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서울을 방문하고 있는 북한의 국립교향악단 최상근 고문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최익규 선전선동부(부장 정하철) 부부장과 동명인이다.

최 고문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한을 방문한 북측 인사 가운데서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8.29∼31) 북측 단장이었던 전금진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과 함께 제일 고위급이다.

당 선전선동부는 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양과 체제선전을 총괄하고 있는 부서로 조직지도부와 함께 노동당의 양대 핵심부서로 알려져 있다.

최 고문의 서울행은 이번이 두번째로, 지난 90년 12월 `90송년 통일전통음악회` 참석차 평양민족음악단의 고문 겸 문예총 부위원장 자격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그는 이번 서울방문에도 문예총 부위원장 직함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본명은 최익규이나 대외적으로는 주로 가명을 써왔기 때문에 최상근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최 고문은 유명한 영화연출가(감독) 출신으로, 60년대부터 문예부문을 지도하던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각별한 신임을 받아온 오랜 측근 중의 한사람이다.

특히 그는 김 총비서의 취향과 스타일에 맞는 영화, 가극, 연극 등을 만드는데서 `귀신`같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34년 함경북도 화대군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김형직사범대학(평양사범대학 후신) 러시아어문학과를 졸업한 뒤 56년께부터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조감독, 감독으로 활동했다.

그는 영화감독에 관해 아무런 정규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터득한 영화 지식과 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으로 감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63년께 영화「백일홍」을 제작하면서 유능한 감독으로 자리를 굳혔다.

60년대 중반 영화부문 지도에 나선 김 총비서와 인연을 맺으면서 김 총비서의 직접적인 지도하에 예술영화 「꽃파는 처녀」(1972년), 「유격대 오형제」(1968년) 등 북한이 명작으로 내세우는 우수한 영화를 감독했다.

그는 이미 지난 60년대 말부터 노동당 선전선동부 영화과장으로, 72년께 부부장으로 전격 승진했으며 이 직책을 갖고 「꽃파는 처녀」등 여러 편의 영화를 직접 제작했고 김일성 주석의 혁명활동을 형상한 영화 「조선의 별」1∼10부 (1980∼87년) 등 각종 영화제작을 지도했다.

지난 72년에는 최고인민회의 제5기 대의원으로 선출됐다.

그는 또 이 기간 만수대예술단 연출가, 조선영화 대표단원 등의 자격을 갖고 일본을 방문했으며 지난 85년에도 조총련 합작영화인「은비녀」 촬영차 일본을 다녀갔다.

최 고문은 지난 86년 북한에 피랍됐던 신상옥.최은희씨의 탈북에 대한 책임을 지고 부부장에서 해임됐으나 2년여뒤 다시 복귀돼 연극, 가극 등 무대예술 부문을 전담했다.

그는 이때에도 민족가극의 본보기로 일컫는 「춘향전」(1988년)을 직접 무대에서 연출하다시피 지도해 성공적으로 완성시켰다. 지난 17일 평양에 갔던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도 이 민족가극을 관람했다.

이에 앞서 지난 91년 9월에는 보천보전자악단 단장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또 90년대 초부터 김 총비서가 자신의 마지막 지도작품이라며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영화 「민족과 운명」(1∼50부작)의 제작자로 전면에 나서 시나리오와 감독을 맡았다. 이 영화의 마지막 화면에 나오는 제작진에도 최상근이란 이름으로 그가 소개될 정도로 그는 이 영화제작을 총괄했다.

그러나 최 고문은 지난 93년 이 영화 제작과정에 권력남용과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 부부장에서 다시 해임됐다.

하지만 최 부부장에 대한 김 총비서의 신임은 각별해 그는 처벌받는 와중에서도 95년께 김 총비서의 특별지시로 독일에서 수개월간 병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1년여전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롤백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으로는 부인과 1남3녀가 있다. 장녀 일심(36)은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창작과를 졸업한 재원으로 현재 영화문학창작사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영화 「내가 본 나라」의 시나리오를 썼다. (연합 200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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