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우(통일연대 사무처장)


미국의 입장은 先 핵포기에 기초한 5자 회담이다.

先 핵포기란 사실상 북의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고 5자회담이란 미국의 입장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큰 러시아를 배제한 반면 북의 핵 포기 이후 경제적 부담을 한국과 일본에 떠넘기기 위한 수단이다.

미국의 선 핵포기-5자회담 구상은 이를 강제하기 위한 대북 압박과 연관되어 있다.

미국은 이를 위해 5월에서 6월에 이르는 시기 한미일간의 연쇄적인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동의를 이끌어 내었고 일본은 그 선봉대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는 한편 마약.인권.무기 수출 등을 거론하며 북 체제 흔들기에 나섰다.

이와 별도로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구상 등 북을 압박하기 위한 국제규범을 제정하는 노력에 착수했다.

이의 연장선하에서 미국이 추진했던 것은 일본을 통한 대북 압박과 UN 안보리 의장 성명 채택, 경수로 중단 등이었다.

일본을 통한 대북 압박은 일정하게 관철되었다. 일본 정부의 만경봉호 입항 거부, 수양산호 접안 거부, 조총련계 기업에 대한 면세 거부 등의 조치가 그것이다.
반면 UN 안보리 의장성명을 채택하려던 미국의 노력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에 의해 좌절되었다.

또한 7.2 한미일 차관보급 회의에서는 한미일간 입장 차이가 노정되었다. 미국이 선 핵포기 입장을 굽히지 않고 경수로 중단을 요구한 반면 한국 정부는 5자회담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도 동시행동 원칙-일괄타결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경수로 중단 요구에 대해 이견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4.23 북경회담에서 북의 제안에 대한 거부 입장을 밝힌 이후 성공적으로 진행되던 미국의 대북포위망에 균열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선 핵포기-5자회담 구상은 대북 포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힘의 논리에 기초한 정책이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 포위망이 위력을 발하지 못하게 되면 이 구상은 현실성을 잃게 된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양상은 미국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다.

첫째. 일본 등을 동원한 대북 제재 움직임, 인권.마약.무기 수출 등을 거론하며 진행되고 있는 북 체제 흔들기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북 체제의 내구력은 이런 정도의 대북 압박으로는 동요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시간이 흐를수록 북의 핵 능력이 제고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 사태의 핵심 포인트의 하나는 시간이 누구의 편인가이다. 북이 가지고 있는 협상 카드는 1~2개의 핵무기 또는 핵 능력이다.

8천개의 폐연료봉의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의 확보 등 시간이 흐를수록 북의 협상력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시간 또한 미국의 편이 아니다.

세째. 주변 열강의 태도가 미국의 주장과 벗어나고 있다. 미국이 선호하는 대화의 틀은 주변 열강이 합세하여 북의 핵 포기를 강력히 촉구하는 다자틀이다.

그러나 현재는 일본을 제외하고는 한국, 중러 등이 핵 포기와 체제 보장의 맞교환, 동시행동 조치 등을 주장하며 미국의 주장과 거리를 두고 있다.

넷째는 점차 악화되고 있는 이라크 사태이다. 현재 이라크에는 15만 내외의 미군이 주둔해 있다.

미국이 안정적인 친미 정권을 수립하고 이라크에서 발을 빼는 상황은 이미 지나갔고 자칫하면 제 2의 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라크 사태의 악화는 부시 행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을 일종의 뇌관이다. 

이런 상태라면 미국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2002년 하반기 UN 안보리를 통한 이라크 침공 노력이 좌절되자 영국.스페인 등과 함께 단독 공격에 나섰던 것과 같은 무리수를 동원해야 한다.

가령 일본.호주 등을 동원하여 보다 강도높은 물리적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아니면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나오는 것이다. 현재 양상대로라면 다자간 대화가 진행되더라도 북의 핵 포기를 요구하는 미국 주도의 다자 포위망이 구축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4.23 북경회담 이후 현재까지 북미 대결의 골자는 미국의 대북 포위.압박 전략의 성공 여부였다. 7월 초 상황에서 미국은 힘의 열세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 북미 대결은 미국이 새로운 선택을 해야할 순간으로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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