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희(서울 월곡초등학교 교사)


솔직하게 말하면 국어 지도서에 나온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을 읽기 전까진 아동의 권리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읽기 교과서에 `인권과 가치`라는 보기글이 나오면서 참고자료로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이 나왔다. 나름대로 아이들을 존중한다고 했던 나도 알게 모르게 아이들을 무시한다거나 인격체로 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고, 늘 반성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곤 했다.

그런데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을 살펴보고 너무 놀랐다. 일반적으로 성인이 누리는 권리는 아동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협약은 1989년 11월 20일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조약으로 2001년 현재 우리 나라를 포함 191개국의 비준을 받음으로써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국가의 비준을 받은 국제법이 되었다. 오늘 말하고 싶은 내용과 관련한 조항만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제12조(아동의 의견) 당사국 정부는 모든 아동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에 대해 말할 권리를 보장해야 하며, 아동의 견해에 정당한 비중을 두도록 해야 한다.  

제13조(표현의 자유) 모든 아동은 표현의 자유를 지니며, 국경과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정보와 사상을 접하고, 전달할 권리를 가진다.

제14조(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 모든 아동은 사상과 양심,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제15조(결사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 모든 아동은 평화로운 결사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

지난 주 미술시간은 포스터 그리기였다. 무슨 내용을 할까 고민하다가 신문 기사를 읽고 기사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정하고 그것을 주장하는 내용을 포스터로 그렸다. 지난 주는 파병 문제가 워낙 많이 나왔기 때문에 1/3의 아이들(13명)이 `전쟁 반대, 평화 사랑`을 주제로 포스터를 그렸다.

내가 생각했던 숫자보다 너무 많아서 사실 놀랐다. 1학기때 이라크전에 대한 수업을 하긴 했지만 아이들의 관심사는 너무 빨리 바뀌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주제로 선택할 거란 생각은 못했다. 수업후 반전 배지를 달고 다니는 행동이 아이들의 마음 속에 전쟁 반대에 대한 생각을 좀 더 인상깊게 심어준 듯하다.
 
그날 저녁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우연히 한 일간지를 보게 되었는데, 신문활용교육에 대한 글이었다. 그 글에서는 신문에 나온 기사를 본 중학생 하나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믿는 경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글쓴이의 주장은 "학생들은 기사를 판단할 근거가 미약하고 교사의 개인적인 생각에 좌우될 수 있으므로 객관적인 입장을 가지고 지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기사를 읽고 난 미술 시간을 돌이켜 보았다. 내가 아이들에게 `전쟁 반대`에 대한 내 입장을 너무 드러낸 것이 아닐까, `객관적인 교사`의 모습에서 벗어난 것이 아닐까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그 글을 쓴 교사 역시 그다지 객관적이진 못했다는 점이다. 왜 그런지 자세한 내용은 이 글과 크게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생략한다.

위에 제시한 `유엔 아동 권리 협약`에 따르면 내가 한 수업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어떤 현상에 대한 자기 생각을 자유로이 이야기할 수 있으며 의견의 차이는 토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문제를 제기한 교사의 말대로 아이들이 근거, 경험부족 등으로 문제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위험하다면 그 주장은 어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어른들 역시 개인에 따라 신문기사의 내용을 명확하게 판단할 근거나 경험의 차이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누가 보기에도 객관적인 사실이 아닌 기사도 신문에 실리고, 정정기사는 며칠 뒤 아주 조그맣게(보이지도 않게) 실려 마치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로 믿어지는 일이 있었다는 것은 아마 경험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신문들 역시 자기 입장에서 기사를 쓰고, 그 신문을 읽는 사람들 역시 자기 입장만 주장하는 일은 우리 현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객관성은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며, 선택은 어떤 한 쪽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객관성을 유지한다고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객관성의 이름으로 아무 선택도 하지 않고 문제를 내버려두거나 내 생각만이 객관적이라는 입장이 나에게도 있지 않나 생각해 보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모든 인간은 성별, 나이, 피부색, 빈부, 종교 등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려야 하며 그것이 제한될 때는 함께 힘을 모아 고쳐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으로서는 미약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교사들과 함께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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