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위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이 마을을 찾은 김 총비서는 남측에 혈육을 둔 가정을 일일이 돌아보면서 `남녘 땅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이 이처럼 아픈데 서로 갈라져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평양방송은 보도했다.
북한은 지난 10월 중순에도 언론매체를 통해 내보낸 한 글에서 국토양단 때문에 생겨난 이산의 아픔을 해결할 수 있는 종국적인 방안은 통일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북한은 `민족의 분열로 해서 우리 인민은 제 나라, 제 땅에서 마음대로 오갈 수 없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혈육과 친척, 친지들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다`면서 `오직 조국이 통일될 때에만 온 겨레가 겪고 있는 재난과 고통을 완전히 가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들어 두 차례 실시된 이산가족 교환방문 당시 북측 방문단 중 일부가 또 다른 이산의 아픔을 초래하는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보다 통일을 강조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김 총비서의 이러한 입장은 임진강 부근의 마을 방문 이후 10년이 넘어서도 바뀌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 85년 남북 적십자회담 직후 김 총비서는 회담 관계자들에게 `온 겨레가 평양과 서울로 오가며 혈육의 정과 동포애를 나누고 끊어진 혈맥을 완전히 잇자면 조국을 하루 빨리 통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으로 평양방송은 소개했다.
평양방송은 이외에도 지난 76년 8월 풍랑으로 북측지역에 들어갔던 신진3호, 90년대 초 평양에서 열린 통일음악회 등에 얽힌 김 총비서의 남측 동포에 대한 배려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 방송은 김 총비서가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으로 떠들썩하던 지난 76년 8월 신진3호 선원들의 귀환을 걱정하며 고추장과 식초를 싸 보낼 것을 지시한 사실과 통일음악회 때 남측 동포들에게 생일상을 차려줄 것을 강조한 점 등을 소개하면서 `크나큰 사랑과 뜨거운 은정`이 배어 있다고 주장했다. (연합 2000.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