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주권자전국회의 상임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갑진년을 보내고 을사년에도 58년 개띠 노동자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하던 갑진년이 드디어 막을 내렸습니다.
계묘년에 시작된 반전은 갑진년을 발음 그대로 일단 값진 년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아니 내란 세력은 집요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지금의 정세는, 새것은 시작되었으나 미약하고 분화되어 있고, 옛것이 물러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형국입니다.
그리고 그 옛것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강하게 버티려 할 것입니다.
이제 다가오는 을사년은 을사늑약 120년, 광복 80년, 한일협정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특히 을사늑약과 한일협정이 있던 해는 을사년으로 치욕스런 해였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심어 놓은 말뚝이 박정희의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거쳐 윤석열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제 그 말뚝을 뿌리째 뽑아서 을사년을 새로운 해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주인공 신돌석씨는 그 일에 한 사람의 시민으로, 노동자로 참여할 것입니다.
통일뉴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동참을 부탁드립니다.

                                                  2025. 1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점심 먹고 농성장으로 돌아왔는데 오른쪽에 반미 구호를 써붙인 것이 놓여 있고 거기서 계속 연설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나왔다. 중형 오토바이에 포장을 한 것이었다. ‘노우 트럼프’ ‘대미협상 전면 중단’ 등의 구호가 적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농성을 하면서 도중에 선전전을 하기는 하지만 많은 시간이 비어 있는데 대신 홍보를 해주는 셈이 되어서 다행이었다. 여자 목소리는 미리 녹음을 해 온 듯하였다. 차분하면서도 아주 선동적인 투로 발언을 했다.

우리나라는 지금 미국의 대미투자강요 때문에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의 요구대로 하면 우리나라는 제2의 외환위기, IMF사태를 맞게 된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서 아마도 회생 불능일 정도로 경제적 파탄이 날 것이다. 이런 뻔뻔한 요구를 거침없이 하는 미국 트럼프 정부에 결코 굴복해서는 안 된다. 국민 모두가 이재명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절대로 서명하지 말고 협상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

이런 내용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몰고 나온 사람은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을 하던 이로 신돌석씨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70이 훨씬 넘었는데도 여전히 이런 일을 하면서 몸으로 뛰고 있다. 그가 이런 활동을 처음 한 것은 아마도 4년 전에 4.27 판문점선언기념일에 부산을 출발해서 7.27 종전협정기념일에 판문점에 도착하는 남북철도잇기 한반도 평화대행진에서였던 것 같다. 그때 신돌석씨도 몇 차례 행진에 참가했었는데 그를 보았었다.

이후 탄핵정국에서 서울 시내를 누비고 다니면서 윤석열 탄핵, 구속, 파면을 외치고 다녔다. 신돌석씨 기억으로는, 처음에는 끌고 다니는 수레와 자전거로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모터사이클로 하고 있다. 농성장에 앉기 전에 그늘에서 쉬고 있는 그를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그는 반가워하면서 광화문 광장이 들썩일 정도로 큰 소리였는데, 주위에서 지나가는 시민들이 오히려 불편해 할 수 있다고 하여 음량을 줄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굉장히 크게 들렸다.

2시부터 미 대사관 건너편에서 기자회견이 있다고 한다. 같이 식사를 했던 사람이 1시50분쯤 되었을 때 거기 가서 발언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일어났다. 기자회견 제목은 ‘내란특검 수사 방해, 내란지원 미군규탄’이었다. 이것과 관련하여 서명을 받았는데 기자회견을 한 뒤 그것을 대사관에 전달한다고 한다. 대충 들은 적은 있었는데 미군이 무엇을 방해하고, 내란을 어떻게 지원했다는 것인지 한번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따라 나섰다.

기자회견 장소는 미국 대사관 건너편이었다. 보이기는 하지만 철제차단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어서 대로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게다가 경찰이 주변을 에워싸다시피 했다. 미 대사관을 등지고 현수막 앞에 열 명 정도가 서 있고, 그 뒤에 20명 정도가 서 있었다. 자주독립대학생 시국농성단이 함께 해서 그런지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마이크를 잡은 진행자가 5분 뒤 정각에 시작할 건데 우리는 싸우러 온 게 아니라 기자회견 하러 온 거니 경찰은 비키라고 했다.

진행자가 그런 말을 할 정도로 경찰들이 옆에 밀착해서 있었다. 진행자가 시작한다고 하면서 상황 설명을 했다. 우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서명한 것을 전달하려고만 한다. 무엇 때문에 경찰이 이렇게 붙어서 있느냐? 피차 얼굴 붉히고 불편한 일을 하지 말자고 했다. 대사관 인근 100미터에서는 집회가 금지되어 있다고 해서 기자회견 하겠다고 하는데 왜 집회 대하듯이 하냐? 헌법재판소 앞에서도 이러지는 않았다고 하면서 분노한다고 말을 했다.

