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원광대 정치행정언론학부 교수,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 대표)


며칠 전에 끝난 북한 핵문제에 관한 6자 회담이 계속 이어질지 불투명한 모양이다. 북한과 미국 사이의 불신이 워낙 깊고 갈등이 너무 큰 터라 이번 모임은 탐색전으로 간주하고 다음에 또 만나기로 하자는 약속만 잡아도 성공이라는 얘기가 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나돌았었는데,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합의를 보지 못한 데다 북한은 더 이상 만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외교는 본래 비밀스러운 구석이 많은데다 외교관들의 말은 딱 부러지지 않고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아 겉으로 드러난 것만 가지고는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게다가 남한의 수구 언론은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우면 제 입맛에 맞추어 추측 보도하는 경우가 흔하고 특히 북한에 관해서는 악의적으로 편파 왜곡 보도를 일삼고 있기 때문에 거꾸로 해석해야 할 때도 생긴다.

따라서 이 글은 주로 북한과 미국의 언론 보도 및 정부 문서들을 바탕으로 쓰고 있다는 점을 밝힌다. 참고로 북한의 언론 보도문이나 정부 문서들을 국가 보안법에 걸리지 않고 직접 얻으려면 {조선 통신} (www.kcna.co.jp)을, 미국의 주요 신문들을 보려면 {뉴욕 타임즈} (www.nytimes. com), {와싱턴 포스트} (www.washingtonpost.com), {로스엔젤레스 타임즈} (www.latimes.com) 등을, 그리고 미국의 정부 문서들을 찾으려면 백악관 (www.whitehouse.gov), 국무부 (www.state.gov), 국방부 (www.defenselink.mil), 중앙 정보국 (www.cia.gov) 등을 접속하면 된다.
 
예를 들어, 8월 30일자 {동아일보} 사설은 "북한이 일방적으로 6개국의 기조 발언을 공개하고 `미국이 다음 회담의 전망 자체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주장한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야말로 전형적인 편파 왜곡이요 같잖은 충고다. 회담 내용을 비공개로 한다는 원칙을 먼저 위반하며 회담이 깨지길 바라듯 자극적으로 보도한 쪽은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8월 29일 미국의 주요 신문들은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하여 북한 대표가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가지고 있으며 곧 핵실험을 실시할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할 계획이라는 내용의 보도를 한 것이다. 더구나 북한은 회담이 끝난 뒤 기조 발언의 전반적인 내용을 공개했지만, 미국은 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북한 대표의 말 가운데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이라는 조건절을 자르고 뒷 부분만을 공개하지 않았는가.
 
이에 앞서 6자 회담이 순조롭지 못할 것이라는 불길한 조짐은 이미 회담이 시작되기 전부터 미국쪽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8월 27일자 미국 신문들은 북한과의 협상을 주장해온 국무부의 고위 인사가 6자 회담을 앞두고 사표를 낸 사실을 보도하며 이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와싱턴 포스트}는 중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정권 교체나 붕괴가 중국에 오히려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기사를 함께 내보내기도 했다. 여기엔 북한과 중국을 이간질하려는 미국의 음흉한 의도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게 아닐까?
 
아무튼 6자 회담이 다시 열린다고 해도 북한의 배짱과 미국의 오기가 타협을 이루기는 참 어려울 것 같다. 북한은 미국의 위협 때문에 방어 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라며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 정책을 바꾸고 불가침 협정을 맺으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겠다고 주장하는데,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무조건 먼저 포기해야 북한에 대한 체제 보장이나 경제 지원에 관해 얘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주장에는 `우리는 이라크와 다르니 때릴 수 있으면 때려봐라`는 식의 배짱이나 깡다구가 들어 있고, 미국의 주장에는 `너희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는 절대 양보 못한다`는 식의 오기나 억지가 배어 있는 모양새다.
 
