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한국민권연구소 연구위원)


노무현 정부가 3월 4일 참여정부의 안보정책 구상을 「평화번영과 국가안보」라는 제목의 책자를 통해 발표하였다. 참여정부의 안보정책 구상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밝히고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본 책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명의로 발간되었다.

특히 이 책자의 발간 기자회견에서 서주석 NSC 전략기획실장이 주적 개념과 관련하여 "전반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주적 개념을 폐기하기 위한 공식적인 움직임이 아닌가 하는 분석을 낳기도 하였다.

그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비판적 평가 그리고 그 평가에 따른 노무현 정부의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Ⅰ. 「평화번영과 국가안보」 주요 내용

▶정부는 지난 3월 4일 참여정부의 안보정책
구상을 담은 '평화번영과 국가안보' 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자는 전체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새로운 안보환경, 참여정부의 안보정책 구상,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미 동맹과 자주국방의 병행발전, 남북한 공동번영과 동북아 협력 주도, 전방위 국제협력 추구, 대내적 안보기반 확충,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향하여'가 그것이다.

새로운 안보환경에서는 참여정부의 정세 인식이 반영되어 있으며, 참여정부의 안보정책 구상에서는 참여정부가 설정한 국가안보의 목표, 그 목표 실현을 위한 전략기조 그리고 그것을 위한 추진체계가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나머지 장에서는 목표와 전략기조, 추진체계에 따른 세부적 과제를 항목별로 정리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마지막 장은 결론에 해당한다.
다소 길어지더라도 본 책자의 내용을 자세하게 정리, 요약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1. 참여정부의 정세인식과 과제인식

세계는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경제 사회적 발전과 자유와 인권 등의 가치가 확대되고 있으나 냉전의 종식에 따른 세계 질서의 근본적 재편에도 불구하고 불안정성은 오히려 증대하였다. 과거의 국가간 전통적 위협 뿐 아니라 국제테러, 대량살상무기확산 등 새로운 안보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9·11 이후 반테러를 위한 국제적 노력이 강화되고 있다.
   경제·에너지·환경·보건 등 비군사적 영역의 안보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심화로 인해 과학기술·자본·정보의 보유 여부가 국가발전과 번영을 좌우한다.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관련해서 아시아, 태평양 국가간에 경제협력뿐 아니라 안보협력도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나 여전히 동북아시아에는 불안정한 요인이 있다.
   한반도 주변 4개국의 국력변화와 상호관계의 유동성, 북한 핵문제 등이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북한 핵문제의 해결 방향에 따라 안정성과 불안정성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남북 간의 군사적 대치가 지속되는 가운데서 다양한 대화와 협력이 진행되고 있으며, 북한은 체제안정에 주력하면서도 부분적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정세인식에 기반하여 참여정부는 아래와 같은 사항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북한핵문제의 군사적 위협
북한의 방대한 재래식 군사력과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을 통한 전력 증강은 여전히 우리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며 특히 북한의 핵개발은 우리의 최대 안보위협을 뿐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고 있다.
   주한미군 재배치와 한·미동맹의 발전
주한미군 재조정이라는 새로운 안보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한·미동맹을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한편,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 아래 한국 방위에서 우리 군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자주국방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동북아지역 전략적 상호관계의 유동성
미·중, 중·일 등 지역내 국가간 긴장과 군비경쟁은 안보비용을 증대시킬 뿐 아니라 동북아 협력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지역내 다자안보협력의 강화를 통해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실현하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을 확대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이외 세계화·정보화의 심화 및 지역협력 강화, 다양한 안보위협의 대두, 풍부한 잠재역량 보유 등이 항목이 한국이 직면한 도전으로 설정하였다.

2. 참여정부의 안보정책 구상

   국가이익 : 대한민국 헌법에 근거해 정의
- 국가안전보장
-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 경제발전과 복리증진
-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기여

   국가안보 목표
-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확고한 안보태세를 기반으로 우선 대화를 통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한다.
- 남북한과 동북아의 공동번영
현재의 남북 대치상태를 해소하고 상호 협력을 통해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동북아의 공동번영을 추진한다.
- 국민생활의 안전 확보
국제테러와 대량살상무기 확산, 초국가적 범죄 등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응하고 경제와 환경위기, 사이버테러 등 비군사적 안보위협으로부터 국민생활의 안정을 보장한다.

