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학교에서 실시하는 통일교육에 대하여, 이러저러한 모색과 고민을 하다보면 ‘통일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방법론 문제를 넘어 ‘통일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보다 기본적이고 목적론, 가치론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즉 통일교육이 지향하는 교육목적론과 가치에 대하여 성찰하게 되는데 이러한 주제를 통일교육의 ‘본질론’이라고 이름 붙여서 몇 자 의견을 써보고자 한다.
고려국, 조선국을 거치면서 천년 동안 하나이던 우리 나라(단일민족국가)는 일제의 식민지 폭압통치와 착취를 거치면서 전대미문의 파괴를 경험하였고 곧바로 분단과 분열로 이어진 반역의 역사를 통하여 민족사의 온당한 자기발전의 경로를 봉쇄당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에 근거하여 원래 하나이던 우리 나라가 그동안 불법적으로 강요된 국토양단과 민족분열의 일시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태 즉 분단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롭게 하나의 나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우리는 ‘통일’이라고 부른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우리의 통일은 굳이 영문으로 표기해본다면 ‘Reunification’이다. 우리는 원래부터 하나였고, 분단은 일시적인 것이며, 통일은 하나의 나라, 원 코리아(One Corea)를 지향하는 우리 민족의 노력이 아닌가!
통일교육은 ‘통일의 본질’을 모색하는 것
그러면 ‘통일교육’이란 무엇인가? 통일교육은 어떤 교육적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인가? 통일교육의 의미와 목표와 방법론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참으로 벅찬 주제가 아닐 수 없고 필자의 능력과 식견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심오한 문제임을 인정하면서도 초보적인 수준에서나마 한두 가지 의견을 피력해보고 싶다. 많은 지적과 비평을 바란다.
먼저, 통일교육은 ‘통일의 본질’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모색하는 인식론적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는 그 동안 ‘통일’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우물쭈물하거나 대단히 자의적으로 해석하였다. 우선 오랜 냉전체제에서 형성된 ‘통일관’이 있다. 이승만 정권은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백두산에 태극기를 꽂는’ 식의 ‘북진통일론’을 외쳤다. 단독정부 수립 직후 ‘통일!, 통일!’하면서 “미국이나 UN의 힘을 빌려서라도” ‘미수복지구’를 수복하겠다는 ‘통일’은 곧 ‘무력사용’과 전쟁을 의미한다. ‘평화통일’을 주장하였다하여 조봉암 선생이 사법살인 당한 후 박정희, 전두환 정권까지 정권이 아닌 민간이 주장하는 ‘통일’은 금기시되었고 따라서 ‘통일교육’이란 말 자체가 없었다. 철저한 반공?반북교육을 듣기 좋아라고 ‘통일교육’이라고 했는지 모르겠으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1990년대 초 이후로 ‘(학교)통일교육’이란 개념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한다.
그 시대적 계기는 냉전의 해체 즉 소련?동구 등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한국 ‘국가 및 자본’의 이북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감 확보’가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며, 소련 붕괴 이후 ‘세계화전략’을 수립한 미국의 강력한 대북전략구도의 추진도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한 때 ‘통일대비교육’이라 하여 ‘이북의 급속한 붕괴’에 대비하여 ‘통일비용’, ‘통일 후 이북 주민에 대한 (사회화)교육 대비 요원 양성’, ‘연착륙(soft-landing), 경착륙(hard-landing)' 운운하면서 온갖 ‘통일’ 개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시기 온갖 ‘통일론’이 난무했던 것도 사실이다. ‘제도통일론’, ‘수렴통일론’, ‘3단계통일론’, ‘국가연합론’, 이북의 ‘개혁?개방’을 통한 ‘흡수통일론’ 등등이 그것이다. 모두 ‘이남 우위적’ 관점에서 무력을 쓰지 않고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희망’했다. ‘미국발 소식통’에 근거하여 학자, 언론, 관료, 교육계, 재계 등이 ‘참여’했고, 통일을 ‘먼 미래의 일’로 생각하고 있던 일부 사람들의 ‘통일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은 한편으로는 ‘희망과 환상’을, 또 한편으로는 ‘실망과 혼란’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편, 한반도의 분단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미국의 ‘정책당국자들’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자신의 대외정책으로 추구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벌써 실현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그동안 