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0년 대, 겸재 정선이 그렸다.
이때 겸재의 나이는 70대였다.
창작의 절정기를 넘어서 농익을 시기이다.
그림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박연폭(朴淵瀑)>은 제목 그대로 박연폭포를 그렸다.
박연폭포는 개성 천마산 기슭에 있는 높이 37m의 폭포이다.
황진이, 서경덕과 함께 ‘송도삼절’로 불릴 만큼 유명하고, 조선 시대 시인과 화가들의 단골 창작 소재였다.
이 그림의 특징으로는,
첫째, 실제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기억과 상상력에 의존해 그린 관념화, 진경화이다.
실제 폭포보다 높게 보이도록 좁게 표현했다.
둘째, 간결하게 그렸다.
폭포 주변의 바위나 나무, 숲 따위를 간결하게 표현했다.
오롯이 폭포만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셋째, 폭포 그림의 완결판이다.
현재까지 전하는 그림보다 훨씬 많은 폭포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의 화가 중에서 가장 많은 폭포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가장 완벽한 폭포 그림을 완성했다.
전래하는 몇 점의 그림을 전부라고 여기면 작품을 해석하는데 오류가 생긴다.
넷째, 그림의 내용을 알지 못한다.
소리를 시각화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인데, 소리를 시각화한 이유를 모른다.
<박연폭>에 대한 일반적 평가이다.
“주변을 단순화시키고 흑백의 대비를 이루고 오로지 폭포 소리에 집중했다.” (이태호-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
“그림을 보니 시원한 눈 맛이 느껴지는군. 폭포 주변 풍경은 흑백의 수묵이고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계절을 알기 어렵네. 어떤 계절인지 아는가?”
“연구자들은 여름이라고 특정하네.
설령 여름에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더라도, 흑백으로 그린 바위와 소나무, 앞쪽의 알 수 없는 나무를 보고 특정 계절을 판단하기는 어렵네.
겸재가 그린 다른 폭포 그림에는 가을이라는 특정 계절이 보이기도 하지.
하지만 겸재는 이 작품에 특정 시간을 알 수 있는 요소를 넣지 않았네. 시간성이 작품의 내용과 별 관계가 없거나,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여긴 것이지.
따라서 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계절이라는 시간성은 중요하지 않네.”
“계절이나 주변 풍경에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폭포만 보고 느끼라는 말로 들리는군.
겸재는 작품 속에 박연폭이라는 화제를 직접 써놓아 특정 폭포를 지칭했네.
계절이라는 시간은 애매하게 표현한 것과 달리 구제적인 장소를 특정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시공간은 한 몸인데, 분리한 까닭을 묻는군.
아주 복잡하고 난해한 조형적 질문일세.
우리그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시간을 특정하지 않지. 공공적인 그림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지.
아무튼, 시간을 표현하지 않은 것은 시간성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확장하기 위함이네.
여름에만 보는 그림이 아니라 사계절과 상관없이 언제든 감상할 수 있다는 말이지.
겸재는 이 그림이 사회적으로, 공공적으로 수용되길 바랐네.
개성의 박연폭포라고 특정한 이유가 있네.
이 작품은 박연폭포와 닮지 않았네. 폭포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과장, 왜곡을 했기 때문이지. 겸재는 이 작품을 보편적인 폭포 그림이 되길 원했네.
모든 폭포 그림을 포함한 완결판인 셈이지.
하지만 문제가 생겼네.
보편적이고 상징적인 폭포 그림이지만 반드시 조선에 있어야 했거든.
당시 유학의 이상세계는 중국의 곤륜산이었지. 겸재는 중국의 철학적 가치가 청나라에 의해 훼손되어 조선으로 넘어왔다고 여겼네.
이것은 겸재 개인이 아니라 조선 주류 선비의 생각이었네.
따라서 중국 어딘가에 있다는 곤륜산을 조선 땅에 옮겨 놓았지. 이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 바로 금강산 그림일세.
박연폭 그림은 시간과 장소를 특정할 수 없을 만큼 간결하게 상징화되었네.
행여 누군가 중국의 어느 폭포와 닮았다고 하는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했지.
그래서 박연폭이라는 화제를 넣었네.”
“백두산의 폭포나 금강산의 구룡폭포 같은 크고 멋진 폭포가 얼마든지 있는데, 하필 개성의 박연폭포인가?”
16세기, 이경윤이라는 화가가 실제 황진이를 앞에 두고 그린 초상화라고 한다.
정식 초상화 형식은 아니다. 즉흥적으로 그린 듯한데, 진위를 알 수 없다.
“아주 쉽게 말하면, 한양과 가깝기 때문일세. 묘향산이나 칠보산 같은 명산을 두고 굳이 금강산을 선택한 것과 같은 이유이지.
한양과 가까우면 직접 가서 볼 수 있네. 본다는 것은 확인하는 것이자 신념을 만드는 것일세.
대중적인 이유도 있네.
박연폭포는 송도삼절 중에 하나일세.
송도가 곧 개성인데, 조선 팔도 사내의 마음을 훔쳤던 황진이라는 기생이 있던 곳이지.
사람들이 황진이의 모습에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투영하듯이, 박연폭포와 황진이를 연계하여 사람들의 뇌리 속에 폭포의 아름다움을 박히게 만든 것이지.”
“당시 황진이는 셀럽(대중문화 유명인)이지만, 남성에게는 성적 욕망의 대상이지 않는가.
단순히 황진이의 유명세를 이용했는지, 더 깊은 뜻이 있는지 궁금하군.
아무튼 겸재는 셀럽을 이용하여 폭포가 조선 땅에 있다는 것을 확정하고 그림의 인지도를 높이고자 한 것이라고 이해하겠네.
상당히 치밀한 설계가 들어간 전략적인 그림이군.”
“금강산 그림도 주류세력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창작, 확산시켰지.
겸재 정선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화가가 아닐세.
조선의 철학과 문화를 국가전략에 따라 실행하는 문화부 장관 같은 역할을 했네. 겸재 그림의 배후에는 왕을 비롯하여 정치 주류였던 서인 세력이 있었네.” (계속)


박연폭포는 개성 천마산 기슭에 있는 높이 37m의 폭포이다.
황진이, 서경덕과 함께 ‘송도삼절’로 불릴 만큼 유명하고, 조선 시대 시인과 화가들의 단골 창작 소재였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