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중국으로만 가면 우리의 미래는 없습니다. 조금 손해를 볼 수도 있겠지만 민족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나머지 반 토막인 북을 생각해야 합니다”

북측과 협력 사업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인들에게 경협사업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한결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의 생각은 다르다.

박사장에게 남북 경협은 민족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 한시도 미룰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이런 확신이 없었다면 11년간 80여회 북측을 방문하며 남들이 다 불가능하다고 수군거리는 자동차 조립공장을 세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29일 강남구 신사동 소재 평화그룹 사옥 집무실에서 박사장을 만나 최근 평화자동차의 사업근황과 평화항공여행이 주관하는 평양관광 등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박상권 사장은 평화자동차뿐만 아니라 평양, 백두산 관광을 주관하는 평화항공여행사, 평화무역, 평화에너지, 평화자동차판매의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다)

▶29일 서울 신사동 평화그룹 사옥 집무실에서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을 만나서
사업근황과 평화항공여행이 주관하는 평양관광 등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 통일뉴스 이승현기자]
□ 먼저 지난해 10월 이후 중단된 평양, 백두산 여행의 재개 일정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 지난해 김용순 조선아태평화위원회 비서의 사망 이후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아 사업 재개에 관한 협의가 다소 늦어지고 있습니다. 당초 4월 20일 경부터 관광을 재개하고자 했지만 여러 가지 여건을 충분히 갖춰서 여름이 오기 전에 하고 싶고, 이게 여의치 않더라도 가을에라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관광일정을 조정한 건 지난해 중국의 사스파동도 한몫을 했고 겨울철 관광객들의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도 있었습니다. 북측에서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겨울철 난방에 대한 현실적 대책을 세우고 숙련된 안내원을 충분히 준비하는 등 착실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관광 재개에 대해 크게 염려할 일은 없습니다. 이미 1천여명의 예약 명단이 확보되어 있기도 합니다.


▶박사장은 ‘통일은 용서와 희생,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 - 이승현기자]
□최근 평화자동차의 영업실적을 포함, 사업현황에 대해 설명해 주시죠.

■ 지난 한해 동안 북측에 360여대를 판매했고 올해는 목표를 상향조정해서 670여대로 늘려 잡았습니다. 또 1600CC급 승용차인 ‘휘파람’과 소형지프인 ‘뻐꾸기’를 출고한데 이어 사파리 형태의 ‘뻐꾸기II’를 이미 생산하고 있으며, 오는 5월 18일부터 평양에서 개최되는 제 7차 상품전시회에 첫 출시할 예정입니다. 구 공산권 국가들에서 자동차를 사고 싶다는 연락을 자주 받고 있지만 아직은 내수에 전념할 계획이며 수출하는 건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복합적 사업모델로 성공적 안착

□그만한 판매를 내수로만 이뤘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채산성에 대한 우려는 없습니까?

■ 우리 공장은 아직 단순조립을 하기 때문에 1,000~2,000대 수준에서 손익분기를 맞출 수 있습니다. 그 전에 평화자동차는 이미 베트남에서 실전 경험을 충분히 쌓아 왔습니다. 우리가 사업을 하면서 수익을 기대한 것은 자동차 생산과 판매뿐만 아니라 주유소나 부품 교역 등 복합적인 모델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부품조달 등을 위해 단둥에 자회사인 평화무역의 지사를 설립했고, 평화에너지라는 자회사를 세워 이미 남포 평화자동차 공장에서 물가스를 이용한 용접 등을 하고 있습니다. 또 진작부터 평양 보통강호텔 사업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박사장은 기자가 사업의 채산성을 운운해 놓고는 왜 많이 남지도 않는 사업을 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지지 않은데 대해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뒤에 이어지는 박사장의 설명은 평화자동차와 박사장이 남북경협을 위해 자신들의 열정을 어떻게 불살라 왔는지를 잘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평양역 앞에 설치되어 있는 ‘휘파람’ 빌보드 광고. [사진제공 - 평화자동차]

□ 평양 최초의 자동차 전시장이나 각종 광고 계획 등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요.