대북 적대정책을 추구하여왔던 미국의 자본, 정권 등 정책당국자들은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의 대북 ‘고립압살’과 ‘봉쇄’ 전략을 통해 이북의 사회주의체제를 와해시키려는 전략과 점진적인 방법으로 이북의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을 통하여 이북의 체제를 궁극적으로 해체시키려는 전략, 그리고 교차승인과 남북 ‘국가연합’ 체제 구축 등을 매개로 하여 분단합법화와 분단영구화를 도모하는 ‘두개의 한국(Two Korea)'이라는 대 한반도전략, 이 세 가지 전략을 혼합하여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많은 한반도 정세분석가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의 ‘통일전략’도 미국의 이러한 정책 및 전략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 상당수 통일문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이북은 한국의 ‘임정계승론’, ‘UN승인론’ 등의 ‘민족국가론’과 맞서 ‘항일혁명의 정통성론’과 ‘민족자주성론’ 등을 토대로 민족국가적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는 통일 이전에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아무튼 이북은 한 때 이북의 ‘민주기지(론)’에 기초하여, 이남의 ‘민주혁명’ 등을 통한 한반도 통일을 모색했으며, 1980년 이후에는 ‘연방제 통일론’을 ‘조국통일 3대강령’의 하나로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과 제안 그리고 강령은 물론 이남 당국에 의해 폄하되고 무시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북은 자신의 군사력을 ‘미제의 침략에 대응한 자위적 국방력’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이남 당국은 ‘남침용 무력’ 혹은 ‘대남적화통일 전략’으로 선전해 온 것이 냉전시기의 현실이었다.
통일교육의 첫번째 본질은 민족자주화 교육
이와 같은 역사적인 그리고 현실적인 맥락에서 학교통일교육이 지향하는 이념과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평화통일 지향의 이념과 사상 및 철학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며 통일교육의 본질을 어디에서 모색하여야 하는가? 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통일문제는 ‘외세인식론’을 떠나서는 겉돌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즉 분단은 미?일의 ‘불법적’ 한반도 분할(물론 스탈린의 동의도 포함)과 지배?개입이 직접 원인이라는 점, 그리고 ‘분단체제’의 유지와 ‘반통일’의 분단사는 한반도 주변 외세문제를 떠나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한반도 통일문제의 본질은 민족자주화의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민족 자주 문제의 해결 없이 결코 통일은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이 수많은 선각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우리는 자칫 통일에 무관심할지 모르는 학생들(아이들)에게 통일이 무엇이라고 가르칠 것인가? 나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서 남북이 천명한 ‘평화통일 3대 원칙’에 너무나도 명확한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자주의 원칙, 평화통일의 원칙, 민족 대단결의 원칙이다.
아이들이 교사에게 묻는다. “선생님, 통일이 뭐예요?” 예전 같으면 나는 횡설수설했을 것이다. 혹시 “남북이 합치는 것이지… 그런 걸 왜 묻냐? …”는 식으로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이렇게 대답하겠다. “남과 북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원래대로 하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란다.” 통일은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이다. 따라서 외세의 지배개입이나 간섭 혹은 예속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이것이 통일문제의 본질이며, 통일교육은 ‘통일은 하지 말자’, ‘통일은 필요 없다’, ‘통일은 불가능하다’, ‘통일은 먼 장래의 일이다’, ‘통일은 한쪽이 한쪽을 흡수 병합하는 것이다’는 등의 ‘반통일 교육’이 본질이 아니라, ‘우리 민족끼리 힘을 모아 통일하자!’가 본질이며 이러한 방향과 원칙에서 그리고 분단의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 속에서 다양한 학습방법과 수단, 체험학습, 시청각교재 등을 활용하여 민족자주화와 자주통일의 당위성을 신념화하는 가운데 통일교육의 정당성과 본질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통일교육의 두번째 본질은 민족동질성 확보 교육
