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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corea 되찾기 운동에 참가하자 - 민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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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3.08.27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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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우(통일연대 사무처장)


2002년 붉은 악마가 월드컵 과정에서 corea 영문 국호를 대중화시킨 이래 corea 영문 국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 포탈업체 daum(http://www.daum.net) 등에서 조사한 여론 조사에서는 corea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북의 연구 성과 또한 다양한 행사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본 글에서는 corea 되찾기의 운동적 의의에 대해 지적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여러 자료를 검토해 본 결과 일제가 영문 국호를 조작했다는 증거가 뚜렷하다고 생각한다. corea 되찾기의 실증적인 연구 성과, 즉 일제가 조작한 근거에 대해서는 통일연대 홈페이지(http://www.615tongil.org), unews(http://www.unews.co.kr) 등에 실린 자료를 참고하기 바란다.

1. 일제 잔재 청산, 동북아시아 질서 재편의 관점에서

1) 남측에서 일제 과거청산 운동이 대중적인 차원에서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이다. 일제 과거 청산운동 또한 1987년 6월항쟁의 흐름을 타고 형성되기 시작한 민족적 자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반미 자주화, 연북 민족대단결 운동이 2000년 6.15 선언을 전후하여 새로운 발전과 도약의 국면으로 접어 든 반면 일제 과거청산 운동은 일련의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듯 하다. 일제 과거청산 운동은 90년대 중반 이후 발전적으로 계승되기보다는 일시적으로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정부 당국의 관제 개량화 정책이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김영삼 정부는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이름 아래 일제 식민 정책을 호도하는 대대적인 관제 행사를 진행한 바 있다. 98년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이른바 新 한일관계 또한 점차 강화되고 있는 일본 군국주의화 경향에 면죄부를 준 어설픈 선린 외교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이 연장선하에서 노무현 정부는 현충일을 택해 일본을 방문하고 일본 국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방일한 시점에 유사법제를 통과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둘째는 90년대 중반 문민개량화 정책과 반외세 노선의 약화를 배경으로 일제 문화가 은연중에 유포된 영향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민족, 국가 따위의 가치를 부정, 상대화하는 경향이 강화되는 가운데 일제 과거사 청산 운동이 새로운 동력과 활력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정신대, 태평양 전쟁 희생자, 문화재 반환 따위의 절실한 민족적 현안 과제가 마치도 진부한 운동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청년 세대가 반미에 대해서는 예민하면서도 반일 문제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것은 이러한 사정의 반영이다. 그러나 이는 1990년대 후반 새로이 촉발되기 시작한 진취적인 민족운동이 일본 문제로까지 영역을 확대하지 못한 일시적인 한계로 보인다. 향후 예상되는 정세 변화 국면은 일제 과거청산 운동을 새로운 환경에서 벌여 나갈 수 있는 강력한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향후 일제 과거청산 운동은, 첫째 일제 군국주의를 저지하는 운동과 밀접히 결합되어야 하며, 둘째 남북을 포괄하는 전민족적인 운동으로 발전해야 하고, 셋째 여전히 강력히 뿌리박고 있는 친일 보수 인맥을 청산하는 운동과 결합되어야 하고, 넷째 젊은 층의 새로운 정서와 취향에 맞게 진행되어야 한다.

일제 과거청산 운동은 정신대 문제, 태평양 전쟁 희생자 문제, 문화재 반환 문제, 친일 인사.문화.역사의 청산 작업을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개폐하는 운동으로 발전시킴과 동시에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일본 군국주의, 독도 영유권 문제, 동해 표기 문제, 조총련계 동포에 대한 테러 위협의 문제 등과 결합되어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될 것이다. corea 되찾기 운동은 전반적인 일제 과거사 청산 운동과 밀접히 연관된 현안이라 할 수 있다.