■ 자동차 판매 활성화 목적으로 외국인이 가장 붐비는 평양 고려호텔 옆에 자동차전시장을 세우기로 하고 설계도와 구체적인 내용까지 준비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만을 위한 전시장 보다는 외국인등 다양한 기업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 무역센터 건물같은 것을 구상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해서 계획을 조정하는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세울 자동차 전시장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시설이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이미 북측으로부터 승인이 난 일입니다. 또 TV, 잡지 광고는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길거리 광고탑은 평양역 앞 등 6곳에 설치되어 있죠.


□평화자동차의 북측 합영 주체인 '민흥총회사'는 남쪽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회사인데요.

■ 원래는 북측 주체가 '조선연봉총회사'였습니다. 그런데 연봉총회사가 종합회사이거든요. 국가에서 새로이 자동차만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별도의 회사를 설립한 게 민흥총회사입니다.


□남포 현지 공장 운영과 관련해 애로는 없으신지요?

■ 현재 합영회사의 지분비율이 70:30인데요, 여기 인사권이 우리한테 있습니다. 현지에 남측 사장이 상주하고 있고 저는 이사장직을 맡고 있죠. 북측에서도 경영과 관련해서는 대부분 우리를 믿고 맡깁니다. 식당과 숙소도 건설하여 함께 사용하고 있어 아무 문제없이 활기있게 생산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인건비는 100~120달러 정도입니다. 지금 개성공단에서 적용되는 50~60달러에 비교하면 높다고 할 수 있지만, 여기는 대학 졸업한 숙련 경험자들이에요. 남측 기준으로는 10~20배 정도는 더 줘야 할 사람들이죠. 아직 야근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저희를 잘 따라주고 있습니다.

▶남북경협을 위해 내달려온 평화자동차의 小事. [사진 - 통일뉴스 이승현기자]

북측 신뢰와 기대 대단해

(여기서 박사장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에 대한 예찬론을 펼쳤다.)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사업을 해 본 사람은 우리 민족이 굉장히 두뇌가 우수하다는 걸 잘 압니다. 무언가 하나를 가르쳐도 다른 민족에 비해 잘 알아 듣습니다. 물론 실수도 하겠지만 지적하면 바로 고칩니다. 체제가 달라서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기본적인 의식구조가 같습니다. 또 동기부여가 되면 굉장히 열심히 일합니다. 게으름이 천성이 되어서 고치기 어려운 민족들과는 다릅니다.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공장 운영에서 특별히 주목할 만한 변화는 없습니까?

■ 우리는 처음 사업 시작할 때부터 우리식으로 해왔습니다. 북측 내부에서 전반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평화자동차 운영과 관련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평화자동차에 대해 북측이 갖고 있는 신뢰와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보통강호텔을 포함해 북측 현지에 남측 인원과 일본인 기술자 등 30명이 상주하고 있는 규모도 그렇거니와 별도의 전문회사를 설립하여 인사권을 넘기고 실제 경영과정에도 거의 간섭하지 않는 운영방식도 일반적인 경우라고는 보기 어려운 것 같다.

이후 박사장은 “내가 기자라면 평화자동차의 채산성에 대해서만 질문할 게 아니라 자동차산업을 통한 경협 일선에 나선 까닭이나 계기를 물었을 것”이라며, 오랜 경협의 현장에서 쌓아 온 식견을 자세히 설명했다.


경제인이 앞장서 교류협력 물꼬 터야

박사장은 “북측을 무시하고 우리만 잘 살 수는 없다. 최근 북측이 강조하는 ‘민족공조’라는 개념은 ‘전쟁은 없어야 하며, 기업가들이 먼저 교류하면서 돈벌어 같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확고하게 정리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경제는 국제적인 환경에 영향을 받는 등 외부 영향을 받는 것이어서 우리만의 노력으로는 제약이 있지만, 남북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적어도 남측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국제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박사장의 생각이다.

▶고려항공 기내잡지에 실린 평화자동차 ‘뻐꾸기’ 광고. [사진 - 통일뉴스 이승현기자]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박사장은 “계속 중국으로만 가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조금 손해를 볼 수도 있겠지만 민족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나머지 반 토막인 북을 이해하고 교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무역해야 할 상대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가 ‘먹히지는 말아야 할 상대’이다. 그런데 “국내 4,000~5,000개 기업들이 이미 중국에 진출했으며 현재 국내 제조업체의 50%가 사업지를 중국 등 외국으로 옮길 생각을 갖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대부분 인건비 부담을 덜고 원자재 조달이 용이할 것이라는 기대와 방대한 시장 규모 등에 끌리는 것이지만 냉혹한 현실속에서 대부분은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대안은 역시 “중국으로 가기보다 북측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북측이 남측에 대해 낫다고 인정하는 거의 유일한 분야가 경제이기 때문에 다소 큰 소리를 내며 지적을 해도 받아들인다”는 것이 박사장의 조언이다.

