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남북화해 국면 속의 한국사회
김 동 춘(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지난 해 우리는 분단 50년만에 남북관계에서 실로 획기적인 일들을 많이 겪었다. 그 중에서도 남북정상회담과 2차례에 걸친 이산가족의 상봉은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다. 새삼 우리는 혈육의 정(情)이 얼마나 엄청난 힘을 가진 것이며, 언어라는 것이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데 얼마나 무기력한 도구인지 실감하였다. 어떤 정치적 장벽도 한번 터진 이 상봉의 물결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북화해는 결국 남북한 사회의 변화여부에 달려

그러나 이러한 대 사건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남북화해 국면을 연 것은 아니었다. 즉 그 동안 남북한의 적대관계를 지속시켜온 법, 제도, 이데올로기 등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도 아니고, 한 국가 내의 연방 간의 관계도 아닌 남북한의 특수관계가 새로운 형태의 관계로 변하지 않고서 남북한이 진정한 화해와 평화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실질적 남북화해 과정에서 근본적인 걸림돌은 바로 분단 과정에서 고착화된 남북한의 정치권력,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사회 내적인 역학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남북화해의 단기적인 성패는 북미, 북일관계 혹은 남북한 정치권력의 의지이겠지만, 장기적으로 구조적인 성패는 결국 남북한 사회의 변화여부일 것이다.

우리는 지난번 남북 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등을 지켜보면서 더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는 남남화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의 전통적인 냉전세력은 남북정상의 만남 자체를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이철승은 "남북정상회담은 남쪽에 반공체제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으며, [한국논단]발행인인 이도형은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말을 쓰기조차 불쾌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역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한이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있다고 비판하였으며, 대구 경북 지역에서는 아예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 받기 위해 북측에 무리하게 지원을 하고 있다는 정서도 퍼져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 동안의 반공교육의 틀이 허물어진다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남북화해에 앞서 남남화해가 필요

즉 분단을 하나의 체제(system)로 본다면 남북정상회담이나 이산가족의 상봉은 분명히 체제의 근본을 흔드는 사건이었다. 문제는 김대중 정부가 위로부터 화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회 내에 깔린 냉전의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다는 점이며, 장차 이 화해 노력이 성공하기 위해서도 이 문제를 반드시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혈육의 정을 확인할 수 있었고, 남북한은 보다 쉽게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도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북한 주민들은 50년 동안 다른 신(물신과 공산주의 이념의 신)을 모셔왔기 때문에, 이 점을 서로간에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다.

특히 오늘날 자본주의적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대다수 한국인들에게는 오직 물질적인 잣대로만 북측과 북의 주민들을 바라볼 것이기 때문에, 공동체적 지향을 갖고 있는 북의 주민들에게 이러한 사고는 이해 불가능한 현상일 따름일 것이다.

만남의 감격은 순간이지만 다시 돌아온 삶의 자리의 현실을 냉정하다. 남의 주민들은 북의 성격을 공산주의, 사회주의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방식을 전혀 달리하는 사회로서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 한국전쟁의 경험을 그들이 어떻게 해석하고 있으며, 민족이라는 삶의 단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은 돈으로 다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남한 사회의 자기반성의 문제이다. 새로운 통일교육을 수립함에 있어서 실로 중요한 것은 남한의 자기사회의 반성 능력인 것이다.

남북화해가 사회적으로 내재화된 냉전질서를 청산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구체적으로는 지금까지 한국사회에 통용되어온 동시에 빨갱이에 대한 정치, 사회적 금기의 기원과 성격을 이해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측에서는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을 인도적인 문제라고 강조해 왔으나 그러한 주장은 사태의 일면만을 강조하고 있다. 혈육이 만나는 것은 분명 ’인도적인’ 사업이지만, 그 가족이 50년 전에 헤어지게 된 사실들, 그리고 북과 남의 가족이 다칠까봐 이산가족으로 신고하지도 않은 채 살아야했던 지난 50년의 세월은 결코 ’비인도적인’ 역사만은 아니었다.

남북화해 문제는 우리 사회가 북 주민들과 화해할 준비가 되어있는가의 문제

즉 북측에서 내려온 사람의 상당수는 해방 직후 남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전쟁 발발 전후 북을 선택한 월북자이며, 또 일부는 인민군에 징집되어 북조선 ’인민’이 되었다. 이들 월북자들 때문에 남측의 남은 가족들 대부분은 ’빨갱이 가족’으로 지목받아 일찍이 소설가 김성동이 피울음을 토한 것처럼 "사람들이 침뱉고 발길질하고 죽여도 좋을 빨갱이 새끼"로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아왔다. 더러는 차별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이 땅을 떠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소설가 이문열처럼 자신을 고통에 빠트린 아버지를 원수처럼 생각하거나 원망하면서 살았다.

결국 인민군 입대자 혹은 자진 월북자 가족들은 단지 오랜 세월 사랑하는 혈육을 만나지 못한 인도적인 이유로만 고통받은 것이 아니라, 지난 50년 동안 정치적인 이유로 남에서 ’이등 국민’ 혹은 사실상 ’죽은 목숨’의 신산(辛酸)을 맛보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만남 자체가 중요하다고 상봉의 성격을 단순하게 처리할 수는 없다. 우리는 장차 이들이 남북 어느 쪽이나 자신이 원하는 사회를 선택해서 살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되더라도 심각한 갈등이나 충돌이 발생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남북화해의 정치적.사회적 성격을 직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측의 태도나 북측 주민의 태도변화가 전제되어야 하기는 하지만 남북화해의 문제는 곧 우리 사회가 과연 북측의 주민들과 화해할 준비가 되어있는가의 문제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건강성, 시민의식의 성숙의 문제이다. 냉전의 찌꺼기를 걷어내는 문제와 우리 사회를 민주화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문제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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