2) 향후 동북아시아 질서 재편 과정에서 중요한 접점은 북일 수교 문제이다. 북일 수교가 향후 동북아시아 질서 재편에 핵심적인 논점의 하나가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의 대북 포위망의 핵심적인 접점이 북일 수교의 실현 여부이다. 미국의 대북 포위망은 한미일 공조에 기초한 대북 압박이다. 이 가운데 남의 경우 6.15 공동선언 이래 미국의 대북 포위 전선에서 서서히 빠져 나오고 있다. 남측내에서 외세 공조냐 민족 공조냐 하는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는 남측내의 의식 지형은 이미 민족 공조의 방향으로 접어들었다고 판단한다. 반면 북미 공방이 가열되면서 오히려 위협성과 공격성을 더해가고 있는 것이 일본의 대북 적대정책이다. 최근 일본 내부를 뒤흔들고 있는 납치 문제는 인권 문제를 뛰어 넘어 미국이 정점이 된 대북 압박 정책을 일본이 대리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8월27일 북경 6자회담에서 일본이 납치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것은 북미 공방을 둘러 싼 첨예한 정치적 공방과 납치 문제를 빌미로 한 일본의 대북 공세가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는 북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을 빌미로 하여 일본의 군국주의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은 일종의 핑계이다. 일본 우익 세력은 북을 상대로 군국주의 선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 군국주의화의 절호의 정치사회적 환경은 북일 적대관계이고 역으로 일본 군국주의화를 저지하는 유력한 조건은 북일 적대 관계의 청산 즉 북일 수교이다. 일본의 시민사회운동이 심각하게 약화된 조건에서 향후 일본 군국주의의 향배는 미국의 대일본 정책과 북일 수교가 될 것이다.

셋째는 북일 수교 이후 전개될 동북아시아 경제협력의 향방이다. 북미 공방이 마무리되는 시점과 연동하여 동북아시아 개발은행의 설립, 동북아시아 에너지 협력 등 대규모 협력 사업이 진행될 것이다. 북일간 적대 관계가 지속되면 이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반면 북일 수교가 이루어지면 100억불 이상의 일본 자금이 북으로 유입되고 남북 경제협력과 동북아시아를 연결하는 대규모 협력 사업이 본격화될 것이다.

가령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도로 연결이나 이르쿠츠크의 가스를 개발하는 에너지 협력 구상 등이 그것이다. 이는 동북아시아에 공고한 평화체제가 수립되어야 가능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일단 형성된 평화체제를 보다 공고히 하는 효과가 있다. 일본 군국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북 위협론을 빌미로 군사화를 추진하는 매파를 견제하고 일본 독점자본을 유라시아 경제협력 구상으로 끌어들여 군사화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향후 전개될 북일 수교는 동북아시아 질서 재편의 중요한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민족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북일 수교 과정에서, 첫째 일제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 배상을 받아내야 하고, 둘째 이와 연동하여 남측내의 일본 과거사 청산 운동을 새롭게 발전시키는 전기로 삼아야 하며, 셋째 미일 군사동맹 체제를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세 번째 측면과 관련해 보완하도록 하자.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의 두드러진 차이의 하나는 부시 행정부의 외교라인이 친일파로 짜여진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상대적으로 중국에 대해 유화적이었다면 부시 행정부는 노골적인 친일파이다. 부시 행정부의 외교 라인은 체니, 럼스펠드 등의 신보수주의가 하나라면 콜린 파월, 아미티지 등 온건파가 다른 하나이다. 이 중 미일 동맹을 미영 동맹으로 발전시킬 것을 요구하며 일본의 군국주의를 노골적으로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미티지를 중심으로 하는 온건파이다.

현재 이들이 8월의 2차 북경회담을 주도하고 있고 작년 9월 북일 정상회담을 배후 조정했다. 이들의 구상은 2차 북경회담에서 북미 제네바합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북미 합의를 유도하는 한편 미일 동맹을 발전시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의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존속.강화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본다면 신보수주의자들도 문제이지만 파월, 아미티지로 이어지는 이른바 온건파도 경계의 대상인 것이다.

럼스펠드가 중심이 된 미군 재배치 계획 또한 주목의 대상이다. 과거의 한미일 군사동맹이 미국을 정점으로 미일, 한미 군사동맹을 이원적으로 연결하는 구조에 한국과 일본에 중무장한 보병 부대를 주둔시키는 형태로 짜여져 있었다면 향후 미국의 동북아정책은 한국에 대해서는 주한 미 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하거나 지상군을 철수시키는 대신 미 본토에 주둔하고 있는 경무장한 신속기동군을 수용할 수 있는 태세를 요구하는 한편 일본의 무장화를 부추겨 미일 동맹의 행동 반경을 태평양 전역 또는 세계적 규모로 확대하는 형태로 구사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향후 미일 동맹의 군사화가 중요한 타켓이다.

이전 시기 미국의 군사적 지배를 약화시키는 주요 타켓이 주한미군이었다면 향후에는, 첫째 주한 미 지상군의 철수보다는 주한 미 지상군을 철수시키는 대신 신속기동여단의 수용 태세를 요구하는 미국의 군사적 지배까지를 뿌리째 도려내는 방향에서, 둘째 미일 군사동맹을 공격하는 방향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위의 견지에서 본다면 일본 군국주의화에 대한 공격은 대단히 시급한 과제이다.