한발 더 나아가 박사장은 기자에게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북의 곤경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기자가 제출한 답은 ‘미국과의 관계개선과 경제봉쇄 해제’.

“맞습니다. 북을 살리려면 미국과 관계개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경제를 획기적으로 부흥시키려면 대규모 차관이 들어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관계개선이 시급합니다. 이게 경제 봉쇄를 해제해야 할 시급한 필요입니다. 당장 북측은 일본으로부터 전쟁배상금을 받을 수 있지만 남측이 과거 60년대 선례를 남긴 데 준해 7억달러 수준일 것입니다. 이걸로는 부족합니다."

"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선행되면, 일본은 경제발전기금 명목으로 50~60억달러의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일본 기업을 통해 공항건립 등의 방식으로 하겠다며 경제복구과정의 과실을 따먹으려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관계개선 이전에 북측에 진출한 회사들은 관계개선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할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 진정한 기업인이라면 더 늦기 전에 북에 진출하여 개척해야 합니다”

▶남포 평화자동차 공장 전경. [사진제공 - 평화자동차]
개성공단 넘어 남포, 평양공단으로

내친김에 박사장은 11년간 80여회 북측을 방문한 거물답게 통일에 관한 철학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통일은 만나는 것입니다. 만나고 싶을 때 못 만나니까 분단된 나라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날 수 없다면 결혼을 못하게 되고 관철을 못시킵니다. 만남이 많아짐으로써 통일이 되는 것이고 여기에 경제인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하나되는 통일을 위해서는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먼저 만남을 청한 후 밥 한끼 먼저 사고, 밥 먹으면서 내가 잘못했다고 먼저 화해를 청하는 진심을 갖고 하자는 겁니다”


□끝으로 경협을 활성화하기 위해 최근 개성공단사업이 속도감있게 진척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의견은 어떠십니까?

■ 물론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다만 이런 식의 단계적인 발전과 확대를 넘어 좀더 과감하게 경협이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개성공단만으로 북과 남이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단적으로 개성으로 통하는 길이 열렸다는 것은 남포, 평양, 신의주를 넘어 대륙으로 향하는 길까지 연결되는 대로가 뚫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준비는 다 됐다는 말이죠.

그래서 개성공단 개념에 함몰되지 말고 남포, 평양 공단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도 특정구역에 국한하지 말고 빈 건물, 유휴시설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우리 회사는 몇 년에 걸친 대규모 투자계획을 갖고 북측에 제안하려고 합니다만, 정부차원에서도 ‘개성만으로는 부족하니 남포, 평양도 열라’는 교섭을 해야 합니다. 서로 조건을 내세우면 어렵겠지만 개성공단 운영에 관한 합의에 준해 운영한다면 특별히 문제될 건 없다고 봅니다.

평화자동차는...

▶고공에서 내려다 본 남포 평화자동차 공장.[사진제공 - 평화자동차]
남북경협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힐 뿐만 아니라 자동차 합영생산으로 남북관계의 질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7년 11월 5천500만 달러를 투자해 첫 진출한 이후, 2001년 1단계로 남포에 자동차 수리개조 및 조립공장 준공검사를 마치고 2002년 2월 첫 번째 자동차를 출고했다.

특히 이태리 피아트 모델을 개조해 최초의 독자모델로 개발한 1600cc의 '휘파람'은 북한 도로 사정에 적합하고 연비가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어 북측 내수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밖에 소형 지프인 뻐꾸기와 사파리 형태의 뻐꾸기II 등 연이어 신기종을 출고하고 있다.

평양에서 42km 떨어진 남포에 세운 평화자동차 조립생산 공장에는 150여명의 북측 기술자들이 주로 패널 조립, 도색, 엔진, 트랜스미션 분야의 선진 조립기술을 집중적으로 터득하며 북측 자동차산업을 도약시키겠다는 일념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2만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점에서 유관 산업연관 효과가 적지 않고 우수한 기술인력과 첨단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측 지도부에서도 남다른 애착을 갖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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