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우(사진작가)


통일이 눈앞에 선연히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손끝에 닿으면 닿을수록 갑자기 터져 나올지 모르는 전쟁의 위협에 언제부턴가 나는 민감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둔감해 질만도 한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9.11이후에 미국의 행보는 그 민감함에 더욱 불을 지폈다.

통일역량으로 전쟁역량을 막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끝에 일개 사진작가인 내가 할 수 있는 한가지로 전쟁억지력을 비장미가 아닌 즐거움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야단법석`이란 말이 있다. `야단`이란 들판에 단을 차린다는 말이고 `법석`이란 법문을 듣기 위한 자리라는 뜻이다. 야외에서 바람을 맞아가며 마이크도 없이 분필도 없이 이루어지던 법문으로 세계는 지금까지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받았다. 가장 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낸 공자도 진리의 개념을 길에서 발견했다. 그래서 중국문명에서 진리는 곧 길(道)이었다.

`야단`이 근대에 들어 `교단`으로 바뀌고 `법석`대신 `수능`이 그 자리를 대신 하니 산 공부와 교실공부가 분리되었다. 나는 몇 번인가 사람들의 요청에 이끌려 통일기행을 안내하다가 기행이야말로 진정한 `야단`과 `법석`임을 알게 되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아는 것이 객관적 지식에 대한 이해라면, 좋아하는 것은 거기에 가치가 추가되어 사람을 추동하는 요인이며, 즐기는 것은 가치지향을 넘어 체화된 생활이니 즐거움이야말로 세계를 추동하는 주체적 인간의 지극한 상태라 하겠다.

기행은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절로 좋아 떠나며, 좋아하는 것을 넘어 즐기니 이보다 더 훌륭한 공부가 어디 있는가?

새로운 시대적 힘으로서의 `즐거움`을 위해 나는 자연과 역사와 문명을 사람의 생활을 중심으로 통일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사람의 생활을 중심으로 보면 자연은 생활의 조건이며, 역사는 생활의 과정이고, 문명은 생활의 결과이다.

통일의 시대가 이미 생활로 다가온 오늘의 눈으로 분단시대의 유산을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통일은 분단의 극복이 아니라 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마련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을 중심으로 돌 한 조각에서부터 역사와 문명에 이르는 인간의 광범한 지혜를 구하기 위한 자리로 민통선과 비무장지대를 택했다.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은 환경의 눈으로 볼 수도 있고, 역사의 눈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군사의 눈이다. 왜냐하면 그 출생처가 정전협정이기 때문이다.

1953년 7월27일 임시 휴전과 함께 3개월만 효력을 갖기로 하고 군인사이에 서명된 정전협정은 외무부장관이나 대통령사이의 공식적 평화협정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50여년 동안 미숙아가 되고 말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명력을 잃어간 정전협정으로 인하여 우리는 50년간을 정전 아닌 냉전과 열전사이를 오가며 살아야 했다. 그동안 비무장지대라는 개념은 우리 머리 속에서 중무장지대의 이미지로 자연스럽게 조각되어 있다.

통일의 샴페인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중에도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과 그것을 즐겁게 극복할 수 있어야 `통일역량`이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CBS 시사쟈키 팀에서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1년을 넘어서고 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번씩 진행되고 있는 `이시우의 통일기행`의 방송원고를 읽기 좋게 수정하여 통일뉴스에 연재하기로 하였다. 전파의 속도와 함께 세상의 기억에서 묻혀 버릴 뻔한 보잘 것 없는 원고를 연재해주시는 통일뉴스에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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