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원광대 정치행정언론학부 교수,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 대표)



노무현 대통령이 많이 변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전쟁 가운데 아마 가장 명분이 없고 추악한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 우리 젊은이들을 보내자고 한다. 대통령 후보와 당선자로서 보여준 미국에 대한 당당한 모습을 계속 유지해 줬으면 했는데, 취임한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몹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원칙과 소신의 노짱도 높은 자리에 오르고 나니 벌써 변절하게 되는구나 하는 참담한 생각마저 든다.
 
아직 극우 야당이 국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지만 김대중이 김종필과 공동 정부를 이루었던 것처럼 이른바 `태생적 한계`도 없고, 수구적 종이 신문들이 신문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지만 진보적 인터넷 신문들의 영향력이 매우 커진 터에, 보수층의 눈치를 그토록 심하게 볼 필요가 있는지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그를 크게 비난할 생각은 없다. 정부의 책임있는 자리에 앉으면 미국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게 되는 대한민국의 서글픈 현실이 더 안타까울 뿐이다. 만약 그가 지금 청와대에 있지 않다면 누구 못지 않게 이 더러운 전쟁을 반대하지 않겠는가. 대통령이란 자리가 노무현의 철학과 신조를 꺾게 만든 것이라고 믿는다. 외교의 가장 큰 목표는 국익을 추구하는 것이니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국익을 고려하여 대외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개인의 소신과 철학을 넘어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으로`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기로 했다지 않은가.
 
먼저 미국의 전쟁을 지원해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몇 가지를 잃을지 모른다. 첫째, 미국의 투자가 빠져나갈 수 있고 한국의 신용 등급이 낮추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경제 상황이 나빠질 수 있다는 말이다. 둘째, 미국이 오기를 부리며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하겠다고 위협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 동맹 관계가 느슨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셋째, 북한과 미국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는 노 대통령을 무시하며, 북한 핵문제를 빌미로 남북 관계 개선에 계속 딴죽을 걸지 모른다.
 
그 대신 미국의 전쟁을 지원해주면 몇 가지를 얻을 것 같다. 첫째, 전쟁이 끝난 뒤 이라크를 재건할 때 참여하여 적지 않은 경제적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미국이 앞으로 적어도 20-30년 동안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자리를 지킬텐데 찰떡같은 한미 공조를 강화함으로써 안보 공약을 포함한 미국의 각종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셋째, 가장 절박하고 현실적인 배경으로, 노 대통령이 여러 차례 밝혔듯이, 미국으로부터 북한에 대해서는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주는 대가로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받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국익이 아무리 크고 중요하다 할지라도 온 세계가 비난하는 명분없고 추악한 전쟁을 우리는 어떠한 형식으로든 지원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펴고자 한다.
 
첫째, 국익이 아무리 중요해도 사람 목숨보다 귀중할 수는 없다. 배불리 편하게 살자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일에 참여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개인 차원에서든 국가 차원에서든 비굴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자리를 지키며 재산을 쌓기보다는 다소 배고프더라도 건전하고 바르게 사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둘째,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익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은 이익이 더 클 수도 있다. 노무현이 지난날 서울에서 어렵지 않게 국회의원에 당선될 될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부산에서 출마하여 떨어짐으로서 뒷날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데 도움이 되었듯이 말이다. 당장엔 국회에 진출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했지만 나중엔 청와대를 차지한 큰 이익을 얻었듯이, 당장엔 미국과의 갈등으로 다소 손해를 입더라도 나중엔 유럽과 십수억 인구를 가진 아랍으로부터 더 큰 실익을 거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셋째, 미국이 곱든 밉든 우리의 동맹이요 나아가 우리는 지난날 미국에 빚진 게 있어서 갚는 게 도리이지만, 미국의 침략 전쟁을 돕는 것은 동맹으로서의 의리도 아니요 빚을 갚는 것도 아니며 도리도 아니다. 잘못된 길을 걸으면 비판과 충고를 해주면서, 만에 하나 미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침략을 받는다면 어떠한 지원도 아끼지 않는 게 동맹으로서의 의리를 지키는 일이요 빚을 제대로 갚는 길일 것이다.
 
넷째,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이라크와 북한은 다르다. 이라크는 미국이 눈독을 들이는 석유가 풍부하지만 미국에 대응할 군사적 능력은 형편없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이 탐낼만한 자원은 없지만 미국에 보복할 수 있는 군사력은 어느 정도 갖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미국이 얻을 것은 큰데 잃을 것은 적고, 북한에서는 얻을 것은 거의 없는데 잃을 것은 크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북한과 미국 사이의 갈등을 푸는데 남한의 이라크 파병이 무슨 대단한 영향력을 끼치겠는가. 한반도의 평화를 얻기 위해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을 지원한다는 것은 명분으로나 실리로나 설득력을 지닐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모든 점까지 충분히 고려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속으로는 더러운 전쟁과 비굴한 파병을 분명히 반대하면서도, 겉으로는 전쟁을 지원하고 파병을 서두르는 체 해야하는 그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간다. 노골적으로 말해 대통령이나 그의 보좌관들은 우리 일반 시민들이 파병 반대 여론에 더 큰 힘을 실어주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미국의 위협적이고 끈질긴 전쟁 지원 요구를 청와대가 거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국민의 강력한 반대 여론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노사모]를 비롯해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고 지원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간곡하게 호소한다. 먼저 백악관과 청와대 그리고 국회와 언론 기관 등에 전쟁과 파병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자. 그리고 주위의 반전 평화 시위에 힘을 모아주자. 나아가 청와대든 국회든 미국대사관이든 온몸으로 둘러싸고 우리의 굳센 반전 평화 의지를 보여주자.

그러면 노짱을 양심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켜주게 될 것이요, 대한민국 대통령을 `전쟁의 공범`으로 만들지 않게 될 것이며, 노무현마저 영국의 블레어 같은 `부쉬의 개 (poodle)`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도록 이끌게 될 것이다.(이 글은 [남이랑북이랑] 오늘자에 게재된 것을 다소 손질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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