룡천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고 앞에 온 겨레가 한마음으로 고통에 동참하며 도움의 손길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그동안 냉전 체제 속에서도 꿋꿋하게 통일운동을 해온 민족운동 단체들은 물론 보수 단체들까지도 가세하는 모습은 지난 총선에서 민노당의 약진이 준 희망만큼이나 새로운 또 하나의 불꽃으로 봅니다.
한민족의 비극인 룡천 참사 앞에서 이념과 정파를 떠나(수구정당 이미지를 벗지 못한 한나라당을 비롯해 반민족 반통일의 조중동까지 가세하고 있지만, “용천 돕기는 북에 뇌물 바치는 정신병적 상황이라 외치는 정신병자 조갑제나 ‘북한이 의료진을 거부하는 게 무슨 다른 의도 있는가’ 하고 의심하는 김용갑 같은 부류들을 제외한) 우리민족이 한마음으로 힘을 합치고 있는 모습은 (비록 어느 정도 거품이 있다 하더라도) 이미 반세기를 넘어선 분단의 굴레가 서서히 깨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민족의 생존에 중대한 위협을 느껴오면서도 슬기롭게 헤쳐온 우리 민족은 남북 해외 한겨레가 하나 되어 이 고통과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가리라 믿습니다.
5·1절 노동자 대회에 전교조 대표 6인이 4월 30일 방북합니다(원래 7명이었는데 인원 재조정 가운데 원명만 위원장님이 빠지신 부분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노동운동이나 통일운동에 긴 삶을 바쳐오신 분들을 두고 민주노총 산하 전교조를 대표하여 ‘6·15공동선언 관철을 위한 남북노동자 5·1절 대회’에 참가하는 게 너무 영광스럽고, 룡천의 참사를 접하면서 화상에 신음하고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내 아들 또래의 이북 어린이들을 보면서 영광의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미국이 한국의 전시군사작전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주한미군을 통해서 남한 민중을 억압하는 현실이 남에서는 효순·미선 두 중학생의 죽음으로 알려지고, 미국의 대북정대정책과 경제봉쇄로 인해 수십 년 고통 속에서 살아온 이북민족의 현실이 북에서는 용천에서의 참사를 통해서 온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북의 경제발전과 인권개선의 최대의 적으로 작용해온 미국이 고작 10만불의 돈으로 이번 참사에 도움을 표한 것은 그나마 최소한의 양심의 발로이거나 그도 아니면 그 마저도 정치쇼겠지요.
이번 룡천 참사를 접하면서 드러난 이북의 현실이 낙후된 데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라크에서처럼 이북이 미국의 봉쇄정책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겪으며 살아왔는가하는 점을 새롭게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한민족이 하나 되어 이 고통과 위기를 이겨내고 나면 이제 더 성숙한 남북관계를 바탕으로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행보가 진행되고, 전쟁과 자본의 힘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려는 제국주의 국가 미국의 첨병 주한미군과 대량살상무기들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아름다운 평화의 물결이 냉전의 이 땅을 덮을 것입니다.
이번 방북과정에서 평양에 가면 주고 올 수 있는 것은 고작 헌혈을 통한 나의 피 몇백 미리리터와 물건을 사면서 내는 몇 푼의 돈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나의 마흔 생애와 나의 경제와 나의 마음까지를 두고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신 지금 죽어가는 룡천의 저 어린 영혼들의 가녀린 숨결과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밟고 사셨던 하나된 시절의 조국, 그 땅의 기억들을 나의 빈 가슴과 식어가는 핏줄기에 담아올 것입니다.
설레는 이 가슴, 이 영광과 고통의 날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도록 자주와 평화로 단단히 묶인 통일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