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한국민권연구소 연구위원)


6차 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에서 합의된 주한미군 재배치에 대해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간의 논쟁이 치열하다. 한나라당은 '북한의 위협에 어떤 보안장치도 없는 재배치'라며 비판하고 있고, 노무현 정부측에서는 '안보상의 불안 없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100년 넘게 외국군이 지속되고 있는 용산을 되찾는 일'이라며 재배치에 대한 '성과'를 과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의 논쟁은 사실에 어긋난 것일 뿐더러 본질을 회피하고 있다. 또한 한국 정부가 이전 비용을 전담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들이 벌이는 논쟁의 잘못된 점을 짚어 보고자 한다.

주한미군 재배치는 세계적인 미군 재배치의 일환

미국의 국방부 차관보인 롤리스가 "주한미군이 서울 용산기지를 떠나는 것은 이전할 시기가 됐기 때문이며, 미국이 추진중인 전 세계적인 미군 재배치와는 별개"라고 하였지만,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미국의 해외기지 재배치는 미군기지를 재조정하여 미국의 개입능력을 확대하고 개입의 속도와 효율성을 가속화한다는 계획의 일환이다. "동맹국이 작전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작전에 따라 동맹군을 결정한다"는 방침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25일 백악관에서 하나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의 핵심은 미국이 앞으로 해외주둔 미군의 태세를 재검토하기 위해 의회 및 동맹국들과 본격적인 협의를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부시의 발표는 해외주둔 미군을 병력위주 개념에서 첨단전투력과 신속대응전략 위주로 재편하겠다는 것을 반영한다.

같은 날 럼즈펠드는 "해외주둔 미군은 보다 유동적인 모습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그렇게 되면 미군은 이제 단 한 곳의 국가에만 묶여 있는 형태가 아니라 보다 넓고 다양한 임무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새로운 첨단무기 기술로 인해 전투능력을 상실하지 않고 군대 규모와 무기 규모를 줄일 수 있다"는 발언까지 하였다. 지난 해 4월 1차 회의에서 '한국군의 역할 증대, 주한미군의 역내 안정에 대한 기여 강화'라는 합의를 본 것도 미국의 이같은 계획의 일환이었다.

워싱턴 포스트지의 보도에 의하면 미국은 해외 미군 기지를 성격에 따라 중추 기지, 전방 작전 기지, 비상 기지의 세 가지로 나누고 주둔 병력을 재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동맹국 중 전략적 가치가 높은 영국, 일본 등을 영구 전략 중추(HUB)로 하고, 현 해외기지를 소규모 병력과 장비만 주둔시키는 전진 작전기지(FOB:Forward Operating Base), 그리고 병력은 주둔시키지 않는 대신 비상시를 대비해 기지 사용협정을 미리 체결하는 비상기지 개념의 전진 작전지역(FOL:Forward Operating Location)으로 구분하여 재배치하려 한다.

이는 보다 적은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기동력과 화력, 그리고 영구적 고정기지를 축소하여 오히려 전세계적인 개입능력을 키우려는 것이며, 대규모 미군이 주둔해 있는 한국,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등의 대규모 미군 기지에 대해서는 규모를 축소하고 그 대신 남유럽, 중동 및 아시아 지역에 소규모 기지를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이같은 미국의 구상이 명명백백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반미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애써 세계적인 미군 재배치와 관련이 없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한 냉전세력들의 시대 역행적 태도

이미 지난해 12월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용갑의 주도로 147명의 국회의원들이 한미연합사와 유엔사의 한강 이남 이전을 막기 위한 국회차원의 결의안을 추진한 바 있다. 한나라당에서 127명이, 민주당에서 박상천, 한화갑 등 9명이, 열린우리당에서 정대철이, 자민련에서도 10명이 이 결의안에 서명하였다. "대통령을 둘러싼 국가안전보장회의 등 소위 자주파가 이제 우리 안보까지 뒤흔들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색깔론을 편 것이다.

6차 정책구상회의에서 재배치에 대한 합의 사실이 밝혀지자 한나라당의 총무인 홍사덕은 "휴전선에 집중 배치된 북한의 장사정포를 그냥 두고 미군만 사정권 밖으로 철수할 경우 치명적인 안보 공백이 생길 것"이라는 발언을 하였다. 정부가 합의한 미군재배치는 '북한의 침략 위협을 더욱 고조시킨다'는 주장이다.

