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공동선언 정신은 통일교육의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김맹규(서울 청담중학교 교사)
1. 지난날 반공교육의 문제점
허리 잘린 한반도의 남녘 땅에 살면서, 과분하게도 현직 교사가 되어 한 중학교에서 `도덕`이라는 이름의 교과서를 들고 교실을 왔다갔다하면서, 통일문제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고, 통일교육의 방향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가지게 되었다. 지난 1980년대 중반 교사(중등 국민윤리 2급 정교사)로 발령받은 필자가 펼쳐본 중학교 도덕교과서는 한마디로 반북·반공교과서였다.
그 내용을 한마디로 "도덕 〓 반북·반공"으로 도식화해 볼 수 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가족간의 예절 어쩌고 하는 단원에서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좋은 말을 나열해놓고 꼭 마지막에는 `북한의 가족 생활`이라는 것을 넣고 "자식이 부모를 고발한다"는 식으로 반북선전을 늘어놓는 식이었다. 북한 관련 내용도 분량이 많아 거의 교육과정의 거의 1/3에 달하지 않았나 생각되는데, 과연 북한 실정이나 분단사 등의 교과 내용이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진실한 내용의 것이었냐 하는 것은 굳이 말하기조차 쑥스럽다.
1986년 12월인가, 당시 <고입연합고사>에 시험감독하러 가니 도덕과 문제 중 다음 문제가 눈에 띄었다. 문제) 다음 중 북한이 금강산댐을 만드는 저의(底意)는? 1) 관광개발용 2) 경제적 목적 3) 군사적 목적 4) 평화적 목적 5) 홍수방지. 아마 이 문제는 모든 수험생이 당연하다는 듯이 3번으로 답했을 것이다. 그 해 11월인가 학교 내에서 전 학생을 참가시킨 가운데 (여의도 63빌딩의 절반 이상을 물에 잠기게 한다는 내용의) `북괴 수공(水攻) 침략 기도 규탄 궐기 대회`를 (공문에 의해) 강제 실시케 했던 것이다. 당시 그럴듯하게 수량을 공학적으로 계산하여 63빌딩을 물 속에 잠기에 하는 도표를 그린 사람이 후일 서울대 총장을 지낸(판공비 등으로 물의가 야기된) 선우중호(1940년생) 토목공학과 교수이고, 그 사람의 부친이 반공검사 오제도와 더불어 1949년 `국민보도연맹`을 조직하여 전란시 수십만 양민학살로 이끈 발단을 제공한 선호종원 검사(1918년생)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가? (두 사람 다 오늘날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2. 통일문제의 본질과 현실
통일문제에는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전략 등 외세 문제가 깊숙이 그리고 본질적으로 개입하고 있기 때문에 자주권 회복의 문제를 그 본질적 성격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통일교육을 한다면서 이러한 우리 분단사의 본질문제인 외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왜 통일을 못하고 있는가를 설명해줄 수 없다. 그리고 통일론도 분명하고 설득력 있게 해설해내지 못하고 있다. 왜냐? 한마디로 철학과 이론이 부재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과연 당국자는 평화통일 의지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은 해소될 길 없다. 어떻게 하면 통일이 된다하고 그 통일의 경로를 제시하지 않고 막연히 `통일` 어쩌고 하면서 구구절절이 설명만 길어지는데, 학생들이 `선생님, 어떻게 하면 남북이 통일할 수 있어요?` 하고 질문을 하면 아무도 확실하게 그 경로를 제시할 수 없는 것이 이 나라 통일교육의 현실이다.
