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모 (서울 영일고등학교 교사)


나는 텔레비전을 볼 때면 바보상자를 바보같이 보고 있으면 안될 것 같아 기왕이면 재미도 있고 공부도 되는 유익한(?) 퀴즈 프로나 사극을 즐겨 보는 편이다.

그런데 퀴즈 프로를 볼 때면 즐겁고 흥미진진하게 보다가도 끝 무렵이 되면 은근히 화가 치밀고 억울한 생각이 든다. 퀴즈 프로가 흥미로운 것은 도전자가 성공할 때 받는 엄청난 돈 때문일 터인데 그 엄청난 액수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내 연봉만큼(아니 그보다도 많은 돈)을 퀴즈 한번 잘 풀면 받아갈 수 있다니! 이게 말이 되냐?"
"그렇게 억울하면 당신도 나가지 그래! 저것도 실력이고 평소에 노력한 결과잖아!"
아내의 말이다. 그러나 명색이 수학선생인데 일방적으로 질 수는 없는 일.
"수학문제만 나오면 내가 다 맞힐텐데 말이야!"

이런 대화가 오고 가는 속에서 대부분의 도전자는 실패를 하게 되고, 나는 그나마 다행이라며 남의 불행을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내 불만은 결코 돈의 액수 때문만은 아니다. 
`과연 이 퀴즈에 나오는 문제는 정당한가? 수학만 나올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분야의 지식을 골고루 묻고 있는가? 그들이 묻고 있는 지식은 올바른 것인가?` 되묻게 된다. 여기에 내 불만의 또 다른 이유가 놓여 있다.

퀴즈 프로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묻는다.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내용도 있고 시사나 의학분야 관련 문제도 있다. 법, 음악· 미술분야, 가끔은 수학문제도 있다. 어차피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인 문제를 적당히 선택해서 낼 것이다. (너무 어려우면 시청률이 떨어질 테니까!)

그렇다면 노동에 필요한 지식도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의학이나 법 지식이 우리가 알아야 할 지식이라면 집 지을 때 필요한 지식, 가전기기를 고치는 데 필요한 지식, 농사짓고 고기 잡는데 필요한 지식들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분명 어떤 퀴즈 프로의 문제도 이런 지식은 묻지 않는다. 결코 균형 잡혀 있지 않다. 우리가 민중이라 부르는 이 땅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에게는 이 퀴즈 프로는 그저 구경거리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결코 자신이 사는 모습과는 다른, 지식을 위한 지식만으로 구성된 문항들을 끝까지 풀어 낼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공부를 게을리 해서가 아니다. 지식 자체가 편향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개념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의학문제나 법학문제가 나온다면 당연히 토목문제도 나오고 농사문제도 나와야 하는 것이다.

결국 내 불만은, 어떤 이들은 큰 노력 없이(?) 많은 돈을 차지할 수 있지만 어떤 이들은 결코 그 돈을 차지할 수 없는 `불공평한 게임법칙`을 가진 `불공평한 사회`와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데도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학교와 사회에서 `지식`은 `노동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며 노동과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아니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불온한 `노동자`가 아니라 열심히 일 하는 `근로자`가 되도록 교육되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알아서는 안 될 지식과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분야는 `노동`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통일`이나 `북한`에 대한 올바른 정보, 그리고 `미국의 본질`에 대한 정보에 대해서는 알 필요도 없으며 알아서도 안 되도록 강요받아 왔던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 민중들은 그러한 거짓과 굴종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왔던 것일까? 그것은 친일반역자들이 처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을 대신하여 우리 민족을 통치한 미군들에 의해 우리 민족이 두 동강이 났기 때문이다.

1986년 신한민주당 유성환 의원은 우리나라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너무나도 당연한 말의 대가는 구속이었다.

1970년 11월 3일에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를 하면서 몸을 불살라야만 했다. 노동자의 작은 권리를 말하는 것조차도 빨갱이로 처단 당하고 국가보안법으로 끌려가야만 했으며 죽음으로서 호소해야만 했다.

우리 사회가 가진 모순들은, 분단을 이용한 지배자들에 의해서 해결되지 않고서도 58년을 버텨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조차도 느끼지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요즘 세상이 변했다고들 한다. 이제 통일은 누구도 거역하지 못할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안기부에서 이름만 바꾼 국정원이 존재한다. 어느 교과서에도 통일이 되면 무엇이 좋은 지, 통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가르쳐 주지 않고 있다. 미선이·효순이를 깔아 죽인 미군이 무죄를 받아도 우리는 여전히 미국을 고마워 해야하며 전쟁은 반대해도 결코 미국은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난리치는 자들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

물론, 세상은 민중들의 투쟁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얼마 전 `수지 김 간첩 조작사건` - 1987년 윤태식이 자신의 아내를 죽인 것을 감추기 위해 아내가 자신을 북송하려 했다고 거짓 신고했고, 전두환 정권 하에서 안기부는 그 사실을 알고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에 대한 국면전환을 위하여 `북한 공작원 수지 김에 의한 홍콩교민 납북미수사건`으로 발표했다 - 에 대해 국가는 그 유족들에게 42억 원을 손해배상 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 판결을 보면서 아쉬움을 느낀다. 진정 잘못을 뉘우치고 죄 값을 치러야 할 전두환과 그의 사주를 받은 안기부 직원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데, 왜 국민들의 혈세로 42억 원을 배상해야 하는가? 그들을 감옥에 보내고 그들이 배상하게 하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할 일이 너무 많다.
"불공평한 사회"를 "공평한 사회"로 만들어 내야 한다.
우리가 빼앗겼던 지식을, 정보를, 알 권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 역사를 분단과 피로 얼룩지게한 자들이 죄 값을 치를 수 있도록 해야한다.
미선이·효순이를 깔아 죽인 주한미군이 한국법정에 서지 않아도 되는 소파(SOFA)는 개정되어야 한다.

나는 이 일이 조국을 통일함으로서만 완성되리라 믿는다.
해방이후 58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렇게 `불공평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분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나라를 `공평한 사회`로 만들어 내는 일은 `조국통일`을 이루어 내는 일과 하나인 셈이다.

이제, 통일의 그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보라!)
"공평한 사회", "통일된 조국"을 그려보며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쳐본다.
 
"6·15 정신 계승하여,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을 통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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