   국가안보 전략기조
국가안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관되게 견지해야 할 것
- 평화번영정책 추진
남북기본합의서와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하여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의 남북관계를 정착시키는 것을 우선적 목표로 한다.
- 균형적 실용외교 추구
대외관계에서 대립되거나 상이한 목표와 요구들 간의 균형을 취하고, 설정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외교적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
- 협력적 자주국방 추진
한·미동맹을 발전시키고 대외 안보협력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면서 북한의 전쟁 도발을 억제하고, 도발시 이를 격퇴하는 데에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체제를 구비한다.
- 포괄안보 지향
포괄안보 개념은 군사부문은 물론 비군사부문까지 포함하는 확장된 개념이다.

   안보정책 추진체계
- 전략과제
당면한 핵심 안보현안이자 국가안보 목표 달성을 관건이 되는 과제
북한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미동맹과 자주국방의 병행 발전, 남북한 공동번영과 동북아 협력 주도
- 기반과제
특정 시기에 국한되지 않고 일관되게 추진되어야 할 상시적 과제
전방위 국제협력 추구, 대내적 안보기반 확충

이상의 내용을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참여정부의 안보정책구상 도표 [그림 - 통일뉴스]
3. 안보정책의 세부내용

이하 본 책자의 내용들은 위의 안보정책구상에 대한 세부적 설명이므로 자세한 언급은 생략한다. 다만 몇가지 현 정부의 정책 구상에 대한 일면을 알 수 있는 내용들만 간단히 소개한다.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 북한의 핵개발은 핵확산방지조약(NPT) 등 국제조약이나 미국과의 합의를 위반한 것이며, 1991년 남북한 사이에 채택된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에도 배치된다.
  남북한 공동번영과 동북아 협력 주도
- 정부는 당면한 북한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를 병행하여 발전시켜 나간다. 북한 핵문제 해결 과정에 따라 경제협력 확대 등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며, 동시에 남북대화를 통해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여건을 조성한다.
  전방위 국제협력 추구
- 한·미 관계의 발전 속에서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북정책 공조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다.


Ⅱ. 참여정부 안보정책 구상에 대한 비판적 평가

1. 긍적적 측면

비록 형식상의 문제이지만 '북한주적론' 폐기를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존의 정부에서는 안보정책을 국방부의 국방정책에서 제시하였다. 그러던 것이 김대중 정부 들어 '북한 주적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국방백서의 발간 자체를 중단하였다. 즉 '북한 주적론'을 국방백서에 명시하는 것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명시하지 않을 것인가 즉 '북한 주적론'을 폐기할 것인가 하는 논란이 진행중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김대중 정부에서도 국방백서를 통해 '북한주적론'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안보 정책을 추진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노무현 정부 들어서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 명의로 이번 안보정책을 발표된 것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정부 조직체계상 국방부의 상위에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이번 안보정책은 국방부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발표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발표된 안보정책 구상에서 '북한 주적'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은 '북한 주적론'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기 위한 노무현 정부의 의지가 반영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의지가 국방부 관계자들에게 어떻게 관철될 것인가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국방부에서 '북한 주적론'을 공식적으로 폐기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2. 부정적 측면

