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관 기자(ckkim@tongilnews.com)


▶돼지들 (1)
[저자] 이정규 [출판사] 밝은세상

소설을 흔히들 픽션(허구)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소설이 꾸며낸 이야기임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 어떤 객관적 사실을 담은 이론서 보다도 즐겨 읽곤 한다.

최근 북파 무장 공작원들의 삶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돼지들`이 두 권의 책으로 나왔다. 북파 무장 공작원이라는 역사의 귀퉁이에 감춰진 특별한 존재들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시점에서 세인들의 구미를 당기는 책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누구나 부담없이 극적 전개를 쫒아가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의 형식을 빌고 있어서 더욱 손길이 쉽게 닿을 수 있다.

북파 무장 공작원의 존재와 실태는 이미 몇해 전부터 월간 `말`지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거론돼 왔으며, 이미 백동호가 쓴 장편소설 `실미도`에서도 그 일각을 선보여 왔다.
그러나 지난 6월 역사적 남북정상회담 이후 비전향장기수 송환, 납북자와 전쟁포로 문제 등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북파 공작원의 문제도 비로소 우리 사회에 주요한 이슈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특히 올해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성호 민주당의원은 `지난 72년 7.4남북공동성명 전까지 북파된 공작원 가운데 실종, 사망, 생포돼 귀환하지 못한 공작원 수가 7천 726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는 놀라운 자료를 제시하기도 했다.

`돼지들`이라는 소설 앞면에 북파 공작원들의 실제 사진들이 실려있다.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 내용에 있어서도 북파 공작원들의 훈련과정이나 공작내용들이 상당히 많은 자료들에 근거해 씌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북파 공작원들의 존재는 더 이상의 비밀이 아니고 역사적 사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서야 이들의 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이 소설에서 나오듯이 [북파 공작원들이, 그렇게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국가를 위해 귀중한 생명을 바쳤는데도 어떠한 평가나 인정을 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불법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정전협전상 상호 도발을 못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에, 남북한 모두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어도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라는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돼지들`이라는 소설은 C.I.A.(미중앙정보국) 요원인 김민호가 한국에 특수 목적을 띠고 파견되면서 김민수라는 형을 찾아나서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형제애와 남녀관계 등 전형적인 멜로적 성격과 CIA요원, 북파공작원, 운동권 출신 남파 여간첩 등 첩보적 성격이 뒤엉키면서 소설은 시종일관 애틋함과 긴박감을 자아내고 있다. 역사적 사실들에 근거한 소재와 극단적 허구를 토대로 쌓아올린 스토리의 전개라는 이중적 배치가 절묘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충격적인 두형제의 어린시절의 이별, 주인공 김민수와 이은영의 운명적 만남과 헤어짐, 김민수의 북파 공작원 생활, 그 이후 펼쳐지는 사선을 넘나드는 숨막히는 공작들....

한 인간이 살아가는 최소한의 요건인 혈육과 연인의 정을 단절당하는 쓰라린 우리의 분단현실과 남북의 현실을 이 책은 담아내고 있다. 더욱이 이런 절대절명의 고난 속에서도 형제애와 연인간의 사랑, 인간성을 지켜내려는 공작원들의 고민 등 휴머니즘의 기저를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이 따스하게 다가갈 수 있는 매력이리라.

물론 이 책에도 몇가지 짚고 넘어갈 대목들은 있다. 인물 설정이나 사건의 전개가 지나치게 전형적이고 극단적으로 설정되어 있다든지 뒷부분의 잠수함 사건은 강릉 잠수함 사건을 북쪽에 그대로 옮겨다 놓은 혐의를 풍긴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의 한계는 지은이의 시각에서 기인하는 현실파악의 문제일 것이다. 조직폭력배의 세계, 운동권 대학생의 의식구조, 북한 사회의 현실 등 저자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불충분한 현실파악과 이에 기인하는 가치관은 다소 당혹스럽기마저 하다.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어느 해보다 분단의 역사와 통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올해, 역사의 뒤안길에 잊혀져 있던 북파 공작원들의 숨결을 이 책과 함께 호흡해 보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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