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관 기자(ckkim@tongilnews.com)


▶김홍재, 나는 운명을 지휘한다
[저자] 김홍재, 박성미
[출판사] 김영사

김홍재, 그는 분명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다. 더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기 쉽지 않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다. 그것도 이국땅 일본에서.
그러나 `김홍재, 나는 운명을 지휘한다`라는 제목의 책을 잡는 순간, 우리는 그의 세계로 깊게 빨려들어가게 된다.

김홍재라는 재일 조선국적의 탁월한 지휘자의 삶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무엇보다도 김홍재라는 한 인간의 삶을 만나게 해주는 자체로서 우리에게 신선한 일깨움을 선사하고 있다.

김홍재는 재일동포 2세로서 열악한 조건에서 일본에서 최고로 통하는 `사이또 히데오상`과 `와타나베 아키오상`을 수상한 일본 최고 수준의 지휘자이다. 그가 여기에 도달하기까지 한 인간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고통스러울 정도의 부단한 노력과 불요불굴의 의지력은 타성에 젖어사는 우리들의 일상에 경종을 울려준다.

그러나 그가 열심히 노력하여 훌륭한 지휘자가 됐다고만 한다면 그저 그런 성공이야기에 불과했을는지 모른다. 그의 진면목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숱한 어려움과 유혹을 물리치고 재일동포 2세로서 조선국적을 지닌 채 살아가는 모습과 가장 서양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이면서도 그의 첫 공연, 첫 곡으로 `아리랑`을 연주하였다는 사실이 실로 놀랍기만 하다.

물론 국내에 살기 때문에 재일동포들의 역사적 처지를 잘 알지 못하고, 더욱이 음악에 대해 문외한인 평범한 사람들이 조선적을 고수하고 아리랑을 연주하는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 싶겠지만 이 책을 읽고난 독자들은 누구나 새삼 고개가 숙여질 것이다.

그의 삶과 음악에는 항상 민족정신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특히 고 윤이상 선생과의 만남은 이런 김홍재의 삶을 더욱 확고하고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조선적을 고수한 덕분에 외국 유학도, 유럽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기회도 잃고 북한에서 공연은 가졌지만 남한에는 입국조차 할 수 없는 신세였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남북의 통일을 염원하며 `한겨레 음악회`를 도맡아 연주했으며, 마침내 올해 10월 서울 아셈 개막 축하 공연을 예술의 전당에서 갖게되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그는 아직 젊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사람이다. 남북통일의 새역사가 열려가는 이 시기를 우리 모두와 함께 동시대인으로 살아갈 미완의 존재인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음악을 모르는 사람도, 재일동포들의 애환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누구나 김홍재라는 사람의 삶의 안내를 따라 자연스럽게 이것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또 하나의 덤으로 우리가 이름만 알고 있었던 재독 작곡가 고 윤이상 선생이나, 우리에게 전혀 생소한 재일 음악 기획자이자 김홍재의 외삼촌인 이철우의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주고 있다.

분단의 아픔을 타국에서 몸으로 헤치고 통일의 길을 갈구해왔던 김홍재의 삶은 우리 쓰라린 현대사의 한 토막을 보여주는 또하나의 바로메터요,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사표로 서있을 것이다.

겨울에 접어들어 한 해를 되돌아보며 자신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자 하는 이땅의 모든 이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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