1) 탈냉전 이후 국제정세에 대한 본질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탈냉전은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의 중요한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모든 국제정치행위가 철저히 자국의 이익, 자민족의 이익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구도가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결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냉전시대와는 사뭇 다르다. 이것은 곧 체제 혹은 진영중심의 국제정치가 냉전 시기의 특징이었다면, 탈냉전의 특징은 민족자주를 중심으로 하여 국제정치가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련이 붕괴되고 독립국가연합이 생겨나고, 아시아, 아프리카 등 수많은 지역과 국가에서 펼쳐지고 있는 국제분쟁 모두 이같은 탈냉전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우려하는 테러 역시 이같은 특징의 반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자기 민족의 자주성을 억압하는 강대국들에 대한 폭력적 저항으로써 테러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미국의 일방주의적 세계패권정책이 한층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탈냉전 이후 미국이 치렀던 전쟁만 하더라도 91년 이라크전쟁, 95년 유고전쟁, 98년 유고전쟁,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3년 이라크 전쟁 등이 있으며, 93년, 94년, 98년, 99년, 2003년 한반도에서 전쟁을 계획해왔다. 미국의 이러한 정책은 21세기에도 전쟁을 통해 세계 패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의 호전적 정책의지의 발로이며,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국제평화가 위협받는 가장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탈냉전이 갖는 두 가지 본질적 특징이다. 이러한 본질적 특징을 기초로 하지 않는 국제정세인식은 그야말로 절름발이 인식이라 할 수 있다. 국제정세의 불안정성은 자국의 혹은 자기 민족의 자주성을 수호하고자 하는 전세계적 흐름을 일방주의적 패권을 추구하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억압함으로써 나타나는 문제라는 것을 명확히 했을 때 불안정성을 극복하는 구체적 방도가 나오게 된다.

2) 북한 주적 개념, 여전히 살아있다

그렇다. 본 책자에서는 주적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대다수의 언론들이 분석했듯이 주적개념을 공식적으로 폐기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방백서에 표기된 '주적' 표현은 계속 검토중이고 결정된 바 없다", "새 국방백서가 발간되기까지는 변한 것이 없다고 봐야 한다"는 국방부 관계자의 발언은 언론의 이같은 분석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제 발표된 안보정책의 내용을 갖고 이 부분을 접근해 보도록 하자.

우선 북한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자.
"북한은 … 방대한 재래식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핵·미사일·화생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면서 전력을 증강하고 있어 여전히 우리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북한의 핵개발은 우리의 최대 안보위협일 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고 있다."(p. 15)

기존의 국방백서에는 어떻게 명시하고 있는가 비교해 보자.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한다"라고 함은 북한이 기존의 대남 적화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공격형 부대의 전진배치 및 긴장조성, 군사동원태세 강화, 통일전선 형성을 위한 대남 공작활동 등을 멈추지 않고 있는 사실을 감안하여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하면서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외부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며, 현대적 안보개념이 군사 위주에서 정치, 경제, 외교, 문화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변화하고 안보대상의 범주가 확대됨에 따라 예상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안보위협에도 동시에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1996년 국방백서 : 강조는 필자 주)

즉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한다는 표현만 없을 뿐이지 북한을 우리의 안보에 가장 커다란 위협으로 보는 인식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이같은 이같은 인식이 한미 동맹과 결부되어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 아래 주한미군의 재조정을 한국 방위에서 우리 군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자주국방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북한이 '최대의 안보 위협'이라고 한다면 '우리 군'이 담당할 '주도적 역할'은 곧 북한의 침공에 대비하는 것이 최대의 역할이라는 것이 아닌가. 이는 6.15 공동선언 이후 변화발전하고 있는 남북 관계를 원점으로도 되돌릴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인식이다. 형식상의 '북한 주적론'은 사라졌는지는 몰라도 내용상에서의 '북한 주적론'은 건재하다.

3) 종속적 대미관이 엿보인다

(1) 포괄적 안보개념, 미국의 세계전략을 따라하려는가

노무현 정부의 안보정책에서 특징적인 것 중에 하나가 '포괄적 안보개념'을 도입했다는 사실이다. 즉 '경제.에너지.환경.보건 등 비군사적 영역의 안보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표현된 포괄적 안보 개념은 냉전시대 안보를 의미했던 군사안보 개념을 초월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비군사위협까지 포괄된다. 미국이 탈냉전 이후 추진하고 있는 안보정책이 포괄안보개념에 입각한 것이다.

미국은 이같은 포괄안보 개념에 입각하여 전 세계적인 지배와 침략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즉 군사적 위협 뿐만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비군사적 부분에 대해서도 미국의 군사력을 동원하여야 한다는 것이 포괄적 안보개념의 핵심이다. 그리고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이같은 포괄적 안보개념에 입각하여 핵선제공격 독트린까지 내놓고 있으며, 그것이 한반도의 안전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같이 미국의 안보개념이 한반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 조건에서 미국이 이야기하는 포괄적 안보개념을 도입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의 안보정책을 그대로 따르겠다는 것이 아닌가.

