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반도평론 대표(2021년 구속 당시 4.27시대 연구위원)가 11월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 제8조(회합·통신 등) 위반 등 혐의로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형사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대한민국 사법 현실이 얼마나 국가보안법이라는 냉전의 틀에 갇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이다.
이정훈 대표는 『87, 6월 세대를 위한 주체사상 에세이』와 『북 바로알기 100문 100답』 등의 저서를 통해 분단체제의 구조를 비판하고, 주체사상을 사상적·역사적으로 해석하려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이적표현물”로 판단하며, 사상 탐구 행위를 범죄로 간주했다. 이는 헌법 제19조가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와 제21조의 표현의 자유, 제22조의 학문·예술의 자유를 정면으로 침해한 것이다.
사상은 토론과 비판을 통해 사회적으로 검증되어야 할 영역이지, 형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국가보안법 제7조는 ‘찬양’, ‘고무’, ‘동조’라는 모호한 개념을 통해, 국가가 사상의 내용을 판단하고 처벌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는 사상 처벌이며, 국가가 ‘생각의 검열자’로 군림하는 구조적 폭력이다. 이번 판결의 또 다른 문제점은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을 근거로 북측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것이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는 영토의 범위를 규정한 조항일 뿐, 북측을 ‘적’으로 규정한 조항이 아니다.
남북기본합의서(1991), 6·15 공동선언(2000), 판문점선언(2018)은 모두 남북을 ‘특수한 관계’로 인정하고 상호존중과 교류협력을 명시했다.
그럼에도 사법부가 여전히 헌법 제3조를 ‘이적단체 규정의 근거’로 해석하는 것은, 헌법보다 냉전논리를 우위에 둔 시대착오적 태도이다.
이는 단순한 법리 오해가 아니라,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헌법 전문과 제4조(평화적 통일정책 추진)에 대한 명백한 위배다.
재판 과정에서도 절차적 정의는 무너졌다. 검찰 측 증인이 법정에서 “(북 공작원에 대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음에도, 재판부는 과거 검찰 조사 당시의 진술을 그대로 인정해 유죄의 근거로 삼았다.
이는 형사소송법이 명시한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심리주의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형사재판의 원칙은 “법정에서 검증된 증거만으로 판단한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① 형사소송 절차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위법 재판이며, ② 그 근거가 된 국가보안법 제8조 회합·통신죄 자체가 헌법·국제법에 반하는 악법임을 보여준다.
이 조항은 실제 ‘반국가행위’가 아닌 사상과 교류의 자유를 처벌하는 법적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검찰과 국정원이 내세운 고니시 북측 공작원과 세븐조직에 대한 주장은 이러한 법의 구조적 결함과 부당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이 사건에서 핵심 인물로 지목된 ‘고니시’는 국정원이 수년간 추적했음에도 국적, 신원,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은 인물이다.
‘북 공작원’인지 단순 브로커인지조차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사건의 출발점으로 삼아 제8조 적용을 시도했다. 더 나아가 사건의 근거가 된 ‘세븐조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허구의 조직으로, 과거 ‘일심회 사건’과 마찬가지로 공안기관의 상상 속 산물이다.
이러한 허구적 사건 구성은 제8조의 추상적·모호한 범죄 규정과 결합될 때, 실체가 없는 사건도 법적으로 범죄로 둔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증거 조작 문제 또한 심각하다. 수사기관이 제시한 미가참치 식당 녹취록에는 실제 “말하지 않은 단어가 의도적으로 삽입”되어 있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제8조의 부당성은 명확하다. 첫째, 실체 없는 조직과 확인되지 않은 인물에도 처벌이 가능하여, 양심과 사상,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받는다.
둘째, 조작된 증거로도 유죄 판단이 가능해 절차적 정의가 무력화된다. 셋째, 모호한 범죄 규정과 공안기관 중심 구조는 권력 남용의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재판은 이미 국정원이 조작한 수사 기록과 검찰의 공소장을 ‘판결문’으로 옮겨 적은 수준에 불과했다.
결국 사법부 스스로가 국가정보기관의 정치적 판단에 종속된 결과물을 ‘재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셈이다.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이적단체를 찬양·고무하거나 이에 동조한 자”를 처벌한다.
이 조항의 문제는 명확하다.
첫째,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추상적 표현은 사실상 처벌의 근거를 무한히 확장시킨다.
둘째, ‘찬양·고무’라는 개념의 불명확성은 법률 명확성 원칙을 위배한다.
셋째,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없는 표현까지 처벌할 수 있게 하여,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를 질식시킨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UN HRC)는 이미 2015년과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 정부에 국가보안법 제7조 폐지를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2004년, 2020년, 2024년에 같은 권고를 반복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사법부는 이를 무시한 채, 여전히 냉전시대의 법을 오늘의 현실에 강요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본래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권력의 비판자들을 억압하는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1948년 12월 1일 제정된 이후, 이 법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악을 거듭했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이승만 친미 독재 시절에는 무고한 양민들을,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에는 민주화 운동 세력을, 문민정부 이후에는 통일운동·평화운동 세력을, 오늘날에는 비판적인 지식인과 양심적인 연구자 등을 겨냥한다. 이정훈 대표의 구속은 바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는 한,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의 어처구니없는 비상계엄 선포처럼, 한국의 민주주의는 언제든 과거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한편, 이정훈 연구위원은 1985년 고려대 광주학살 원흉 처단 투쟁위원회 위원장과 삼민투 위원장을 역임했다. 같은 해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으로 3년간 옥고를 치른 뒤, 오산과 수원에서 노동자회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공안당국의 ‘일심회’ 조작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런던대 아시아태평양 지역학 석사과정을 마쳤고,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통합진보당 교육위원, 경실련 하이텔정보교육원 이사, 『사람과 사상 소리클럽』 출판사 대표를 역임했다. 이후 4.27시대연구원 부원장과 연구위원으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반도평론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