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총재는 `북측이 정성을 다해 평양 방문단을 맞아줬다`면서 `내달쯤 2차 상봉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장 총재와의 일문일답이다.
--소감을 말해달라.
▲지난 90, 91년 평양에 갔을 때와 이번 이산가족 상봉 방문은 분위기가 달랐다. 북측은 어떻게든 실수를 하지 않고 요구를 들어주려고 노력했으며 친절이 몸에 배어 나왔다. 이산가족 100명을 한 사람씩 따라다녔는데 처음에는 가족인 줄 알았다. 마치 부모형제를 모시는 것 같았다. 예전과 같이 형식적이거나 대결의식이 없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정성이 대단한 것 같았다.
--예전에 평양을 갔을 때와 비교하면 ▲지난번 언론사 사장단 방북 정도는 아니었지만 시민들이 많이 손을 흔들어줬고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남북이 하나임이 표면에 드러났다.
(남측 방문단 상봉수자가 예상보다 적은 데 대한 설명) 통신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차질이 있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처럼 컴퓨터 등록이 안 돼 찾느라 애쓴 것 같다. 해방 이후 월남가족들이 핍박받을까봐 이름을 고친 사람이 있지 않나 싶다. 그럴 경우는 찾기 어렵다.
(평양에서 친척 상봉을 거부한 데 대한 설명) 내 고향은 선천이지만 친척은 모두 용천에 있다. 사람들이 선천을 다 뒤진 모양이다. 나에게 이산가족 상봉을 얘기했지만 100명 이외에 만나지 못한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만날 수 있었겠나.
(이산가족 상봉단 구성 남북 차이 설명) 방남단은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교수들이 많은 데 비해 올라간 분들은 상업이나 농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쪽도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은 분들이 많았다.
또 정치경제적으로 다른 입장이기 때문에 주고받은 용어가 피차 간에 충격을 받을 만한 것이 있기도 했다. 이것도 이해한다.
언론에 대한 분위기가 굉장히 좋아졌다. 지난 91년 평양시민들이 우리 기자들을 보는 방식과 비교해 지금 대하는 것이 달라졌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언론에 대해 기대를 갖는 것 같다.
비용을 실질적으로 감소시켰으면 좋겠다. 여기(남)에서 잘 하니까 거기(북)도 경쟁적으로 신경쓴 것 같다.
--방북의 성과는 ▲지난 85년 이산가족에 비해 화기애애했다. 헤어진 이산가족의 한 맺힌 가슴을 풀어주도록 노력했다. 가신 분들도 대단히 만족했다.
이 문제(이산가족 상봉)는 서둘지 않되 당국자들이 애를 많이 써야 할 것 같다.
--다음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논의는 ▲장재언 북적 위원장과 논의했다. 언론사 사장단 방북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9, 10월 이산가족이 만나고 내년 고향집도 방문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는데 실향민들이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꼭 이뤄져야 한다. 장 위원장도 남북 공동선언의 실무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면회소 설치 문제는 ▲이야기 했다. 적은 인원의 이산가족 상봉으로 다 만나는 것은 불망이고 아쉬움 달랠 길 없는 데 자기들도 면회소를 마련해 많은 이산가족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평양 경제상황은 ▲지난 91년 당시의 평양과 비교해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북측이) 대한적십자사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북측 사람들의 평가는 ▲존경하고 큰 일을 내려주신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다음 상봉은 언제쯤 ▲다음달 쯤 될 것이다.
--추석 전후인가 ▲잘 모른다.
--그때도 100명 규모가 될 것인가.
▲잘 모른다.
--다음 상봉을 위한 적십자 간 모임을 제안했나.
▲말은 했지만 저쪽은 무슨 일 하기 바로 직전에 제의를 하곤 하기 때문에...
연합 (2000/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