미국의 안보개념인 포괄적 안보 개념을 도입한 것이 갖는 더욱 커다란 위험성은 앞으로 미국이 한반도에서 추진하게될 군사정책을 노무현 정부가 그대로 따라할 수 있는 전제조건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재배치를 요구하고 이라크 파병과 같이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에 한국군의 파병을 요구하는 미국의 압력을 거스를 수 없게 하는 기본 장치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즉 불평등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한미동맹을 파기하는 수순이 아니라 21세기형 한미동맹을 위한 미국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여 미국의 안보정책에 그대로 종속되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2)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 누구를 위한 미래지향적 발전인가

"긴밀한 한미 협력으로 안보태세가 공고히 유지되는 가운데 중장기적으로 한국군의 작전통제를 포함한 연합지휘체제의 개선 등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이 모색될 것이다."(p. 41)
노무현 정부 들어 한미 동맹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핵문제, 재배치 문제, 파병 문제로 들 수 있다.
이같은 구체적 내용에서 노무현 정부가 이야기하는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이 어떻게 표현되었는가. 과연 누구를 위한 미래지향적 발전이었는가.

첫째, 핵문제 해결에서 살펴보자.
노무현 정부는 핵문제 해결에서 한미공조를 무엇보다 강조하였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침공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미국의 부시 행정부의 해결책과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안된다는 노무현 정부의 해결책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2월에 있었던 2차 6자회담에서 확인하였듯이 아무리 노무현 정부가 해결책을 제시하여도 미국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둘째, 주한미군 재배치를 보자.
현재 주한미군 재배치는 거의 합의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는 미국과 엄청난 진통을 겪어야했다. 즉 용산기지의 잔류 문제와 재배치의 시기문제와 관련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일정정도의 병력이 용산기지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미국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핵문제 해결 전에 재배치는 안 된다는 것 또한 미국은 일축하였다. 이전 비용도 모두 한국정부에서 부담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주한미군 재배치가  '미국의 세계 전략 변화'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이 요구하는 주한미군 재배치를 수용하는 것은 결국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셋째, 이라크 파병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 핵문제를 풀기 위해 즉 미국의 부시 행정부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이라크 파병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이미 1차 파병이 이루어졌고 얼마 안 가서 2차 파병도 이루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핵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미국은 노무현 정부의 해결책을 전혀 수용하지 않았다. 어디 그 뿐인가. 키르쿠크에서 독자적인 작전권을 행사한다고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작전권을 같이 행사하자고 주장한다.

이런 3가지 중요한 현안에서 살펴보았듯이 한미 동맹은 철저히 미국의 이해와 요구에 따라 유지되었다. 이것이 엄연한 한미 관계의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운운하는 노무현 정부의 안보 정책은 설득력도 없으며 논리력도 없다.

노무현 정부가 이야기하는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은 결국 미국의 이익을 실현하는 '발전'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가 진정 한국의 이익을 실현하는 '발전' 방향으로 '한미 동맹'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우선 현재 주한미군이 행사하고 있는 전시작전권을 회수하여야 하며, 미국 무기 일변도의 수입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 또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폐지해야 하며 한미행정협정 또한 개정해야 한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는 조건에서의 '한미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은 한미 관계의 평등을 요구하는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에 불과하다.

