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식(통일뉴스 상임고문)


지난해 초 들어선 미 부시 행정부는 대북정책에 있어서 클린턴 행정부때의 북미관계를 근본적으로 뒤엎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즉, 북미간에 합의한 기본합의서는 물론 2000년 10월에 발표된 `북미공동코뮤니케`를 사실상 사문화 하는, 이른바 강경정책으로 선회한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에 와서는 미국이 북한의 핵문제를 크게 부각시킴으로서 북미관계가 기본합의서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이러한 정세는 켈리 특사의 방북으로 인해 한층 고조된 상태이다. 부시 행정부의 기본합의서 무효화 시도가 현실화되는 상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기본합의서에 관한 문제를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원래 북미기본합의서는 북한의 흑연감속로와 연관시설들을 동결시키며 궁극적으로는 해체한다는 전제하에 2백만㎾의 경수로 발전소를 유상지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흑연감속로와 연관시설들의 동결에 따른 전력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대용 에네르기인 중유를 매년 50만톤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둘째, 쌍방은 정치 및 경제관계 정상화를 추진한다. 셋째, 쌍방은 한반도 비핵화, 평화와 안전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 넷째, 쌍방은 국제적인 핵확산 방지 체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 등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기본합의서가 나오기 전날인 1994년 10월 20일에 클린턴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담보서한이다. 이 서한에서는 경수로 건설이 북한의 책임이 아니라 다른 이유의 경우 `나의 모든 직권을 행사하여 미 합중국 국회의 승인 밑에 미 합중국이 직접 맡아 완공하도록 할 것이다...... 대용 에네르기가 북한의 책임이 아닌 다른 이유들로 인하여 제공되지 못하게 되는 경우 나의 모든 직권을 행사하여 국회의 승인 밑에 미국이 직접 맡아 제공하도록 할 것이다...`로 되어 있다.

따라서 기본합의서는 이러한 클린턴 대통령의 담보서한에 기초해서 합의된 내용들인 것이다. 이처럼 기본합의서는 클린턴 대통령의 직접적인 지시와 권한행사에 북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하나의 약속으로서 합의된 내용인 것이다.

이 시점에서 부시 행정부, 특히 켈리 특사가 북한과의 협상에서 북측 대표의 발언을 거두절미하고 북한이 그간 핵개발을 추진함으로서 기본합의서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하고 북한이 기본합의서를 먼저 파기했다고 들씌웠다.

이와 관련 일부 보도에 의하면 북한의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당신의 나라는 우리를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했다. 당신들 군대는 한반도에 배치돼 있다. 물론 우리는 핵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고 밝힌 뒤 "그보다 더 강력한 것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북한이 그간 핵개발을 함으로서 기본합의서를 사실상 위반한 것으로 몰아부치고 또한 기본합의서를 북한에서 무효화 선언을 했다는 것으로 왜곡.부각시켰다.

앞서 지적한 대로 북미기본합의서의 내용을 보면 기본합의서를 지키지 않은 것은 미국측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경수로 지연이 1,2년이 아니라 7,8년 지연된다는 것은 애당초 미국이 기본합의서를 이행할 의향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기본합의서 2항에서 합의한 대로 북미관계가 이미 정상화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적대관계는 아무런 진전이 없으며 북한을 `악의 축`, `선제공격의 대상`, `테러지원국`으로 규정하는 등 최악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그간 북한에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르는 전력손실 보상 문제에 대해 주장해 왔으며 때로는 북미기본합의서 이행문제와 관련한 미국측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더 이상 기본합의서에 연연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에 대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등의 입장표명을 해온 바 있으며, 이러한 그간의 북한의 입장표명에 대해 미국은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켈리 특사와의 회담에서 북한이 기본합의서 실행문제와 연결시켜 이야기한 내용은 그간 수차례에 걸친 북한의 위와 같은 입장표명의 연장선으로 볼 수가 있으며 또한 미국이 기본합의서를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 추궁의 하나로서 불만의 표명으로 봐야 한다.

이 시점에서 부시 행정부 관리들이 기본합의서를 북한이 먼저 지키지 않겠다고 했으니 사실상 무효화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 전도된 것이며 미국측이 북한에 책임을 들씌우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적반하장이라는 옛말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핵개발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 회담대표 이야기만으로는 사실을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첩보 수준의 문제를 가지고 그간 북한이 핵개발을 암암리에 추진해 왔다고 단정짓고 문제를 확대시키려 하는 것은 강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억지 논리인 것이다.

북한 회담대표가 이야기한 내용을 보면 `핵 프로그램` 수준정도인지, 이행하는 수준인지 또는 그런 프로그램을 가질 구상을 얘기한 것인지가 불확실한 것이다. 미국이 일방적인 첩보와 연결시켜 핵개발을 기정사실화하여 국제사회에 크게 부각시키는 것은 상대방 주권을 무시하고 일방주의적인 `오만하고 무례한` 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부시 행정부는 이 시점에서 북한에 대해 `평화적 무장해제`를 주장하고 있으며, 북한은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한다면 문제가 되고 있는 핵문제를 비롯한 이른바 `우려사안`들에 대해 대화의 방법으로 해결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선(先) 무장해제 후(後) 대화와 협력`,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를 포함한 포괄적이고 정치적인 일괄타결`을 각각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남북 당국간에는 `6.15공동선언의 정신에 맞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핵문제를 비롯한 모든 문제를 대화의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국내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초당적 입장에서 북한의 핵문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자는 데 의견일치를 본 것은 당연지사이다.

주변 열강들인 중국, 러시아, 일본 등도 평화적이고 대화의 방법으로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특히 일본은 당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식인과 일반 국민들은 핵문제는 북미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고 있으며,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기정사실화하고 부추기는 것은 북일수교 회담 추진에 대해 견제하려는 것으로 인식들을 하고 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예정대로 북일수교회담을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표명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대부분의 언론매체를 비롯한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은 물론 기본합의서 무효화 움직임에 대해 우려와 함께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 4.5공동보도문에서 합의한 대로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체인 남과 북 당국을 비롯한 온 민족이 단결하여 외부로부터의 압력과 도전 등 엄중한 사태 등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해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북미기본합의서를 어떠한 난관이 조성되더라도 그를 극복하고 실현시켜 나가도록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6.15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이며 그를 실천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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