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제 통일론 시리즈> 차례
1. 연방제와 국가연합
2. 북한의 연방제 통일정책의 변천
1) 과도적 연방제에서 최종통일방안으로(1960-80)
2) 198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국가연합적 연방제안
3. 김대중정부의 통일방안
4. 남북한 통일방안의 비교 검토
5. 통일방안 합의(대내적, 남북관계 차원)와 전제조건(통일환경 조성)
지난 6월 평양정상회담을 마무리 하면서 양측 정상은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전체 5개항으로 되어 있는 선언 중, 제2항에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과 남측의 연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이후 `6.15 공동선언 이행`이라는 구호 아래 통일문제를 강조해 왔으며, 이 가운데 연방제 통일방안을 비롯하여 소위 `조국통일 3대헌장`의 실천을 주장해 왔다. 반면, 남한의 경우는 북한과 달리 여러 의견들로 나뉘어져 있다. 정부여당은 이 대목을 남북한 체제공존을 통한 평화 정착 및 화해협력의 정신이 반영된 것으로, 한나라당 등 야당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합의 사항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학계와 여론에서도 이같은 의견 차이는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남북은 지난 6.15 공동선언을 통해 통일방안의 공통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였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 문제를 남북한 통일방안(또는 통일정책)의 유사점과 차이점으로 생각해 보자.
* 남북한 통일방안의 유사점
지금까지 기획연재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북한은 연방제 통일방안을 오랫동안 주장해 왔으면서도 그 강조점과 의미에 대해서는 시기에 따라 변화를 보여 왔다. 특히, 지난 1980년 노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 확정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안은 현재까지 북한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남북한 체제 경쟁에서의 열세가 확연해지고, 국제정세가 불리하게 조성된 1980년대 말부터 연방제 방안의 기조 속에서 연합제의 성격을 가미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김일성 주석은 신년사를 통해 최종적인 통일은 후대에 맡기고 상호 체제공존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즉 북한은 1980년 통일방안에서 연방정부에 속한 외교 및 국방권을 잠정적으로 남북한 자치정부가 그대로 가질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북한이 궁극적인 통일국가의 상을 어떻게 그리고 있든 간에, 당면한 상황에 있어서는 체제공존을 전제로 한 연합제식 통일방안을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북한의 이같은 통일 방안의 강조점 이동은 당시 남한정부의 통일방안에 대응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분석된다. 노태우 정부는 구체적인 통일방안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북한체제의 인정, 남북한 교차승인의 추진 등 소위 7.7선언을 통해 당시로는 파격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뒤를 이은 김영삼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통일을 최종 목표로 하는 `한민족공통체 통일방안`을 내놓으면서 과도기로 국가연합단계를 설정하였다. 그리고 현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공식적인 통일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사실상의 통일`을 위한 환경 조성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현정부의 대북정책은 통일정책 그 자체라기 보다는 평화정착 또는 통일촉진 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현재 남북한의 통일방안 또는 통일정책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 서로 무력을 통해 특정 체제로의 통일국가 수립을 지향하지 않으며 △ 상호 체제 인정과 교류협력을 통해 남북관계를 협력적인 상호의존관계로 발전시키면서 통일을 전망하며 △ 이를 위해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정부당국간 대화와 협력의 기운을 높여가고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즉, 남북은 당국간 상호신뢰에 기반하여 평화적이고 단계적인 접근방식을 통해 통일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한의 현 최고지도자는 이를 6.15 공동선언 제2항에 담은 것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점은 남북한 당국자들이 통일문제에 대한 접근 태도를 과거의 이념중심적 사고에서 현실주의적 사고로 전환시켜 왔다는 것이다. 가령, 남한의 당국자들은 멸공, 승공, 반공을 기치로 하는 냉전식 체제통일론에서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인식의 전환을 보이고 있다. 남한정부는 북한과 공존하면서 화해협력을 넓히는 가운데 통일을 준비한다는 방향으로 의식과 정책을 점차적으로 변화시켜 왔다.
북한 당국자들 역시 자신의 체제 역량의 감소와 남북관계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남관계를 적대적 의존에서 협력적 의존으로 서서히 바꿔 가고 있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김영삼정부와 현정부 초기까지 탐색의 시간을 거쳤다. 결국, 통일문제를 보는 남북한 당국자의 시각이 상호불신에서 신뢰로, 비방에서 협력의 방향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 통일문제에 대한 일정한 공통 인식을 하게끔 한 원동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남한정부의 경우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와 교감해 나가야 할 어려운 관문을 거치는 작업이 남아 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는 북한당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남한정부와 달리 컨센서스 형성이 쉬운 편이다.