4) 한반도 평화 정착의 남북당사자 원칙, 실효성이 없다

"정부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남북 당사자원칙을 확고히 견지해 나가고자 한다. 평화협정 체결은 남북이 중심이 되고 국제사회가 이를 지지.보장하고 적극 동참하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p. 37)
한반도 평화 정착이 남과 북에게 있어서 가장 사활적인 문제라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남과 북에게 사활적인 문제라는 점과 그 당사자가 남과 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일치하지 않는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김대중 정부는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선언'을 채택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2001년 부시 행정부가 당선된 이후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반대로 결국 남북간에 한반도 평화선언을 하겠다는 계획은 무산되었다. 6자회담에서 미국은 한국의 해결책을 전혀 수용하지 않는 일방주의적인 모습을 견지하였다. 북미간의 일괄타결을 제시하였던 한국의 해결방안을 미국은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1994년 핵위기 당시 미국은 김영삼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무력공격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서 미국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물론 그 역할은 전쟁 위협 고조의 역할이다. 이같은 미국의 역할이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정착의 남북 당사자 원칙을 주장하면서 남북간의 평화협정을 고집하는 것은 미국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결과이거나 미국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노무현 정부가 한반도 평화 정착에서 취해야 할 최소한의 원칙은 남북미 3자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5) 핵문제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노무현 정부의 입장은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미국의 입장에 비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그러한 입장이 6자회담에서도 적용되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핵문제에 대한 근본적이며 총체적인 인식은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장 크게 지적해야 할 것은 핵문제와 남북 관계 특히 경협을 연계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당면한 북한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를 병행하여 발전시켜 나간다. 북한 핵문제 해결과정에 따라 경제협력 확대 등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며, …"(p. 50)

핵문제와 남북관계를 연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남북 관계의 발전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요구이다. 또한 핵문제의 해결과정에 따라 경협을 확대시킨다는 것은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경협을 더 이상 발전시킬  수 없다는 입장의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했던 발언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이러한 입장은 미국이 바라는 것이라는 점에서 핵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될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는 위험한 논리이다.


Ⅲ. 결론 -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과제

한반도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한국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이 미국의 그것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는 구조적 한계로 인하여 전세계적인 탈냉전 분위기에서도 냉전이 유지되었던 유일한 지역이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의 발표 이후에야 한반도는 냉전이라는 구시대의 구조에서 탈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으며, 공동선언 발표 이후 4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냉전 체제가 해체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객관적 조건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을 '안보의 최대 위협'으로 평가하며, '한미동맹 강화'를 부르짖는 것은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이거나 21세기에도 한미동맹의 틀에서 안주하려는 종속적 안보관의 표현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국민들의 개혁열망에 의해 등장한 노무현 정부가 외교안보 분야에서 무지의 소치를 드러내는 것도, 종속적 안보관을 견지하고 있는 것도 국민들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한계로 인하여 21세기에도 한미동맹이라는 허울 아래 미국에게 대한 종속이 유지되는 것도 국민들은 바라지 않는다.

국민들의 개혁열망은 단순히 정치개혁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냉전이라는 구조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고 있으며, 분단이라는 구시대의 질서에서 벗어나 통일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원하고 있으며, 예속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민족자주를 염원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게 할말은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던 후보시절의 발언을 잊지 않고 있다. 현재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낮은 것도 이러한 개혁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평가이다.

비록 탄핵이라고 하는 비정상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팀에서 갖고 있는 안보관은 과거 냉전시대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 이런 구시대의 안보관으로는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도래한 자주와 통일의 새로운 국면에서 남북관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국제관계에서도 그 어떤 주도권을 쥘 수 없다. 노무현 정부가 그토록 주장해왔던 안보문제에서의 남북 당사자 원칙을 견지하기 위해서라도 노무현 정부는 지금까지의 안보관과 안보정책에서 벗어나 즉 대미 종속적인 안보관에서 벗어나 민족자주에 입각한 안보관을 갖고 그에 맞는 안보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것의 구체적 표현은 민족 공조이다. 그 어떤 난관이 있어도 남과 북이 단결하고 공조하여 민족의 문제를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풀고자 하는 의지와 그에 따른 실천이 있었을 때 노무현 정부의 안보정책, 통일정책은 성공하게 될 것이다. 아직 시간은 충분히 있다. 또한 지금 탄핵국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국민들은 지금 한-민-자 세력이 벌여놓은 정치쿠데타에 맞서 노무현 대통령과 그 정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려고 한다.

지난 1년간의 외교 정책을 겸허하게 평가하고 한미동맹에서의 탈피, 민족공조의 실현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에게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만약 노무현 정부가 이 마지막 기회마저 놓치고 만다면 이제 국민들의 분노는 '한-민-자 공조'에서 노무현 정부에게로 전환할 것이다. 국민들이 부여해주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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