통일교육의 본질론에 대한 모색에서 두 번째로 주장하고 싶은 것은 통일교육은 곧 민족동질성 확보교육이며 민족적 단결을 모색하는 교육이고, 그리고 애국적 관점에서 민족의 공존?공영과 상생(相生)의 가치를 추구하는 교육이 바로 통일교육의 본질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평화교육’의 가치와도 연결되지만 올바른 의미의 ‘민족교육’이 더 핵심적인 가치가 아닌가 한다. 분단이 지향하는 것은 민족적대이고 민족분열인데, 통일이 지향하는 것은 민족화합과 민족단결이다. 또한 전쟁을 반대하고 전쟁의 위협을 제거하는 것도 통일교육의 가치이다. 선 평화, 후 통일이냐, 먼저 통일이 되어야 평화가 보장된다는 등의 논쟁도 있지만 아무튼 통일교육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추구하는 가치교육도 통일교육의 한 축이다. 그리고 우리는 ‘차이’를 인정하되 이것을 절대시하지 않고 서로 화합하고 협력하고 단결하고 ‘관용’하는 가치관 교육에서 통일교육의 본질과 미래를 찾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과는 다른 또 한 축의 ‘통일교육’은 통일한다고 하면서도 통일의 당사자이며 한 주체인 상대방에 대한 ‘이질성’을 강조하고 부각하는 교육을 실시하여 왔다. 이 관점의 주안점은 ‘우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한 체제의 우월성’과 ‘다른 체제의 열등성’을 대비시키는 관점에서의 ‘통일교육’이 시행되었다. 지금도 ‘국가보안법’ 체제와 ‘수복’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헌법상으로 근거규정을 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정책의 수립은 ‘(학교)통일교육’이 지향하는 가치를 규제?규정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제도 및 체제상의 차이,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지향 대 ‘우리식 사회주의’ 정치지향의 차이, ‘(자유)민주주의 사상’ 대 ‘주체사상’의 사상적 차이, 개인주의 대 집단주의의 문화적 차이, ‘한미동맹’ 체제 대 ‘선군정치’의 군사?정치적 차이 등등 사이에는 큰 간격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 동안 이러한 ‘차이’를 강조하면서 통일을 먼 장래의 일로 여겨온 세력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고 ‘극복’한다면 ‘평화통일’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통일교육’의 본질론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차이를 절대화하면 평화통일은 실현불가능하고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화하고 최소한 공존?공영?상생하는 가치지향을 가질 때에만 평화통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그 ‘차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남과 북 우리 민족이 평화통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면 이념과 제도의 차이를 인정한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 남과 북은 6?15공동선언 시대를 맞이하여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가 절대적인 것이라면 어찌 ‘개성공업지구’와 같은 경제협력사업과 각종 경제교류?협력 사업이 가능하겠는가? 통일의 당위성과 민족이 원래부터 하나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민족공조’ 정신 내지는 민족적 단결의 정신은 차이를 뛰어넘어 공존?공영?상생의 민족적 가치지향을 토대로 한 통일교육의 본질적 부분이 될 것이다.
통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을 하겠다는 ‘의지’
통일교육의 본질 문제와 관련하여, 비교 고찰하여 볼 수 있는 것이 종교간의 사례이다. 우리 사회는 기독교, 불교, 유교, 무교(무신론) 등이 큰 갈등 없이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통일’이라고 했을 때 예컨대 불교 신자에게 기독교 사상으로 ‘개종’시키고 ‘단일화’시키는 것이 ‘통일’일까? 하나의 가치, ‘자본주의’의 가치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등을 ‘민주주의’, ‘자유’, ‘평등’, ‘인권’, ‘복지’, ‘권리’라는 ‘범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가치’로 포장하여 각 민족적 현실 속에 강요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소위 ‘세계 질서’이다. 이북 동포들이 추구하고 있는 ‘자주?자립?민족적 자존’ 및 ‘사회주의’라는 가치를 ‘타도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통일교육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동료교사들이 묻는다. “○선생, 통일교육이 뭡니까?”. 예전에는 대답을 못했다. “글쎄요…별로 드릴 말씀이 없네요. …”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대답해 보고 싶다. “민족동질성회복교육, 애국애족교육, 민족교육, 공존?공영?상생의 가치관 교육이 아닐까요? 남과 북 우리 민족이 서로 화합하고 단결하여 서로 협상하고 통일하자, 통일해야 한다 뭐 이런 관점에서 수업 연구를 잘 해서 청소년들에게 지적?정서적?의지적 측면에서 잘 교육하는 것이 통일교육이라고 봅니다.”
덧붙여 말씀드리면, 우리 민족은 화합하고 단결해야 한다. 낮은 수준의 통일에서 완성된 통일까지 통일은 하나의 과정이며, 평화통일은 남과 북의 정치적 협상을 통해 점진적으로 실현될 것이다. 통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을 하겠다는 ‘의지’다. 이것이 없으면 통일담론이나 통일교육은 헛바퀴 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