* 남북한 통일방안의 차이점
물론 여기에는 북한당국이 제시한 통일방안으로서의 연방제가 상이한 체제 속에서 가능한 것인가, 또 그 속에 북한의 적화통일전략이 완전히 사라졌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반대로, 현 정부가 내놓은 통일방안이 없는 상태에서, 주기적인 선거를 통해 정권이 형성되는 정치 사이클을 고려할 때 통일방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 마련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문제는 북한 통일방안이 갖고 있는 차이점과 결합될 경우, 심각한 국론분열과 남북관계의 경색을 가져올 우려를 만들어 내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통일문제와 관련한 북한 관영언론의 보도는 `6.15 공동선언 이행`, `조국통일 3대헌장`의 강조, 그리고 `연방제` 통일방안의 합리성 강조 등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이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력 강화와 연계하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보수적 시각을 갖고 있는 남한의 정치세력과 언론에서는 북한의 궁극적인 통일국가상은 1980년의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통일방안이 북한이 처한 내외적 상황 및 전략적 판단에 따라 내용적으로 그 의미가 변화해 왔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통일방안이 체제수렴형의 통일방안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북한이 `우리식 사회주의`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위기 및 국제적 고립에도 불구하고 `강성대국` 건설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이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남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남한의 역대정권은 그 많고 세련된 통일방안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을 궁극적인 지향으로 하였으며, 자주·평화·민족대단결 등 7.4 공동성명에서 밝힌 3대 통일원칙도 그에 따라 수정하기도 하였다. 특히,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민주`로 대치하기도 하였다.
남북한의 상이한 체제와 이념에서 통일을 생각할 때 △ 체제흡수식 통일 △ 수렴형 통일 △ 체제공존형 통일 등 3가지 길이 있다. 남북한간에 이질적인 체제가 오래간 지속되어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첫 번째 방식의 통일은 김영삼 정부를 거치면서 불가능하고 불합리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두번째의 경우도 그 길로 가기로 합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최종적 방향이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통일의 전도가 `고삐 풀린` 상태에서 전개될 것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세 번 째의 경우는 지금같이 통일 환경을 촉진하는 과정에서는 의미가 있으나 그 자체가 통일국가의 상으로 보기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통일방안에 접근하는 제3의 방법
그렇다면, 현단계에서 통일논의는 무의미한가? 이상에서 우리는 남북한 사이에 통일문제를 보는 시각과 구체적인 방안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변화 그 자체에 흥분하거나 반대로 변화에 대한 회의 보다는, 어떠한 과정과 맥락에서 변화가 일어났는가 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은 그간 오랜 적대관계를 유지해 왔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체제를 일방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통일로 이해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화해할 수 없는 양측의 통일방안 및 통일정책, 상대에 대한 시각이 지난 10여 년 동안 서서히 변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즉, 남북한은 본질적으로 제로섬 게임의 관계가 아니었듯이, 분단이 가져온 현상적인 제로섬 게임의 관계가 이제 걷혀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따라서 현단계에서 통일의 방안을 새롭게 논의하는 것은 그간 제시된 많은 통일방안에 하나의 의견을 추가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남북한이 오늘날까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화해와 협력의 광장으로 나아간 상호간 필요와 그것을 가능하게 한 환경을 정착하고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기존의 통일방안과 특별히 다르지 않은 또 하나의 통일방안을 내놓는 것보다 몇 곱절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통일논의의 순서는 남북한이 서로 화해협력하고, 그것을 항상적으로 향유할 필요를 반복적으로 인식하고 경험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수이다. 예를 들자면, 경의선 복구사업이나 남북 공동의 경제협력사업, 또는 각분야별 상호교류 등을 정례화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법적 제도적 정비작업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즉 통일은 논의보다는 실천에서 현실화 된다는 기본전제에 충실할 때, 통일방안 논의는 그 결과로 남북한이 자연스레 머리를 맞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비생산적인 통일방안 논의보다는 통일을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화해협력이 제반의 분야에서 제도화되는 것에 우선적인 비중을 두는 것이다.
이런 제3의 기능주의적 접근이 남한의 교류협력 우선 방식(기능주의)과 북한의 정치군사 우선 방식(신기능주의)을 넘어설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듯 하다. 통일논의를 교류협력, 신뢰구축의 제도화를 통한 점진주의적이고 기능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첫째, 남북한 공히 현 상태에서 즉각적인 통일은 비현실적이며, 오히려 교류협력과 신뢰구축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둘째, 이러한 신뢰와 공동이익의 누적을 통해, 남북한이 각기 달리 상정하고 있는 최종적인 통일국가상이 노출될 경우의 분열과 갈등의 소지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상호간 공동 이익을 증진해 나감으로써 오랜 이질성이 만들어 낸 다른 통일의 상을 바꾸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공동선언 제2항은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 인식과 논의 방향을 이어가는 것이 통일논의의 당면한 과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서보혁기자
bhsuh@tongil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