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준영기자= "질(質)을 결정적으로 높여야 합니다".

경제 전반적으로 양(量)에 허덕여온 북한이 질을 강조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물론 과거에도 제품의 질을 높일 것을 당부해 왔지만, 최근에는 '결정적으로'라는수식어가 새롭게 따라붙으면서 강도를 높인 게 특징이다.

특히 이런 움직임은 북한의 공식적인 언급과 기업 현장에서 감지되는 것은 물론이고 북한을 왕래하는 외국인의 눈을 통해서도 속속 확인되고 있다. 게다가 생산자와 소비자 양쪽에서도 질이 화두로 떠오를 조짐도 보이고 있다.

◆북한에 '품질 제고' 바람 솔솔= 정책 차원의 질 제고 대상분야는 소비자와 직접 접하는 경공업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연간 국정지표를 담고 있는 올해 공동사설은 "경공업 부문에서는 지금있는 생산토대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기술개건을 적극 추진시켜 인민소비품 생산을늘리고 그 질을 결정적으로 높여야 한다"며 양과 함께 획기적인 질 제고를 강조했다.

종전 공동사설이 "인민생활에 절실히 필요한 1차소비품과 기초식품을 더 많이생산해야 한다"(2001년), "경공업 현대화를 다그쳐 질 좋은 인민소비품을 대대적으로 생산해야 한다"(2003년) 등 증산에 초점을 맞춘 것과는 차이가 있다.

평양기초식품공장 관계자는 지난 3일 조선신보와 인터뷰에서 이같은 공동사설의요구사항 변화를 언급한 뒤 "수도 시민들이 이제는 양보다 질을 논한다"면서 "올해목표는 인민들 구미에 맞게 생산물의 질을 결정적으로 높이는 것이며 이를 위해 생산활동도 컴퓨터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선중앙TV는 15일 평양식료품포장재공장이 각종 식료품 포장재들을 쓰기에 편리하면서도 더 질 좋게 생산하기 위해 기술혁신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가톨릭 구호단체인 카리타스 홍콩지부의 카티 젤웨거 국장은 지난달 북한에 다녀와 변화상을 설명하면서 "경제개혁 이후 가장 큰 주민의식 변화는 상품가격과 품질에 대한 관심"이라고 말해, 소비자 구매행태에 변화가 일고 있음을 시사했다.

◆왜 '품질'을 강조하나= 정책적으로 경공업 중심의 질 제고 바람을 일으키는배경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올해 신년사설에는 "선군시대 경제는 인민들에게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보장해 줘야 할 것"이라는 포괄적인 언급이 나왔고,언론매체들은 이를 '새 세기의 요구'라는 표현하고 있다.

과거 국가품질감독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질 제고 문제를 단순한 경제실무적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정치적 문제로 보고 제품 질을 하루 빨리 세계적 수준으로높일 것을 수차례 강조했다"(2001.2.2 중앙방송), "현 시기 제품 질을 높이는 문제는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보여주는 일이며 나라의 대외적 권위와 관련되는 사업임을 알아야 한다"(2003.12.19 노동신문) 등으로 설명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특히 과학적인 품질관리를 통한 질 제고를 강조하면서 "노동을 절약하고 생산 효과를 높이며 인민생활과 대외무역을 발전시키는 데서 제품 질을 높이는 것이 갖는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은 우선 주민생활을 향상시키고 장기적으로 수출을 늘리기 위해 질 제고 방침이 나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2002년 단행된 7.1경제관리 개선조치가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고 보는 게 더욱 일반적이다. 그 중에서도 농민시장을 종합적인 소비품 시장으로 확대한 시장개편의 역할이 커 보인다.

실제로 젤웨거 국장은 물가와 임금을 올리는 개혁조치를 취한 이후 국가의 배급표에 의존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필요한 물건을 직접 시장에서 구입해야 한다는점을 품질에 대한 관심 증가 배경으로 꼽았다.

또 평양식료품 포장재공장을 소개한 중앙TV는 "새해 공동사설을 받들고 나선 전국 각지의 식료품공장들에서 보다 질 좋고 쓸모 있는 포장재를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 수요자의 기대치 상승 움직임을 엿볼 수 있다.

특히 평양기초식품공장 관계자가 "지난 시기에는 생산과업만 달성하면 됐지만 2002년 경제관리개선조치가 취해진 이후에는 번 수입에 의해 평가돼 판매까지 책임지게 됐다"고 품질제고 배경을 설명한 것은 생산자 인식이 소비자 욕구에 부응하는 쪽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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