한편 북한에게는 핵무기 포기를 강요할 수 있고 미국에게는 유엔에서 거부권으로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중재자 중국은 6자 회담에서 북한의 손을 들어주었다. 미국과 불가침 조약 및 관계 정상화를 이루자는 북한의 요구는 "긍정적이고 건설적이며 정당하고 합리적인 것"이라며, 북한이 주장해오고 미국이 거부해온 북미 직접 대화를 촉구하고, 핵문제와 체제 보장 문제는 동시에 풀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물론 외교적으로 미국에 종속적인 남한과 일본도 북한의 주장에 가깝게 모든 문제를 묶어 동시에 풀어야 한다는 투의 의견을 내놓았다. 북한을 공동으로 압박하기 위한 6자 회담에서 미국이 오히려 왕따를 당한 셈이랄까. 이렇듯 누가 보더라도 북한의 주장이 더 합리적이고 타당성을 지녔지만, 국제 관계에서는 법과 원칙보다 주먹과 돈이 앞서며 미국은 그러한 힘과 의지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는 게 문제다. 실제로 8월 30일 {뉴욕 타임즈}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미국은 경제 봉쇄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이 제 아무리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오기와 억지를 부린다해도, 핵문제는 결국 북한의 주장대로 합리적이고 평화적으로 해결되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긍정적 전망은 미국의 두 가지 안보 전략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첫째, 지금 미국의 국무부차관인 리처드 아미티지와 국방부차관인 폴 월포위츠가 중심이 되어 1999년 전략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개발 중단시키려면 한미일 공조를 주도하고 6자 회담을 추진하여 궁극적으로는 북한과 국교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비록 클린턴 행정부 때의 일이지만 두 사람은 요즘 부쉬 행정부에서 국무부와 국방부의 핵심 실세로서 자신들이 품었던 구상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제안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핵문제는 분명히 북한과 미국 사이의 문제이지만 미국이 굳이 일본을 끌어들여 6자 회담이 이루어지게 한 것은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을 일본에게 떠맡기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한편 일본이 6자 회담 중에 핵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꺼낸 것은 회담을 깨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북한에 돈을 대기 위한 명분을 쌓기 위해서였으리라고 생각한다.
 
둘째, 요즘 흔히 `럼스펠드 구상`이라고 불리는 미국 국방부의 해외 미군 구조 조정 계획은 주한미군과 관련하여 중무장한 육군 부대는 기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병력을 줄이고 잽싸게 이동할 수 있는 신속 기동 부대로 바꾸어야 하며 남한과 일본에 미사일 방어망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미군 탱크 위에 올라가 데모를 한 게 논란이 되었는데, 대부분의 남한 언론은 스트라이커라 불리는 그 탱크 부대가 일시적 군사 훈련을 위해 들어왔다고 보도했지만 나는 그 부대가 주한 미군의 감축 및 재배치 계획에 따라 들어왔다고 믿는다. 따라서 대학생들이 탱크에 올라 미군 물러가라고 데모해도 그들은 후방으로 옮겨 신속 기동 부대를 만들고, 동두천 시민들이 중고등학생들까지 동원하여 미군들에게 떠나지마라고 애원해도 그들은 떠나지 않겠는가.

핵문제를 완전히 풀기 위해서는 북한과 불가침 협정을 맺고 외교를 정상화해야 할텐데, 그러면 주한 미군 감축이나 재배치를 통해 역할을 바꾸든지 점진적으로 철수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 준비를 하는 게 아니겠느냐는 뜻이다. 한편 주한미군이 남한에 패트리엇 미사일을 더 들여오겠다고 밝히고, 일본도 6자 회담이 끝나자마자 앞으로 12억 달러를 들여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듯이, 미사일 방어망 계획은 착착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러한 미국의 안보 전략을 바탕으로 북한 핵문제가 평화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되리라고 전망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고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따라서 적어도 다음 두 가지를 유념하는 게 바람직하다.

첫째, 미국이 중국을 끌어들여 북한에 경제 제재를 가하거나 북한을 폭격할 가능성도 물론 있다. 1%의 가능성이라도 실현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그런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게 우리의 몫이다.

둘째, 99%의 가능성도 실현되지 않을 수 있으며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국무부에서나 국방부에서나, 언제든 무슨 쟁점으로든,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 갈등이 있어왔기 때문에 이에 따라 정책이 바뀔 수 있을 것이며, 어느 쪽에서든 무슨 돌발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또한 어디에서든 기본적인 권리조차도 그냥 주어지지 않고 지속적인 요구와 투쟁에 의해 얻어지듯이, 미국에서 협상을 선호하는 온건파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여론을 만들고, 강경파가 오만한 패권 전략을 바꾸도록 끊임없이 압력을 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남이랑북이랑`(http://www.pbpm.org) 9월호에 게재된 것을 다시 실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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