주최 측인 촛불행동 대표가 여는 말을 했다. 한미정상회담 하기 직전에 트럼프가 한국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숙청이 일어났다고 들었다면서 미군부대와 교회를 압수수색했다는 등 어쩌구 하고는 그런 것을 자기는 인정할 수 없다고 했는데 우리 대통령과 만나고는 오해라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오해도 아니고 잘못 안 것도 아니고 아주 의도된 발언이었다. 미국의 내란 개입에 대한 조사를 사전에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내란특검이 오산공군기지에 있는 우리 공군부대를 압수수색한 것이고, 이 점에 대해서 미군과 사전 양해가 있었다고 한다. 전쟁 유발 목적으로 드론기를 평양에 보낸 것을 과연 미군이 몰랐겠느냐. 그런데도 미군을 압수수색한 것이 아니라 우리 공군부대에 대해서 한 것인데 지레 자신들의 관련성 조사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발언자의 말이었다. 미군의 관련 개연성은 상당히 높다고 보는 듯했다.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이에 대해서 미군 당국이 뒤늦게 우리 내란특검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그것은 특검수사를 방해하는 것이고, 사실상 외환죄에 해당하는 전쟁 유발 책동은 미군이 몰랐을 리가 없으므로 내란 지원이라고 본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발언을 한 사람은 신돌석씨와 함께 점심을 먹은 사람으로 농성장을 지키는 단체의 간부로 소개되었다. 그는 우리가 미국을 한자로 어떻게 부르냐는 물음으로 시작했다. 아름다울 ‘미’로 부른다. 아름다운 나라라고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 많은 혜택을 보았던 일본도 쌀 미를 쓰는데 왜 우리는 아름다울 미를 쓸까? 신돌석씨도 의문이 들었던 것이었다. 미국에서도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나라를 양키고홈을 외치지 않는 유일한 나라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진짜 미국을 좋아해서 그런가? 4.3제주항쟁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미군에 의해 희생되고, 미군의 조종으로 학살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미국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의 없었다.

1980년 광주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미국 항공모함이 부산에 입항했다고 하니까 순진한 광주시민들은 미군이 독재자를 응징하고 우리를 도와주러 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미국은 독재자를 지지했고 지원했다. 이때부터 우리는 미국이 독재를 지원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항의투쟁이 벌어졌다. 미 문화원을 점거농성하고 방화도 있었다. 미국은 결코 민주주의를 지켜주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면 그 전에는 미국에 대해서 몰랐는가? 아니었다. 알 만한 사람은 알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지하거나 순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제주 4.3항쟁 때의 무자비한 학살에서 보듯, 이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정권들의 무자비한 폭압이 결국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움츠러들게 한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세뇌되거나 합리화하면서 미국을 그야말로 ‘아름다운 나라’로 착각하는 것도 무시못할 일이었다.

발언자는 이제 미국 정부는 대한민국에서도 양키 고홈이라는 그 신화가 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특히 미국이 내부의 민주주의를 벗어던지면서 우리는 이제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을, 미국 시민을 적으로 돌리지는 않는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미국 시민과 연대하고, 노킹즈 데이처럼 트럼프 정부의 폭압에 항거하는 미국 시민들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하였다.

이 발언을 들으면서 신돌석씨는 일주일 전 집회가 떠올랐다. 그 집회에서 한 발언자는 미국의 역사를 간략히 이야기하면서 미국의 본질을 말하였다. 지금 우리가 트럼프가 하는 짓을 날강도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뻔뻔하고 악랄하게 남의 재물을 빼앗는 자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남의 돈을 빼앗으면서 빌리는 것이라고 하고, 안 주면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자가 날강도이다. 나라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트럼프는 자기가 빼앗는 것이 아니라, 투자를 하라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에 말을 안 들으면 관세폭탄을 때리고 미군을 데리고 가겠다고 한다. 그야말로 날강도의 조건에 딱 들어맞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미국은 원래 날강도 나라라고 규정하였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죽이고 약탈해서 땅을 빼앗고는 기독교 문화를 전파하느니 인권이 어쩌느니 민주주의를 가르친다느니 한다.

신돌석씨는 이 발언을 들으면서 처음 미국의 본질에 대해 학습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해고된 뒤에 가톨릭 수도원에서 운영하던 ‘함께 하는 집’에서 도움을 받았고, 그 때문에 교육도 받았다. 함께 해고된 사람들은 대부분 그만두었고, 신돌석씨는 조철구 등과 엮이면서 교육을 받고 이후 노동운동을 하게까지 되었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미국에 대해서는 그저 잘 사는 나라,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 정도로만 알았다.

