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혁 기자(bhsuh@tongilnews.com)
조지 W. 부시 새정부의 대한반도정책이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 남북간 전면적인 화해협력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민·관, 정치·경제·사회문제 등 다각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물론 남북관계 변화 자체가 불확실한 동북아 정세를 안정과 평화의 방향으로 주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방향에 순기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미관계의 재정립이 불가피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노출되고 있는 미국의 대한반도정책
클린턴정부 시기 미국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위협"을 줄이기 위해 군사적 억지를 바탕으로 대화방식을 취한 탄력적인 개입정책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부시정부의 대북정책도 클린턴정부의 그것과 기본방향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접근방법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다 강조할 필요를 가질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은 모순성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먼저, 동북아의 안보환경이 미국 주도로만 전개되기에 어려운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은 중국과 일본 등 주변강대국의 영향력을 완전히 통제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북간 자주적인 화해협력을 일방적으로 간섭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둘째, 미국은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남북대화를 촉구해 왔지만, 이런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현상황은 북한위협론을 약화시키고 있다. 요컨대, 부시정부는 한반도에서 기존의 정책으로 영향력 유지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존 정책을 붙들고 가려하는 입장에서 스스로 혼란을 맞이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부시정부의 안보진영이 대북강경책을 쉽게 쓰는 것은 자충수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아 정책결정과정에서 그 강도가 순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한 요인에는 부시정부의 정통성 문제와 미국 안팎의 여론, 그리고 안보진영의 상당수 인사가 한반도통이라는 점외에도 한국정부의 입장이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정부는 현재 북한당국은 ▲대남관계 개선은 물론 ▲대외개방에 적극적이며 ▲미국 일본 등 국제사회와 전면적인 관계 수립을 원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마디로 북한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17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북한이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에 큰 관심을 갖고 제2의 중국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미간 대북인식 차이 표면화될 가능성 커
반면, 미국의 새 안보진영의 대북인식은 우리정부와 크게 다르다. 이들은 지난 대선에서 북한을 "국제사회 밖에 있는 나라"로 규정한 바 있고, 럼스펠드 국방장관 지명자는 최근 북한을 "세계수준의 미사일 확산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차이는 한-미간 대북정책 목표상의 차이로 연결되어 있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과 중국 견제라는 세계전략의 일부로 북한에 접근하지만, 한국은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와 "사실상의 통일" 환경 조성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대북정책에 관한 한 한-미간의 정책 조정은 불가피한 상태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오는 3월로 예상되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같은 문제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정부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구축이 ▲북한의 변화에 역기능적일 수 있으며 ▲동북아의 불안 및 군비경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회의적인 입장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백악관 역시 한국정부의 이같은 입장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강경책을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미국은 동북아지역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의 관계를 훼손하는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강경한 대북정책에서 얻을 `이익`이 크다고 판단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미관계는 비단 대북정책뿐 아니라 양국간에 놓여있는 각종 현안들로 관계 재조정을 강제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한미행정협정(SOFA)과 그 모법(母法)이 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불평등성 문제 ▲노근리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 ▲주한미군 및 기지축소 문제 ▲전시작전권 환수문제 ▲통상문제 등 현안들이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많은 문제들이 현안으로 일시에 부상한 데에는 남북관계 개선, 한국내 대미감정 악화, 한국의 국력 향상 등의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워싱턴 당국이 이같은 점을 직시하지 않고, 임기웅변식으로 대처한다면 한-미관계는 물론 동북아지역에서 미국의 국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심화된 남북협력과 자주적 자세로 관계 재정립해야
이같은 문제들에 대해 미국은 현안들을 연계시키거나 고압적인 자세로 강대국으로서의 입장을 관철하려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가능성은 지난해 말 SOFA 개정 협상에서 나타났다. 미국은 그동안 유럽이나 중국 등 강대국과 달리 그 이하의 국가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고압적인 자세를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현 김대중정부가 미국을 완전히 자주적인 입장으로 대하기 어려운 여건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부분적인 개정에 그친 SOFA 협상 결과에 대한 김 대통령의 긍정적 평가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남북관계 및 국내적 상황의 변화를 대미 협상력 강화에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 개선이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북한위협론 반복이나 지역 균형자로서의 주한미군의 위상 변화를 무조건 수용한다면, 한국의 국익은 물론 통일기반 조성은 그만큼 멀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을 포함한 관계 개선를 더욱 심화(제도화)시키고, 높아진 국력에 부응하는 대외관계를 원하는 국민적 요구를 자주적 자세로 전환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미관계를 평등하고 남북화해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