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정(서울 도봉중학교 교사)


작년 겨울 전교조 북부지회 참실대회에서 통일 관련 강의가 있었다. 그것을 계기로 만들어진 전교조 북부지회 교사통일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박세길 선생님, 강정구 선생님 등 몇 분의 강연을 듣고 교사모임 선생님들과 한 두 차례 토론 모임을 하였다.

통일 문제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고민해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늘 마음 한 구석에는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 문제가 분단과 통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항상 미루어 두었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역사와 사회교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교직생활 10년이 넘는 교사로서 볼 때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교사통일모임을 시작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애매한 태도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해방 이후 남북 관계에 대한 강연을 들으면서 교사로서의 부족함에 앞서 분단 사회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우리 사회 분단 문제에 무관심했는가를 스스로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것은 1994년도에 내가 사는 이 땅이 전쟁직전의 위기 상황에 처했었다는 사실을 강연을 통해서 비로소 처음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이었다. 그 해는 내가 둘째 아이를 출산했던 해라 개인적으로는 뚜렷한 기억이 남아있는 해여서 더욱 그렇다.
 
TV 화면에 너무도 생생히 나왔던 이라크 전쟁의 모습들이 아슬아슬하게 우리를 비켜간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찔하다. 94년도 언제쯤엔가 일순간에 나는 갓난 핏덩이를 품에 안고 어느 미사일 세례에 무참히 깔려버렸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어찌하여 그동안 우리는 자신의 존망과 직결되는 일들에 대해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었던가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나름대로 격동의 80년대 한가운데를 지나온 소위 `386세대`의 일원이라 할 수 있다. 독재에 저항하고 민주주의와 사회진보를 꿈꾸며 외쳤던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가장 절박한 문제인 분단과 통일에 대해 눈감고 있으며, 그로 인해 우리가 전쟁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면 그 얼마나 한심하고 또 비극적인 일인가?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그동안 내 안에 분단과 통일 문제에 눈감도록 했던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빨갱이`가 가장 심한 욕이었던 시대, 북한에 대해 입에 담는 것은 가장 무서운 형벌을 각오해야 했던 금기의 시대를 청년기로 보내야 했던 내게는 너무도 뿌리깊은 `반북의식`과 너무도 뿌리깊은 `친미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해야 하며 또 그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역사 선생님`의 머릿속에는 가장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사고가 이식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깨져 나가는 것이 아니다. 수 십 년의 투쟁과 수 만 명의 희생 위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신념이 형성된 것처럼 의식적인 노력과 자각 속에서, 또 오랜 투쟁에 의해서만 비과학적인 반북의식과 무조건적인 친미의식이 깨져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나와는 달리 이런 의식적인 노력을 앞서 했던 많은 사람들, 많은 교사들이 있다. 그들 덕에 오늘 우리 통일운동의 지평은 나의 청년기와 비교하면 엄청난 진전을 이루어 내고 있다. 종교, 사회단체, 노조 등을 통해 해마다 확대되는 민간차원의 남북 교류 사업들이 그렇고, 미국에 대해 당당하게 비판할 줄 아는 수 만 개의 촛불들이 그렇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야 시작된 교사통일모임도 통일 운동의 지평을 넓히는 작은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아주 소박하게 시작하고 있다. 누군가 잘 정리된 이론과 길을 제시해 주는 이 없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궁금증과 문제의식들을 꺼내 놓으며 조금씩 생각들을 키워나가고 있다. 교사통일모임은 분단된 한반도에 사는 당사자로서, 그리고 분단된 조국에 살아야만 하는 아이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 고민하고 토론한다.

이라크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그 전쟁과 우리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매스컴에서 떠드는 `북핵문제`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와 우리 자신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이런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1950년 6월 25일 아무 것도 모른 채 전쟁에 휘말려 고통 당해야 했던 우리 전 세대의 불행이 우리의 불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말해 주기 위해 눈을 크게 뜬다.
 
미국을 이해하려면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하듯이 북한을 이해하려면 북한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단순한 진리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이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들이 너무도 많다. 전교조의 반전평화수업에 대해 거품 물고 달려드는 수구세력들의 악다구니가 그렇고,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국보법이 그렇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70% 이상이 `햇볕 정책`을 지지한다는 여론 조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대세다. 교사통일모임을 하면서 그동안 미뤄두었던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통일문제를 고민한다`는 생각에서 올해에는 `통일 사랑반`이라는 특별활동반을 만들어 한 학기 동안 운영해 보았다.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올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들어와서 진지하게 활동에 참여하였다.

며칠전 브루스 커밍스라는 사람이 `미국에서 부시가 재선되면 한반도에 전쟁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우리 한반도의 운명이 한반도에 사는 우리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다 건너 미국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리는 게 아직도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바꾸는 힘은 오로지 나와 우리 아이들이 분단극복과 평화통일을 추상적인 교과서의 문구가 아니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나오지 않을까?
 
우리 교사통일모임의 선생님들은 모임의 활동을 통해 그 힘을 현실의 힘으로 만들기 위해 이 뜨거운 여름방학에도 노력하고 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