솔직히 통일교육인지 `반통일교육`인지 개념도 애매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체제통합 혹은 제도통합을 요구하며 `완전통일`을 지향한다는) `국가연합제` 통일론과 남북의 상이한 제도(즉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그대로 두고 통일을 실현하자는 `연방제` 통일론이 나와 있다. `연방제`는 이북의 주장이라고 무조건 배격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학교교육에서 `국가연합`이라는 것이 옳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과연 `국가연합`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데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토론은 안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다(원 코리아, One Corea)`라는 통일구호와 `두 개의 한국(투 코리아, Two Korea)`이라는 분단합법화-분단영구화 정책의 본질적 차이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는 통일교육이라고 하면서도 솔직히 말하면 <`언젠가는` `통일`(어떤 통일?)이 되면 좋고, 안되면 할 수 없고 …>식이 아닌지 모르겠다. 차라리 <통일하기 싫다, 안하겠다!>하면 알아듣기라도 쉬울텐데…
3. 우리 교과서의 분단 역사인식 문제
아래 한국 교과서의 글을 통일의 한쪽 당사자인 북의 학자들이나 교육자들이 읽어보면 어떤 평가를 내릴 지 궁금하다. 통일의 길이 험난한 이유도 `역사인식`의 문제, `통일철학`의 문제 혹은 `국가적 정통성` 문제가 처음부터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국은 통일을 하더라도 한국이 `정통성`이 있기 때문에 `한국 중심으로`해야 된다고 하는, 즉 `흡수통일`이 `통일`이라고 하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통일은 남과 북이 함께 하는 것인데, 상대를 인정하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통일이 가능할까? 북측의 역사인식은 물론이겠지만, 아마 한국 학자들의 역사인식도 이렇듯 단순하고 일방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암울한 시기에도 우리 민족혼이 죽은 것은 아니었다. 3·1운동, 6·10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중국 상하이에 대한 민국 임시 정부를 세웠으며, 수많은 애국 지사들이 독립 운동에 헌신했다. 국내에 있던 선각자들도 국민들을 깨우치기 위해 교육 사업에 심혈을 쏟았다. 드디어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하여 우리는 광복의 기쁨을 맞볼 수 있었다. 광복은 연합군의 승리와 애국 지사들의 독립 운동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광복의 기쁨도 잠깐, 우리 나라는 또다시 시련에 부딪히게 되었다. 분단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우리는 남쪽 지역만의 자유 선거를 통하여 대한 민국을 건국하였다. 대한 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현대 국가이다. 그러나 대한 민국의 기틀이 마련되기도 전에 북한의 남침에 의하여 6·25 전쟁이 일어났다. 수많은 인명 피해, 국토의 초토화, 이산 가족의 발생, 남북 간의 심각한 적대감 등이 6·25 전쟁의 결과였다. 휴전은 되었으나 나라가 반쪽으로 나누어진 채, 대한 민국은 남쪽에서만 주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현행(2003) 중학교 2학년 도덕교과서 206쪽)
또한 이어서 남측의 통일인식을 살펴보자. 아래 개념은 어떤 통일 개념일까? 도덕교과서(현 중학교 교과서는 이전과 달리 북한과 통일에 관련한 단원이 얼마 되지 않는다. 2학년 교과서에만 일부 언급됨)에 나오는 통일에 대한 개념 해석이다.
"통일은 국토와 체제의 통일, 남북한 화해 협력과 교류, 평화의 달성,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질성 회복 등의 많은 의미를 가진다. / 그러면 통일의 의미는 무엇일까? 통일은 단순하게 `남북한의 어느 한쪽으로 합쳐지는 것`이라는 한 가지 방법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민족의 통일은 양분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우리 민족의 삶을 하나로 묶어 완전한 우리 한민족국가를 만드는 것이다."(현 중학교 도덕2, 259쪽)
남은 자본주의체제이고, 북은 사회주의(공산주의)체제이다. 지향하는 이념과 사상, 제도와 신앙 등 문화의 차이가 크다. 이것을 하나로 묶어 `어느 한쪽으로 합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남측의 통일방안인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북의 붕괴를 전제로 북의 제도와 체제를 남 체제로 `흡수`하려는 즉 전국적인 자본주의화 의도를 가진 `흡수통일` 방안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통일의 상대방인 북이 이를 받아들이겠는가?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통일의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4. `국가연합제` 통일론의 문제점
아래 `통일교육의 기본 지침서`를 보자.
"결국 남북한이 평화정착을 실현한 뒤에 완전한 통일로 나아가는 길은 상호주권이 보장되고 상대적으로 통합력이 낮은 국가연합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연합조차도 현재의 적대적인 남북관계를 고려해 볼 때 미래의 일이며, 당면한 과제는 국가연합을 가능케 하는 평화정착이라고 할 수 있다."(2000년 통일교육기본지침서 61쪽, 통일부)
남북관계는 `나라와 나라 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남북기본합의서)이다. 남북은 이미 서로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인식을 여러 차례의 공동선언을 통하여 공유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남북의 이러한 관계를 상호 주권국가로 승인하여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성격을 변화시킨다면 한반도는 `두 개의 국가`로 국제법적으로 공인되며 이제는 통일하자는 주장이 곧 상대 국가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되며 이제 우리 민족의 분단은 합법화되고 영구화되지 않겠는가?
말이 국가연합이지 `독립국가연합`, `유럽연합`, `미-캐나다 북미연합` 운운하는 연합이 통일의 전단계라는 주장이 논리적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프랑스와 영국이 `유럽연합`의 일원이지만 프랑스와 영국의 `통일`의 당위성은 국가연합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아마 `평화정착` 후 국가연합이 되면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완전한 통일`이 될 수 있다고 단계론적 주장인 듯 하나 평화통일은 일방이 하는 것이 아니라 쌍방이 민족적·민족사적 동질성을 토대로 한 정치적 합의로 하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과연 위와 같은 `국가연합론`이 `영구분단론`은 될지언정 `통일론`이냐 하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평화정착`이라는 것도 통일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는 것이다.
