끼들아"만 외쳐대는 나약한 아버지일 뿐이다.

▶편안하게 살고 싶었던 성안모, 대통령 전속 이발사가 되면서 권력다툼속에 희생된다.
그러나 관객들은 80년대가 그랬던 것처럼 성한모를 '나약한 소시민'으로 재단하지 않는다. 성한모는 80년대를 숨죽이며 살아왔던 내 이웃일 뿐이며 맞아가면서, 혹은 피눈물을 흘리며 자식을 때리면서까지 가족을 지키려 했던 '고개 숙인' 내 아버지, 혹은 내 자신이기 때문이다.

성한모는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산신령 같은 노인의 말대로 박 대통령이 죽자 그의 영정그림의 눈을 긁어 국화꽃과 함께 달여 먹인다. 눈 긁은 가루를 담은 작은 통을 그대로 삼켜버린 이발사. 그 지리하고 엄혹한 세월은 아이를 낳는 듯 눈물까지 흘리게 만드는 진통 끝에 '소시민' 성한모의 뱃속에서 아들을 살릴 귀중한 약이 되어 배설된다.

'용'의 몰락과 함께 해산된 희망. 그 이후에도 또, 그 이후에도 군사정권과 문민정부를 가장한 똑같은 정권이 세워진다 하더라도 성한모는 두 다리 멀쩡하게 자전거를 타는 아들 낙안에게 희망을 걸 것이다.

필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사상으로 무장되지 않은' 관객들의 탄식 소리를 여러 번 들어야 했다. "어떻해∼어린앤데", "어우, 웬일이야..."
몰래 돌려보던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고문장면을 보고 "저런 죽일 놈들!"하며 부르르 투쟁의 신심(?)을 다지던 나와 내 동기들의 탄식소리보단 보다 인간적인 느낌이었다.

80년대를 살아온 관객들은 자식을 앉은뱅이로 만들고서도 역사 앞에 무기력한 개인일 뿐인 성한모와 동일인물이 되어 그 비통함과 참담함을 함께 느끼고, 80년대에 태어난 관객들은 애국청년도, 열렬한 투사도 아닌 한 이발사가 의도치 않게 겪는 비극에 분노와 함께 가슴 절절함을 느낀다.

권력욕으로 점철된 80년 역사 속에 책갈피처럼 껴있었던 대통령 전속 이발사 성한모는 두부판 속에 건드리면 물러터질 것처럼 불안 불안 정렬되어 있는 한 모, 두 모... 대한민국 '소시민' 모두의 이름이다.

누가 한 시대 눈물겹게 살아온 이들에게 '소시민' 혹은 '변절자'라 돌을 던지겠는가. 혹은 "내 너에게 면죄부를 주겠노라"고 감히 말 할 수 있겠는가. 허술한 구성, 생뚱맞은 환타지가 섞여있음에도 필자는 이 영화에 가위질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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