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혁 기자(bhsuh@tongilnews.com)



<연방제 통일론 시리즈> 차례
1. 연방제와 국가연합
2. 북한의 연방제 통일정책의 변천
1) 과도적 연방제에서 최종통일방안으로(1960-80)
2) 198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국가연합적 연방제안
3. 김대중정부의 통일방안
4. 남북한 통일방안의 비교 검토
5. 통일방안 합의




<연방제 통일론 시리즈>를 통일방안에 대한 논의로 마무리하는 것에 대해서 다소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현재의 남북관계 수준을 볼 때 단기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남북한의 공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통일방안을 구체적으로 논하기 보다는 통일방안을 논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에 한정하려고 한다. 이를 남북관계 차원과 대내적 차원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통일논의가 가능한 남북관계

남북한이 실제로 통일논의를 할 수 있는 남북관계란 어떤 수준을 말하는가? 김대중 대통령은 9일 노벨평화상을 받은 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통일을 언제 이루어질지는 말할 수 없지만, 남북한이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이 발전하면 어느 시점에서 남북한이 통일에 다가갈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였다. 김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 남한의 현정부는 우선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으며 △ 통일은 이런 과정의 발전적 결과로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역시 현단계에서 통일을 바라고 있는 것같지는 않다. 북한은 현재 늘 그랬던 것처럼, 남북정상회담 이후 6.15 공동선언 이행과 함께 연방제 통일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체제가 통일을 할 수 있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통일에 대한 과도한 선전만큼 통일을 할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각기 다르지만 남북한의 이같은 상황은 당장의 통일에는 모두 부담을 갖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동안 통일논의가 가능한 남북관계 수준에 대해 두 가지 극단적인 의견이 있어왔다. 하나는 남북한이 결심만 하면 통일은 지금이라고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견해는 분단이 외세에 의해 발생되었기 때문에 민족이 대단결하여 자주적으로 추진한다면 통일은 역사적 필연이라는 의견이다. 다른 한 의견은 통일은 한다면,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해야 하지만, 현재와 같은 대립적인 정치체제하의 통일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배타성이 짙은 민족주의와 체제중심적 통일론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통일이 가능한 남북관계 수준을 바로 이와 같은 양극단의 견해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본다. 첫 번째 의견에서는 통일을 위해서는 주변국가들을 비롯한 긍정적인 국제적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두 번째 견해에서는 체제론적 관점에서 탈피하지 않는 이상 남북 화해와 상생의 통일은 창조할 수 없다는 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일부 국가들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이질성을 하나로 통합하는데 유용한 정치적 수단으로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정치 및 경제체제가 이질적인 조건에서 연방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한 국가도 없다. 북한은 이점을 의식하여 가장 독창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면, 북한이 연방제를 주장한다고 해서 우리가 통일방안의 하나로 연방제를 고려 대상에서 애초부터 배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 북한문제 전문가가 "만약 남한이 지금 연방제를 하자고 하면, 북한이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결국 통일논의가 남북한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시점은 남북한이 상당한 통합 수준으로 올라와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상당한 통합수준`이란 △ 정치·군사적 측면에서는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상호 신뢰를 제도화하고 △ 경제적으로는 시장통합에 가까운 수준이 올라서고 △ 사회·문화적으로는 자유로운 왕래와 협력이 일상화되는 수준을 말한다. 이에 대해 그동안 남북한은 서로 다른 접근을 시도하였다. 북한은 정치·군사적 문제 우선 해결을, 남한은 경제적, 사회·문화적 접근을 각각 강조해 왔다. 문제는 통일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런 부문들이 포괄적이고 동시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이런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데 의의가 깊다고 판단된다.

자유로운 통일논의가 가능한 대내적 조건

그러면 통일논의가 건전하고 자유롭게 가능한 대내적 조건은 무엇일까? 앞에서 지금 통일논의가 남한에서 가능하지 않다고 한 것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공유될 수 있는 이념적 관용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상호의견에 대한 수용의 자세를 폭넓게 하는 것이 통일논의를 위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전제로 통일단계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가질 필요가 있는 몇 가지 점들을 생각해 보자. 첫째, 법적 측면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보안법 폐지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넘어갔다. 보안법은 우리사회에 반공반북이데올로기를 법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남북 화해와 교류협력은 남북한이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통일논의가 같은 맥락이다. 우리사회는 이제 국가보안법 없이도 체제를 지탱할 정도로 자신감과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판단한다. 오히려 경제적, 정치적, 외교적으로 우위에 있는 남한이 통일을 자유롭게 논의하여 바람직한 방향을 준비하는 입장에 서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보안법의 폐지는 이를 위한 첫걸음인 것이다.

둘째, 학술적 차원에서 통일논의가 남한내에서는 물론, 남북한 차원에서 활성화되어야 한다. 남북한 정상은 지난 6.15 공동선언 제2항에서 남북한의 통일방안 가운데 공통점이 있다는 인식을 함께 하였다. 우리는 통일 논의가 정부나 최고 권력자 사이에 국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정상 사이에 있은 통일문제에 대한 일정한 공감대는 남북관계 개선에는 물론 남북한에 통일논의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하는 것이다. 다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통일논의를 당장에 모든 영역에서 논의할 필요와 조건이 아닌 점을 감안하여 이를 학술차원에서 연구하고 남북간에 논의하는 자리는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제 통일은 미래의 소망이 아니라 우리가 준비하는 만큼 다가오는 손님이 되고 있다. 따라서 통일준비는 정치군사적, 경제적, 사회문제적 제측면에서의 동시적, 포괄적 접근과 함께 이를 담아낼 구체적인 방안 역시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차분하고 내실있는 연구와 폭넓은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내용을 기대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배려와 국민들의 개방적인 사고 역시 중요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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