2. 6.15 공동선언 이행의 견지에서

1) 6.15 공동선언을 이행한다는 것은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점을 인정한"(6.15 선언 2항) 통일기구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통일기구는 대부분의 국가 권한을 남북이 각기 갖고 상징적인 국가 권한을 제한적으로 갖는 정부라기보다는 기구 정도의 위상을 가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남북이 평화공존하고 교류협력하되 "남북이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91년 합의서, 이하 민족내부의 특수관계)임을 확인하는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 이 법적 조치의 높은 형태는 위 기구에 비록 정부로서의 권한은 없을지라도 7천만 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부여하면 된다. 이 경우 국호, 국기, 국가 등이 쟁점이 될 것이다. 법적 조치의 낮은 형태는 UN 의석을 단일화하는 것이다.

6.15 공동선언의 이행 과정에서 남북이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임을 확인하는 법적 조치가 취해지면 민족적 자주권이 비약적으로 신장될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본다면 다음과 같다.

①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쌀값 안정을 위해 남측의 남아도는 쌀을 북에 보내야 한다. 300만석을 북에 보내 쌀 값 안정을 도모하자는 농민들의 주장은 남북 모두에게 유리한 민족적 요구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남북이 두 개의 국가로 존재하는 조건에서 남이 북에 쌀을 주게 되면 이것은 일종의 무역이다. 반면 형식적으로라도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임을 확인하는 법적 조치를 취한 뒤에 북에 쌀을 제공하면 이것은 반출이다. 전자의 상태에서 남이 북에 쌀을 제공할 경우 남은 국제 질서의 저촉을 받게 된다. 반면 후자의 상태라면 국제법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고 치자. 이런 조건에서 6.15 선언이 발전하여 통일기구가 출현하면 이 기구가 한국-칠레간 자유무역협정의 승계 여부를 재논의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수출과 해외 자본 중심의 반민족적인 논리와 정치 세력 대신에 민족적 가치를 중시하는 정치 세력이 존재하면 위 협정을 민족적 이익에 맞게 재조정할 수 있다.

② 일제 과거 청산의 관점에서는 다음과 같다. 1965년 6월 한일 기본조약에서 한국 정부는 일제의 침략 만행에 대한 사죄를 명백히 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정신대, 태평양 전쟁 희생자 등의 보상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1995년경에 김원웅 의원 등은 북일 수교가 이루어지면 한일 기본조약을 개폐할 것을 제기한 바 있다. 한일 기본조약과 북일 수교는 남북이 두 개의 국가인 상태에서 병존할 수 있다. 그러나 남북이 하나의 통일기구로 통일된다면 이 기구와 일본과의 관계를 재조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남북은 힘을 합해 일제의 과거사 청산을 강력히 요구할 수 있다.

남북이 통일되는 과정에서 민족 자주권이 신장된다고 하는 의미는 위와 같다. 이러한 정도는 통일정부가 아니라 통일기구 정도가 들어서도 가시적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2) 6.15 선언을 이행하는 기구의 출현은 아마도 남북의 정부간 합의로 이루어지거나 여기에 정당.단체 등이 결합하는 연석회의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민간 차원에서 6.15 공동선언을 이행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외세의 개입을 차단하고 반민족적인 정치 세력을 제거하는 운동은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운동이라기보다는 그 걸림돌을 제거하는 운동이다. 6.15 공동선언을 이행한다는 의미는 "우리 민족끼리"(6.15 1항)라는 이념을 대중화하는 것이다. 민족 공조의 이념을 대중화하는 구체적인 형태는 남북이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라는 사실을 7천만 민족이 깊이 자각하는 것이다.

대구U대회에 북측 선수단이 참가하고 이를 환영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민족 공조 운동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형태의 운동은 남북이 아니라 한일, 한미간에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 상호 친선과 우애를 도모하는 관계에서도 해야할 과제이다.