신돌석씨 친척, 특히 외가 쪽은 미국에 가서 사는 사람이 많았다. 그 사람들이 어쩌다 한국에 올 때면 볼 기회가 있었는데 미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여기는 얼마나 뒤떨어진 곳인지에 대해 입에 거품을 물면서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기 싫었지만 딱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는 게 없었다. 신돌석씨 친구들 중에도 미국에 간 사람이 적지 않았다. 원래 집안이 좀 잘 사는 친구들이 많이 갔지만, 아닌 사람도 있었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큰 나라에 가서 뭔가 이루어 보겠다는 뜻을 갖고 미국으로 갈 길을 찾았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만 나타나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여기 살 때보다 훨씬 나아진 친구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자기가 한국에 살아 봤자 지지리 궁상으로 살지 않았겠냐고 하였다.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정작 신돌석씨는 내 나라 두고 거기 가서 살고 싶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그냥 그랬다.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함께 하는 집에서 하는 교육은 매주 목요일에 강사가 돌아가면서 와서 하는 것이었는데, 그 사람들이 다 한가닥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두 번째까지인가 노동자란 무엇인가, 노동문제는 왜 생기는가 등을 주제로 했는데, 세 번째부터 정치경제적인 문제들을 하기 시작했다. 5주차쯤 되었을 때 세계역사를 강의하면서 미국 이야기가 나왔다. 강사는 추수감사절이 어떤 날인지 아느냐고 하면서 미국의 원주민 수탈의 악랄함과 위선을 말했다.

앞에서 들은 강의들은 어느 정도는 체감하는 것이었지만 이 문제는 정말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강사는 상당히 쉽고 부드럽게 말했는데도 내용이 워낙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광주학살을 규탄하지만 미국의 원주민 학살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말에 섬뜩해졌다. 그리고 그 런 짓을 오대양 육대주에서 저질렀다고 하였다. 기독교가 전파되는 과정으로만 듣고 이해하고 있던 신돌석씨에게는 여기 계속 나와야 되는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신돌석씨를 잡아준 사람이 조철구였다. 그는 강의가 있는 날, 혹은 다음 날에 꼭 신돌석씨와 소주 한잔하면서 차분히 그런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물론 그가 강사보다 더 많이 알거나 잘 설명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그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에게 들은 이야기로 우리의 비극의 중요한 이유가 미국에 있다는 것을 들으면서 어설프게나마 신돌석씨도 미국에 대한 분노가 싹트기 시작했다.

가쓰라 태프트 밀약이나 분단의 원인 제공 등은 물론이지만, 그는 친일청산의 걸림돌이 되었던 미 군정 이야기도 하고, 쿠데타에 대한 지원 등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가 말한 것 중에 오래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우리 선조들이 못 나서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생각은 진보적인 사람들 속에서도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조철구는 그런 생각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이나 독립을 위한 헌신, 의지는 세계 어느 나라의 독립운동사에서도 결코 무시당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분단이 되고 친일세력의 청산이 되지 않은 것은 세계 최강의 미국의 집중적인 폭압을 이겨내지 못한 것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조상을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로 생각하고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하였다. 결국 그 과제는 우리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보면 그는 누구보다도 반미주의자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반미 구호가 노동운동에서 강하게 등장했을 때도 그 구호를 내세우지 않았을뿐더러 ‘반미’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누구를 반대하는 것을 자기 이념으로 삼는 것처럼 한심한 일은 없다고 하였다. 그는 대미 자주화라는 말을 썼다. 미국의 본질을 알면서 미국으로부터 자주를 쟁취하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그런 말들을 하면서 권해 준 책이 밀즈라는 사람이 쓴 ‘들어라 양키들아’였다. 당시에 그 책은 절판되어서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그가 오래전에 사둔 책을 건네주었다. 그와 더불어서 또 한 권의 책을 권하고 같이 공부해 보자고 하였다. 우리에게 영원한 고전이 된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였다. 그가 이 책을 권한 것은 미국의 또 다른 면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베트남 전쟁 당시의 미국 시민들의 반전운동, 미 언론들의 용기 있는 폭로 등을 결코 가벼이 보면 안 된다고 하였다. ‘전환시대의 논리’에는 그런 점에 대해서 아주 적나라하게 나와 있었다. 그에게서 충분한 말을 듣지는 못했다. 수배되고 그가 바빠지고 다른 길로 갔다가 지방에 내려가고 결국 암에 걸려서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돌석씨는 그가 건네준 말들을 곱씹으면서 살아왔다.

신돌석씨 나름대로 지금의 상황을 판단해 보면, 결국 미국으로부터 자주화되지 못하는 한 지금 같은 문제는 계속 나타날 것이고, 더욱 심각하게 부각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이겨낼 힘은 결국 국민대중 속에서 나온다. 이런 계기에 끝없이 미국의 본질이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되어야 한다. 나아가서 미국 시민들, 세계 시민들과의 민주주의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 진정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 신돌석씨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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