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기쁘지만 가슴 한구석에서는 착잡한 생각이 드는구먼.."

생사도 모른 채 반세기동안 헤어져 있었던 아내를 만나게 됐다는 기쁨도 잠시, 양철영(81)씨의 얼굴에는 이내 웃음이 사라졌다.

전쟁통에 헤어졌던 아내 우순애(73)씨와 아들들이 50년동안 북쪽땅에서 얼마나 어렵게 살아왔을까, 또 남쪽에서 다시 결혼해 가정을 꾸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 때문에 가슴 한켠이 저려왔기 때문이다.

18일 제2차 이산가족 방북단으로 선정된 사람들은 가족을 만나게 된다는 기쁨에 감격스러워하면서도 분단의 비극이 남기고 간 상처가 아려와 눈물을 흘렸다.

지난 51년 1월 함께 피난을 나오다 해주.사리원을 거쳐 구월산 부근에서 가족들과 헤어졌던 양씨는 아내의 지난 날을 생각하니 착잡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50년만에 만나게 됐는데 기쁜 마음이야 말할 수 없지..고생많이 했다, 수고많이 했다는 말 밖에 더 하겠어.."

양씨는 현재 부인이 북의 아내를 만나는데 흔쾌히 동의했지만 자신때문에 상처를 받을 두 아내를 생각하면 몹쓸 짓을 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양씨는 "단 며칠간 만나 50년동안 쌓인 얘기를 모두 하라는 것은 무리"라며 "이번에는 가족끼리 동숙이라도 시켜줬으면 좋겠다"라는 소망을 내비쳤다.

북한에 있는 동생들을 만나러 가게 된 이현숙(80) 할머니는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 방북단 참가여부가 불투명한 상태.

오늘도 가족들의 부축을 받아 겨우 병원에 다녀왔다는 이씨는 "가야지..가야해"라며 동생들을 만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현재 상태로서는 동생들을 만나는 일을 포기해야만 할 형편이어서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딸 박영실씨를 만날 예정인 김덕희(89) 할머니는 이번 방북길에 여섯 명의 손자.손녀들을 만날 생각에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에 있는 가족을 통해 딸과 편지와 사진을 주고받는 등 그나마 생사 여부는 알고 있었던 상태여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사정은 좀 나았으나, 북에 있는 큰 외손자가 간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어 선물로 간장약을 준비할 작정이다.

부인과 딸, 동생들을 만날 예정인 조희완(79)씨는 "이산가족으로, 50년간 헤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는 마음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며 "헤어질 당시 22살의 꽃다운 나이였던 아내가 어떻게 변했을지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양보`의 주인공이었다가 이번 방북단에 선정된 우원형(65)씨는 "17살때 나온 고향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면서 감격스러워했고 여동생과 남동생들을 만날 예정인 김창훈(78)씨는 "어린아이였던 동생들도 이제는 반백의 노인이 됐을 것"이라며 모진 세월을 서러워했다. (연합200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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