민족 공조 운동이란 이를 뛰어 넘어 남북이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임을 확인하는 대중적 의식과 지향을 표출하는 것이다.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때 남북이 태극기와 인공기가 아니라 단일기를 앞세우고 행진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이산가족간의 만남에서, 남북의 민간급 교류에서 우리는 일반적인 친선과 우애 이상의 무엇을 확인한다. 이것은 남북이 제도와 사상이 다를지언정 하나의 민족이기 때문이고 하나의 국가, 정부아래에서 함께 협력하고 단결해야 할 민족공동체이기 때문이다.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운동은 이러한 자각을 대중적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각종 민간 행사에서 단일기를 펄럭이고 아리랑을 함께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일기나 아리랑은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민족임을 확인하는 일종의 상징적인 장치이다. 이것은 통일조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변할 수 있다.

반면 corea는 이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corea는 13세기 이래 우리 민족을 지칭해 온 유서깊은 겨레의 외래어 표기이고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바나 지향에 있어 통일국호로 손색이 없다. 따라서 일제가 조작한 영문 표기, corea를 되찾고 이를 대중적으로 확산하는 운동은 가장 강력한 6.15 선언 이행 운동이다.

3) 6.15 공동선언의 관점에서 남측의 정치 세력은 세 단위로 구분할 수 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우익세력은 6.15 선언 자체를 반대하는 반민족적인 정치 세력이다. 이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는 대한민국이고 북은 정부를 참칭한 반국가단체이므로 북과의 정치협상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 이들을 고립시키는 것은 통일운동에서 당면한 주요 과제의 하나이다.

두 번째 세력은 이른바 화해협력을 중심으로 남북관계를 사고하는 정치 세력이다. 이들은 통일보다는 평화를 선호하고 외세공조와 민족공조가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요 관심사는 남북이 평화공존하고 교류협력하는 것이므로 이들은 남북관계를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적극적인 지향과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사고의 연장선하에서는 남북간의 법적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이든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이든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필자가 보기에 통일과 평화를 사랑하는 다수의 국민 대중이 대체로 이러한 생각에 동의한다.

세 번째 세력은 남북간의 관계를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로 확정하려는 정치 세력 즉 자주통일 세력이다.

7.4 공동성명, 91년 합의서, 6.15 선언의 근본 입장은 남북을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대체로 두 번째 입장이 우세하다.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통일운동의 미약으로 대중들이 두 번째와 세 번째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세 번째를 지향하는 정치 세력이 출현하지 못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대중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이회창과 노무현을 가르는 계선 이외에 또 다른 계선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구분이 부각될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편입될 소지가 농후하다.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반북대결 정책과 분단관리정책 사이에서 탄력적으로 조정되고 있다. 군사분계선이 일시적으로 조성된 분단선이 아니라 국경을 가르는 국경선으로 되어 남북이 두 개의 국가로 규정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그 계선을 타고 치밀하게 작동할 것이다.

미국의 신보수주의와 한나라당이 한쌍이라면 콜린 파월, 아미티지로 이어지는 온건파(콜린 파월은 91년 북미 공방시 합참의장이었고 아미티지는 미일 동맹의 군사화를 추진하는 대표 주자이다. 이들을 온건파로 지칭하는 것은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와 쌍을 이루는 것은 노무현 정부이다. 두 세력 모두 통일과 자주의 입장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둘째는, 대중운동의 본성과 관련이 있다. 사람들이 6.15 선언에 환호했던 것은 6.15 공동선언의 문구가 아니라 남북이 화해하고 협력하는 현상 그 자체이다. 6.15 선언의 고도로 추상화된 정치적인 문구는 통일운동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사람들에게만 이해될 것이다. 이것은 대중을 낮추어 보는 것이 아니다. 대중 운동의 본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운동은 복잡한 문구와 논리 이전에 간명하고 정서적인 공감대를 중시한다.

이렇게 보면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과정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을 체현한 정치 세력이 등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 공조의 이념을 간명하게 집약한 대중운동이 전개되는 것이다.

후자의 견지에서 필자는 corea 되찾기 운동을 제창한다. 우리는 이미 각종 국제대회와 민간행사 등에서 단일기와 아리랑을 사용해 왔다. 이것은 91년 4월 41차 탁구 선수권대회 이래 면면히 이어져 온 남북간의 약속이다. 향후에는 여기에 더해 korea를 corea로 바꾸어 함께 하자.

3. 대중운동, 사상문화운동의 견지에서

2002년 한국 대중운동은 참으로 위대한 일을 해냈다. 부시의 `악의 축` 발언에 분노한 한국 민중의 반미 운동은 동계 올림픽, F-15K 전투기 반대 운동을 타고 2002년말 광화문을 뒤덮는 장엄한 촛불 행진으로 이어졌다.

