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환(통일뉴스 편집국장)


이른바 `북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에 최근 한랭전선과 온난전선, 두 개의 전선이 겹치고 있다. 단순화하자면 한랭전선은 주로 미국측에 의해 형성되고 있고 온난전선은 북한과 주변 대화론자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

전자는 한반도를 긴장과 위기국면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후자는 이를 대화와 협상국면으로 바꾸고자 한다. 두 전선이 쟁패(爭覇)할 때면 당연히 제3세력의 역할에 기대를 걸기 마련이다. 이제 `북핵문제`와 관련해 남측 참여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지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압박

미국은 2001년 초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래 여태껏 북한과 단 한번의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방북한 켈리 미 특사의 실질적인 첫 북-미대화에서 이른바 `북핵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한 지난 4월말 베이징회담에서 북한은 미국에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대담한 제안)를 제시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난 지금 부시 행정부는 아직 명확한 답변을 하고 있지 않다. 부시 행정부는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걸까. 북한과의 전쟁을 결심한 것일까? 아닐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시간을 끌고 있는 걸까. 최근 미국의 행태는 최소한 `시간끌기`가 아니면 대북전쟁 `명분쌓기`라는 혐의가 짙다. 한마디로 북핵포기를 겨냥한 대북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데 그게 일전불사(一戰不辭)를 외치는 듯하다. 그 조짐들이 부시 행정부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이미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해결에 있어 `추가적 조치`와 `강경한 조치`라는 합의를 받아놓았다. 또한 G-8 정상회담과 유럽연합(EU) 정상회의 그리고 아세안안보포럼(ARF) 등 주요한 국제회의마다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참견해서 북핵개발 계획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내게 하는가 하면, 북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상정하겠다며 국제화.여론화하고 있다. 미국이 북핵문제를 국제화.다자화하는 것 자체가 양자간 문제로 보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압박수단으로 된다.

구체적인 지시와 행위도 있다. 호주와 일본이 마약밀매와 안전검사 등을 이유로 북한선박에 대한 해상봉쇄에 앞장서고 있으며, 특히 미국은 경수로건설사업의 일방적 중단을 강력 시사하고 있다. 이미 작년 말 미국의 대북 중유공급 중단 결정 이래, 그래도 경수로사업은 `실 끝에 달린 상태`(hanging by a thread)이긴  하지만 북미기본합의서의 한 상징처럼 되어 왔다.

그런데 경수로사업마저 중단된다면 실은 끊어지고 기본합의서는 완전 파기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결국 북핵문제가 유엔에 상정되고 경수로사업이 중단된다면, 지금 북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정세는 1994년 `제1차 북핵위기`에 이은 `제2차 북핵위기` 국면이라 부를만한 상황이 오게되는 것이다.

몇 가지 대화의 모색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와중에서도 북미대화를 촉구하는 여러 제안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지난 5월말 방북했던 미 공화당 커트 웰던 하원의원이 북측에 2단계 10개항의 북미관계 개선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공화당내 유력한 정치가의 입장이라는 점에서 부시 행정부가 전혀 무시만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또한 일본은 지난 달 13일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에서 "북한과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3국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일본 독자안을 일단 제시했는데 그 주요 내용으로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포기 대 한미일의 대북 불가침 확약` 등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독자안 역시 북미간 대화를 기본에 깔고 있음은 당연하다.

특히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최근 한 일본 언론에 의해 소개된, 북한이 베이징회담에서 미국에 제의했다는 `대담한 제안` 내용이다. 물론 그 내용이 원문에 맞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두 달 넘게 북한과 미국 어느 측에 의해서도 공개되지 않으면서 그 내용에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게 사실이다. 그런데 `4단계 동시이행`으로 되어 있다는 대담한 제안은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왜 북한과 미국 어느 쪽도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추측컨대 제안을 받은 부시 행정부가 비공식적으로는 거부한다느니 검토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느니 하면서도 결국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그 제안이 갖는 공정성과 합리성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아무리 미국이 일방주의를 행사할지라도 때와 장소가 필요한데 합리적인 내용을 공개하면서까지 그를 거부하기에는 부담이 컸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거꾸로 대담한 제안이 언제고 협상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북한 역시 부시 행정부가 시간을 끌면서 거부 운운해도 그 제안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제안을 실질적인 미국과의 대화의 카드로 삼고자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카드란 펼치지 않았을 때 살아있는 법이다. 만약 북한이 그 내용을 공개하면서 부시 행정부가 왜 이런 합리적인 안을 거부하느냐 하면서 성토했다면 당장은 이익이 될지 모르지만 결정적인 히든 카드를 하나 잃는 셈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양국은 대담한 제안을 사이에 두고 고도의 수읽기와 명분다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러한 몇 가지 북미간 대화 제안들이 현상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압박을 무력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래도 평화적인 해결방법을 두고 다툼을 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대북 전쟁의 가능성이 현저히 감소되는 가치가 있다.

참여정부의 역할

이처럼 한랭전선과 온난전선이 서로 부딪칠 때면 당연히 제3세력의 역할, 즉 남측 참여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지는 법이다. 분명한 것은 남한이 반대하는 한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전쟁을 일으키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참여정부의 역할은 명확해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4월 부시 미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 핵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 합의했으며 또한 대다수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는 `추가적 조치`에 대해 "협상에서 강온양면 카드는 자주 거론되는 수단"일 뿐이라며 애써 그를 무시했다. 그렇다면 이제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 큰 틀에서는 `평화적 방법`을 유지하면서 순간순간마다 나타나는 비평화적이고 전쟁요소적인 사안에 대해 즉각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한다.

먼저, 한미정상회담 이후 튀어나온 대북 `해상봉쇄` 운운은 그 시기나 내용에서 볼 때 `추가적 조치`로 오인받기 꼭 알맞다. 그렇다면 참여정부는 이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마지노선은 이미 제시되어 있기도 하다. 참여정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6월15일 한 TV 방송에 출연해 밝힌 "(`대북 봉쇄정책`에 대해선) 전쟁으로 갈 위험이 있고 봉쇄정책을 해서 성공한  적이 없다"는 수준의 입장을 미국측에 단호히 밝혀야 한다.

또한, 경수로건설사업은 북미간 대화재개를 위한 마지막 버팀목이다. 부시 행정부의 경수로 중단방침과 달리 일본은 즉각적인 경수로사업 중단에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역시 경수로 사업에의 투자비용과 함께 지난해 9월 북일수교를 담은 `평양선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듯하다. 참여정부는 경수로사업에 이해관계를 함께 하고 있는 일본측을 당겨 미국측의 경수로 중단에 강력한 제동을 걸어야 한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정세현 통일부장관의 `동시행동(이행)` 방법 제시이다. 정 장관은 지난달 30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핵문제를 놓고 미국의 `선(先)핵포기`와 북한의 `선(先)체제보장` 주장이 맞서 있는 데 대해 "문제는 누가 먼저 하느냐는 것인데 이 경우 서로 퇴로가 없어 동시조치로 풀어야 한다고 본다"고 나름대로 해법을 밝혔다. 이는 방법도 타당하지만 그보다 미국측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후 참여정부가 미국에 대해  `할말은 하는` 하나의 규범으로 삼을만하다.

참여정부는 북핵문제 해결의 평화적 방법이라는 큰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이처럼 부시 행정부의 `대북 해상봉쇄`나 `경수로건설 중단` 등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 반대 입장과 자기 목소리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것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 압박과 일전불사를 완화.저지시키는 일인 동시에, 그렇게 어렵지도 불가능하지도 않은 넓은 의미에서 민족공조의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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