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라도 보내자는 유해송환 얘기도 나오고 있다”
1년 전인 지난해 10월 27일 작고한 장기수 박희성 선생 추모식에서 김혜순 양심수후원회 회장은 “최근 남북관계는 여전히 좋지 않지만 새 정부 들어 정세 변화 움직임이 보이면서 장기수 선생님들의 송환문제가 진행되고 있다”며 이같이 유해송환 문제를 강조했다.
‘고 박희성 선생 1주기 추모식’은 고인의 납골이 안치된 북한산 자락에 있는 한 산사(山寺)에서 27일 오전, 지인들이 모인 가운데 조촐하게 진행됐다.
초헌을 올린 김혜순 회장은 “선생님이 작고하시고 나서 낙성대집이 텅텅 빈 것 같았다”고 저간의 세월을 아쉬워하면서도 “1년이 지났는데 90살이 넘은 양원진, 양희철, 김영식 선생님들께서도 잘 지내신다”며 안도했다.
김 회장은 “이젠 통일이란 단어도 다소 낯설어지고 그 말도 꺼내기가 어색해졌지만 그래도 남북은 80년 동안 헤어져 있었지만 함께 산 것은 5천년이 되었다”면서 “박 선생님이 돌아가시기까지 품었던 통일이 이뤄지길 바란다”며 평소 고인의 꿈이었던 ‘통일’을 상기시켰다.
낙성대집에서 함께 기거한 장기수 양희철 선생은 고인과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의 인연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아헌을 올린 양희철 선생은 “포로로 잡혔을 때 우린 함께 잡혔으며, 특히 한 방에 같이 있었다. 그런데 낙성대집에서도 함께 지냈다”면서 “징역에서든 바깥에 나와서든 오랜 세월 한 방에 함께 살았으니 박 선생의 눈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그런데 먼저 떠나셨다”고 아쉬워했다.
양 선생은 “박 선생은 통일모임과 투쟁이 있는 곳에 꼭 참석했다. 특히 심정적으로 가정적이었다”고 회고하면서 “두뇌 회전이 빨라 성경을 많이 외웠으며 특히 지하철 노선을 다 외워 어느 문에 타면 빨리 내릴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며 고인의 특출함에 거듭 아쉬움을 표했다.
역시 낙성대집에 동거한 장기수 김영식 선생은 “박 선생이 생전에 그렇게 아들 동철이 얘기를 많이 하고 꼭 만나고 싶어했다”며 고인의 유별난 ‘자식 그리움’을 상기시켰다.
이날 참가자들은 참배와 함께 간략한 추모의 말을 이어갔다.
엄경애 민중민주당 성원, 김정희 프랑스 거주 동포, 조장래 6.15산악회 회원, 이은희 범사랑 회원, 류경완 코리아국제평화포럼 이사장 그리고 배미영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등이 고인과의 생전의 기억을 되살리며 고인의 뜻을 기렸다.
이정태, 심주이, 김현수 양심수후원회 회원들이 종헌을 올렸고, 추모식은 고인이 생전에 애타게 만나고 싶어했던 아들인 '동철에게'라는 박희성 선생에게 바친 헌정곡을 감상하며 마무리를 지었다.
심주이 양심수후원회 총무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모식에는 고인이 생전에 기거하고 활동했던 단체들인 낙성대 만남의집 장기수들, 양심수후원회 회원들, 민중민주당 성원들 그리고 6.15산악회 회원들과 지인들 20여명이 참가했다.
(추가: 오후 8시 6분)