6월 월드컵 광장에는 수백만의 대중이 거리를 휩쓸었다. 이 광장에서 한국 민중은 참으로 절도있고 질서 정연한 자세로 전 세계의 경탄을 자아냈다. 한국 현대사를 질곡했던 패배주의를 씻어 내고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새로운 문화와 정서를 유감없이 표출했다. 이 광장을 기억해 보라. 붉은 악마는 이탈리아와의 대결에서 "again 1966"을 펼쳐 보였고, 對 미국전에서 동점골을 기록한 안정환은 김동성의 잃어버린 금메달을 상기하는 골 세레모니를 보여 주었다.

월드컵의 열기는 광화문 촛불시위, 이회창 낙선과 동일한 사상 감정, 동일한 대중 정서의 반영이다. 이 광장에서 자연스럽게 집약되었던 상징적인 국호가 corea이다.

대중운동은 두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조직화된 대중이 질서 정연하게 표출하는 목적의식적인 운동이다. 2003년 8.15에 종로에 모인 수만의 대중이 외쳤던 반전평화운동이나 신자유주의를 반대해 싸우는 민주노총, 전농의 운동의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상대적으로 무정형의 대중이 집단적으로 표출하는 강렬한 지향과 정서이다. 대중운동은 이 두 가지 형태가 결합되어야 한다. 전자를 강화하되 후자의 지향과 정서를 기민하게 포착하고 확대.강화해야 한다.

87년 6월항쟁 당시 거리 시위에 참가했던 인원은 연 500만명 정도이다. 그러나 6월항쟁의 동력을 거리 시위에 참가했던 500만의 대중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시 한국 민중은 독재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이 무형의 대중적 지지를 등에 업고 청년학생을 선두로 한 조직화된 운동 대오가 싸웠던 거리의 시위가 6월항쟁의 조직적 측면이다. 조직화된 군중이 거리에서 전경에 맞서 싸웠다면 상대적으로 무형의 대중은 클랙션을 울리고 아파트 전등을 소등하고, 전경에 붙잡힌 학생을 구출하고 지친 학생들에게 물수건을 던져주며 6월항쟁의 폭과 깊이를 넓혔다. 이 양자의 결합이 6월의 위대한 승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한국의 청년 대중은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자신의 지향과 정서를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 지향과 정서는 조만간 태풍이 되어 한국 사회를 뿌리로부터 변화시킬 것이다. 이 거대한 물결을 반미반전, 反신자유주의를 위해 싸우는 조직화된 대중운동과 결합하자.

보론

1) corea 되찾기 운동의 강력한 동인과 배경은 일제의 개입 여부이다. 이와 관련하여 실증적인 연구와 학습을 해보기를 강력히 권고한다.

지금이라도 영한사전을 뒤져 보라. ko로 시작되는 순수한 영어 단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남부 유럽권에서는 c로 쓰고 영어권에서는 k로 썼던 것이 아니라 영어권에서도 기본적으로 c였다. 영어의 관점에서도 ko는 지극히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영한사전을 뒤져보기 바란다.

2) 최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북에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단일팀의 명칭을 corea로 할 것을 고려하고 있는 듯 하다.

3) 현재 자주통일운동의 기본 전선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전쟁과 평화를 가르는 선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체제 수립 이후에 평화공존과 통일지향적인 남북관계를 가르는 선이다. 전자의 계선이 주는 영향이 압도적이지만 후자의 전선을 의미있게 고려해야 한다. 평화공존이란 미국의 분단관리, 분단합법화 정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자주통일진영은 전자를 기본선으로 하되 여기에 후자의 기본선을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결합시켜야 한다. 그래야 전선이 생동감있고 발전적으로 구축될 수 있다.

후자의 전선과 관련하여 중요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평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의 동북아시아에서의 군사적 패권을 어느 수준에서 제어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주한미군의 지위와 함께 미일 동맹의 문제가 중요한 쟁점이다. 둘째는 통일의 관점에서 본다면 6.15 공동선언의 실질적인 이행 여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corea 되찾기 운동은 유력한 대중운동이다. 셋째는 자주통일운동이 현재 심화되고 있는 서민 대중의 생존권과 민족 경제의 미래와 어떻게 적극적으로 결합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자주통일운동이 지사적(志士的) 운동이 될 것인가(이것은 나쁜 의미이다) 아니면 무지렁이 대중까지를 포괄하는 참다운 대중운동이 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넷째는 6.15 공동선언을 이행할 민족자주, 진보 운동 대오를 구축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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