5. 통일론의 본질 문제에 대한 고찰
한국정부는 현재의 적대적인 대결상태 → 평화정착을 통한 남북간 국가연합의 실현 → 단일민족국가형성의 단계를 밟는 것이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경로라고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통일은 체제통합 즉 체제단일화를 의미하고, 여기에는 남한의 체제 즉 `자유민주주의 - 자본주의` 체제로의 단일화를 상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내용상으로 `흡수통합론`과 맥락을 같이하며, 이러한 의향과 시도는 자칫 극단적 대결로 치달을 위험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정부당국자들도 통일을 `먼 장래의 일`로 간주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국가연합`이라고 하는 것은 남한과 북한이 주권국가로서 상호승인한 상태에서 평화공존하는 체제인데 마치 미국과 캐나다 같이 상호 무력도발의 위협없이 경제적으로 교류·협력하는 `사이 좋은 이웃국가` 형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연합론`이 현실화되면 그것은 분단을 시킨 당사자인 외세에 그 책임을 면책시켜주는 (그 자체가 반민족적이고 불법적인) 분단의 합법화요, 분단영구화 기도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남과 북이 현 상태로 영구분단되기를 원하는 외세의 교묘한 민족분열책동인 투 코리아 정책(Two Korea Policy)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만일 남북이 현재까지의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 (1992년 2월 19일 발효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아닌 상호 국가주권을 인정하는 두 주권국가로서의 `평화공존` 상태가 된다면 이제는 `통일`을 요구하는 자체가 그 주권국가의 주권을 침해하는 국제법적 침략과 범죄행위가 된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진정한 `평화`는 `통일`이 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관점에서도 논란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
북한의 통일론은 19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수립방안`의 발표 이후 `연방제론`이다. 남한 현 체제와 제도인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자치지역정부를 구성하고, 북은 현 사회주의 체제를 그대로 자치정부를 구성하며, 이 두 지역자치정부 위에 하나의 국가인 연방정부를 구성하여 외교, 국방 등의 국가주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이 방안에 대해 한국정부는 진지하게 검토하기는커녕 북한이 `대남 혁명전략의 일환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폄하해 왔다.
또한 현 상태는 두 개의 적대 상태에 있는 서로 다른 체제이기 때문에 `연방제`는 합의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2000년 통일교육기본지침서). 즉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는 서로 적대적이기 때문에 공존할 수 없다는 주장인데, 체제 자체가 적대적이라기보다 체제를 운영하는 정권담당자들의 성격이 적대적이라고 보기 때문에 , 결국 통일문제라는 것은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현실적으로 자주적 통일국가를 수립하려는 남북 두 정권의 정책적 합의 후에나 가능한 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 이 문제에 대하여 2000년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에서 "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합의 · 선언하였기 때문에, 이제 우리 민족은 통일운동의 험난한 과정에서 분명한 이정표를 마련하게 되었고, 이제는 6·15공동선언의 실현이 남북해외 우리 민족의 과제가 되었다.
7. 글을 마치며 - `통일교육`의 방향
그러면 자주적 평화통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통일교육`은 어떤 방향에서 실시해야 할 것인가? 참으로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한 소견을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한반도 남녘에는 정부당국자를 비롯한 통일을 지향하는 애국자들이 많을 줄 안다. 통일운동 단체도 많고 민족자주의 열망도 드높아 간다. 한편 우리 사회는 통일하지 말자는 반통일수구세력도 있고, 통일은 (상호 제도와 이념의 존중이 아니라) 자본주의로 `흡수통일`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인식의 도착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통일은 남과 북이 하는 것이지 한 일방이 혼자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민족자주-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세력과 통일을 원하지 않거나 방해하는 반통일세력이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이들의 상호 역량의 우열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지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 평화통일은 두 정권의 역할이 큰 만큼, 한국에서 말로만 통일이 아닌 실질적으로 남북정치협상으로 통일을 할 수 있는 통일지향적인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되어야 통일이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국민참여정부`인 노무현정부는 `6·15남북공동선언`을 조속히 실현하자!, 남북평화통일을 위한 협의기구를 구성하자`라는 말도 못 꺼내고 있다. 즉, 통일할 마음이 없거나 미국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이제 우리 한국 민중들은 한반도 문제와 통일 문제에 미국이 근원적이고 근본적으로 개입되어 있고, 그것이 우리의 통일운동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여왔다는 역사적 진실을 이제 확연하게 깨닫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