'북한 위협'의 허구성은 이미 밝혀진지 오래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주장을 펴는 이유는 자주적인 한미관계를 요구하는 국민의 여망을 '북한 위협'을 내세워 잠재워 보겠다는 심보 때문이다. 종속적인 한미 관계와 분단이라는 틀에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생존을 유지해 왔던 세력들에게 자주적인 한미관계의 정립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로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국민들의 그러한 요구를 잠재워야 했으며, 어떤 특별한 반대 논리를 펼 수 없는 그들로서는 '북한 위협'이라는 케케묵은 냉전 논리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주한미군 재배치가 한반도를 위협한다. 미국은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앞에서 언급한대로 세계적인 미군재배치는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보다 용인하게 해준다. 아니 군사적 행동의 효율성을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미군의 재배치가 추진 중에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같은 군사 계획은 여전히 정전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한반도로서는 가장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남쪽만의 문제도 아니요, 북쪽만의 문제도 아닌 민족 전체의 문제이다. 따라서 주한미군 재배치는 민족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태의 본질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특히 한나라당은 오로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주한미군 재배치의 본질을 애써 외면하면서, '북한 위협'이라는 논리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용산 편애(?)' - 용산 이외의 기지는 사용되어도 괜찮은가

주한미군 재배치에 대해 노무현 정부는 용산을 되찾는 것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듯 하다. 즉 120년이 넘게 외국군이 주둔해왔던 용산을 되찾았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용산을 되찾게 되면, 다른 곳은 기지로 내주어도 상관이 없는가.

용산만 되찾게 되면 다른 곳으로의 이전 비용까지 다 대주어도 상관이 없는가. 용산만 되찾고 나면 미국의 한반도에서의 전쟁수행력이 높아져도 상관이 없는가.

오히려 미국은 이같은 노무현 정부의 생각을 악용하고 있다. 지난 해 2월 럼즈펠드는 미국방부 정례기자회견에서 "대규모 외국군대가 서울처럼 급성장하는 대도시 한가운데 주둔하고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이는 마치 뉴욕 시카고 워싱턴 같은 대도시에 외국군대가 주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밝히기도 했다.

마치 자기들이 서울의 '행복'을 위해서 용산기지를 떠나는 것인 양 발언한 것이다. 지난 해 2월이면 정책구상회의가 시작되기 전이다. 미국은 시작되기 전부터 이같은 논리를 펴며 용산기지 이전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던 것이다.

물론 100년 넘게 계속되어온 용산기지를 되찾기 원하는 국민 여론이 높다. 그러나 국민들의 자주적인 한미관계에 대한 요구는 용산기지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용산기지를 되찾기 위해 다른 기지를 내주는 것을 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그같은 논리는 자주적인 한미관계를 원하는 국민의 요구를 악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자주국방'이 자주국방이기 위한 제언

이제는 노무현 정부도 교훈을 깨달았을 때가 되었다. 1년간의 학습에도 불구하고 '자주국방'의 교훈을 깨닫지 못했다면 노무현 정부로서도 불행한 일이고, 우리 민족으로서도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부터 한미동맹의 '굳건한 강화'를 주장하면서 미국한테 대부분 양보해왔다. 이라크 파병 요청을 수락한 것도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였으며, 노무현 정부가 구체적으로 염두에 두었던 것은 '북핵 문제 해결 전에 기지 이전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2006년이나 되어야 이전이 완료되기 때문에 그같은 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라는 변명을 할지 모르지만, 한국 정부의 이전 불가 방침에 대해 일방적으로 이전을 통보한 사실을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이란 존재는 한국에게 있어서 '떡 하나 주면 안잡아 먹지' 하는 호랑이가 아니라 '떡 하나 주면 또 떡을 달라'고 하는 침략자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기지 이전이라는 미국의 일방적인 통보에 뒤따른 것이 이전 비용의 한국에 대한 전가였고, 그 사용 내역조차 밝힐 수 없다는 오만한 태도가 아니었던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주한미군 이전과 관련해서 가장 비판 마땅한 세력이 한나라당이라는 것은 두말 할 필요 없다. 지금 노무현 정부가 합의한 것도 사실은 한나라당의 전(前)전신인 민자당에서 이미 다 그 틀을 마련했기 때문에 지금의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의 외교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자격조차 없다.

그렇다고 하여 노무현 정부가 펼치고 있는 '자주국방'이라는 탈을 쓴 굴욕적 외교 정책이 면죄부를 받을 수도, 정당화될 수 없다. 첫 단추를 잘못 꿴 노무현 정부의 '자주국방'은 의도야 어찌 되었건 '망국국방'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논의중인 주한미군 재배치 협상을 전면 중단하고, 6차례의 한미동맹정책구상 회의를 통해서 합의했던 일체의 사항들을 백지화하겠다고 통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미국에게서 무언가 반응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분명히 한국 정부를 위협하는 내용이 될 것이다. 미국이 그렇게 나오면 노무현 정부는 또 하나의 폭탄선언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오만한 미국에게 일체의 도움을 줄 수 없다! 이라크 파병안을 철회한다!"

한나라당에서도 난리가 날 것이다. 당장 탄핵하자고 하고 가두시위를 전개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걱정할 것은 없다. 자주외교를 펼치는 노무현 정부의 뒤에서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민들'이 있다. 국민들이 노무현 정부를 미국과 한나라당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은 그렇게 실현하는 것이고, '정치적 3급수, 4급수'들은 그렇게 청산되는 것이다.

국민을 믿고 국민의 의사를 쫓는 정부가 되느냐, 미국을 믿고 미국의 의사에 따라가는 정부가 되느냐 하는 기로에서 노무현 정부의 선택은 하나이다. 만약 반대의 경우를 선택한다면 노무현 정부에게 돌아가는 것은 '국민적 저항'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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